1 .
매 순간 죽어가는 존재 주제 죽어가는 감각은 어디에도 없다. 그게 못마땅했다. 자주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한 끼를 대충 때우고 물도 마시지 않는다. 잠은 충분히 자되 숙면에 취하지 않는다. 잠을 설칠 필요는 없다. 언제 일어나도 상관없었다. 한 번 깬 후에 억지로라도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게 관건이었다. 명료한 의식을 눌러 재워버리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 한 감정은 별다른 힘이 없었다. 눈을 감았다 떠봐도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살아있는 한 세상도 사라지지 않았다. 문득 3인칭 시점의 글은 부조리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세계는 그런 식으로 읽힐 리 없는걸. 모두에게 적절한 거리를 둔 채 모두를 대변하거나 모두와 데면데면해지는 방법 따윈 없다. 그러한 세상에는 진실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같았다’라는 표현 역시 부적절했다. 그런 건 확신 없는 루저들이나 쓰는 말버릇이라고. 중요한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거울에 비추며 말을 할 때마다 ‘같았다’라는 표현을 최대한 거세하는 데 의식을 집중했다. 마지못해 입에서 그 표현이 새어 나올 때 살짝 평온한 미소를 지어야 했다. 검열 없이 혼자 말할 때마다 모든 문장에 ‘같았다’란 어미가 붙었다. 살아있다. 살아있다고 생각하다 보다는 살아있는 것 같았다가 내가 찾는 진실에 가까웠다.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으니 의도적으로 한가지 비기가 더 필요했다. 그 무엇도 붙들지 않는 거다. 삶의 궤도에 인덱스 스티커를 붙이지 않고 술술 넘겨 장기기억 용량을 하나라도 차지하지 않게 한다. 시간은 일주일 전과 한 달 전 일 년 전이 구분되지 않게 마구 엉켜 들고 달력은 순식간에 갈아치워 진다. 사라지는 건 불가능했으나 사라지는 기분을 느낄 수는 있다. 주변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처럼 아무것도 담지 않는 한 살아있는 기분이나 기억 같은 건 남지 않았다. 그럼 꽤 성공적으로 사라진 사람이 되어 시간을 죽일 수 있게 된다. 자신이 한심해지면 남은 삶이 고달파 질 수 있기 때문에 세 살 이전의 아이처럼 자신의 눈을 가리며 어둠 속에 기꺼이 누워 꿩이 되는 기분을 창피해하지 않는 게 마지막 핵심이다. 이게 내가 겪는 공허의 증상이다.
2 .
육교 한가운데 서서 달리는 차를 바라본다. 칼바람이 깃 없는 티셔츠를 입은 목을 마구 할퀴어댔다. 가방 속에 머플러가 있었지만 두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상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는 건 특권에 비교되곤 했으나, 육교라는 위치 에너지에도 보행자는 결코 권위를 지니지 못했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아무 곳에도 속할 수 없다는 분리에 불과했다. 방해물과 고난을 알아서 조용히 피해 다니며 몸 사리는 약자, 만일 재수라도 옴 붙어서 갑자기 삐끗했다가는 저 위로 떨어져 죽음에 이르는 수모를 겪을지도 몰랐다. 그들 속에 속해있지 않은 건 명백한 위험이었다. 빼곡히 러시아워에 기어가며 멈췄다 서기를 반복하며 멀미를 견디며 끼어드는 옆 차에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들을 보고 있어도 전혀 위로되지 않았다.
3 .
어쩌다 보니 내가 적는 모든 글은 나의 이야기로 오인되었다. 곤란하다. 내게 관심이 있거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이 모든 이야기가 엄청나게 지루한 투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와 이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이거나 적어도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라는 설득을 해보려 했다. 산다는 건 곤란했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란 걸 깨달은 한참 후에도 여전히 1인칭 시점을 유지한 채 죽을 때까지 의미 없는 독백을 내뱉으며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쓰고 드라마를 만들고 영화를 찍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을만한 새로운 관점을 찾아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거짓을 포장하거나 패배를 미리 받들어 중요한 이야기 따윈 하지 않아도 좋다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다시 말하자면 하찮은 1인칭 시점을 고수하는 동시에 주인공이 할 법한 진실을 꿰뚫는 이야기를 표현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4 .
내가 그러하듯 나의 글들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