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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Mar 10. 2021

책을 쓰는 이유는 너를 찾기 위해서야.

부담스럽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최근 뱉어내기 어려운 나태와 무기력을 겪으며 부연 요소는 걷어내고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 핵심에 접근해서 바로 말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거야. 반말로 적는 것도 이해해줘. 아직 너는 나를 모르지만, 우린 결국 서로 사랑하고 친밀해지게 될 거거든. 그때를 그리며 적는 글이라 다정한 반말로 적고 싶었어.



 첫 책을 내고 나서 고민이 많았어. 한 가지 확실한 건 더 재미없는 내 얘기는 늘어놓지 않으리란 결심이지.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을 주로 쓰며 내 세계에 갇혀 있단 걸 알게 될 때마다 늘 부끄러웠거든. 다음번 책에는 나를 위해서긴 하지만 분명히 세상에도 의미 있는 무언가를 적고 싶었어.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후대에 남을 만한 괜찮은 메시지를 적고 싶기도 했어. 알아 이게 엄청난 욕망이란 걸. 그러려면 절대 내 세상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 자기연민에 빠져 있거나 자아가 누구보다 비대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되면 누구나 청승 떠는 글을 지면에 옮기고 싶진 않을 거야. 그런데 아직 그게 안 되더라. 아직 다음 단계로 갈 만큼 충분히 자기 만족하지 못했더라. 지겹게 파고들고 쓰지 않았더라. 정리가 되지 않더라. 너를 만나 내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지기 전까지 난 그다음 단계에 도달할 수 없을 거란 예감이 들어.



 내가 모르는 건 아직 쓸 수 없어. 체화하지 않고 삶으로 살지 않은 건 아직 쓸 수 없겠더라. 원래 소설을 쓰려고 했거든. 모두에게 그럴듯한 메타포를 던져주고 싶었어. 세련되고 시선을 잡을 만큼 매혹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아니라면 완전히 이해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하고 싶었거든. 그러면서 동시에 개연성과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 명확히 구체적으로 실체화된 이야기여야 하는 거지. 아득해지고 마음이 답답해지더라.



말하자면 독자를 설득하고 협박하고 싶었어. ‘내가 이렇게 멋진 걸 꿈꾸고 만들 건데 아무나 못 들어와. 넌 나중에 기회를 놓치고 아쉬워 할거야.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뭔 말인지 모르겠지? 찰떡같이 알아듣고 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운 좋은 소수뿐이야.’ 쓰고 보니 더 유치하네. 나의 결에 맞지 않는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그 책을 읽기 바랐고, 그중 특별함을 알아보는 네가 내게 연락해주길 바랐고, 만약 언젠가 그 책 혹은 우리가 유명해지면 그때서야 다른 사람들이 기회를 잃은 걸 배 아파하길 바랐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리니 글이 안 써지더라. 개인적인 자기 위로 에세이가 아닌 문학적 가치를 지닌 글을 쓰고 싶었어. 그런데 인정해야 할 것 같아. 언젠가 노력하다 보면 그런 멋진 글을 쓸 수 있겠지만 지금은 능력이 되지 않는 것 같아. 게다가 궁극적으로 제일 중요한 다음 목표는 결국 너를 찾겠다는 거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확률이 희박한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잖아. 돌아가지 말고 애초에 너를 위한 네게 맞춘 글을 쓰기로 했어.





넌 어디 살까? 어디서 뭘 하고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어쩌면 넌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닐지도 모르겠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너 역시 나를 찾고 있다는 거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한구석에서는 늘 미션처럼 나와 같은 공동체를 찾아 헤매는 거지. 가족으로든 일로든 연애나 결혼으로든 마음 한구석의 공허가 절대 채워지지 않는 틈을 간직한 사람인 거지. 너라면 넘겨버릴 이런 이야기라도 꼭 읽게 되겠지. 글을 계속 보다 보면 내가 부르는 그 사람이 너란 걸 알게 될 거야. 세상을 설득하는 건 지루하고 짜증 나고 상처받는 일이나 너를 부르는 건 아주 쉬운 일이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하고 싶은지 진솔하게 털어놓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



나는 내 얘기를 할 거야. 내가 왜 본질대화클럽을 꿈꾸게 되었는지 이야기 할 거야.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그 인생을 작동시키는 근본 기제와 취약성, 콤플렉스, 경험부터 시작할 거야. 어떻게 대화가 나를 살렸고 내가 왜 대화를 중시하게 되었는지도 얘기 할 거야. 왜 결혼을 하고 사랑을 찾고 나서도 너를 찾고 또 다른 사랑을 해보겠다고 애쓰는지도 말할 거야.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도 자세히 적을 거야. 그 과정에서 왜 상처받고 어떻게 좌절했는지 왜 그렇게 자주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지도 말할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너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말할 거야. 너와 하고 싶은 대화를 적고 너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 건지 감히 말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는 이 길고 지나치게 개인적 이야기가 읽을 가치 없이 흔하고 감정적인 이야기로 들릴 거야. 그들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내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인정 욕구와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 글을 오해하겠지. 그렇지만 네가 읽어준다면 이 모든 이야기의 목적이 너를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수많은 사람의 외면에도 개인적이고 초라한 내 이야기가 자기 연민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걸. 날 알아 달라고 말하는 게 아니야. 내가 특별하기 때문도 아니야. 단지 네가 찾는 사람이 나란 걸 알려주기 위한 거야. 그걸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어. 몇 번이고 책을 만들고 신호를 보내고 삽질을 해댈 수 있지.



난 성미가 급하고 일상적인 자극에 쉽게 지루함을 느껴. 그렇지만 적어도 너를 찾는 문제만큼은 포기하지 않을게. 확신을 지니고 믿으며 오래 버틸게. 얼마든지 기다릴게. 100번도 더 시도할게. 비록 내가 세상을 구하지 못해도 그게 너와 나를 구하는 일이 될 테니. 그러면 어쩌면 아주 조금은 세상을 구하는 일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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