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윤 Mar 12. 2021

일상의 잔잔한 순간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 거죠.

열 번째 대화: 결심

열 번째 대화: 결심

2021년 3월 10일 수요일




“너무나 분명한데 언어로 끄집어내기에 너무 불확실한 느낌이죠.”


우리가 나누는 이 대화를 무어라 명명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기록하기도 까다로운 일이지만, 설사 그것을 완벽히 재현한다 가정해도 그것이 정확히 우리의 대화를 보여주진 못할 것이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 그 대화 자체보다도 내 안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표현되고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에 관한 상호작용을 통해 설명해보려는 노력이 그 대화의 실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라라님이 자주 언급하는 아래의 말처럼 서툴고 버겁더라도 허망한 노력은 필요하다.


“어떤 형태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 무엇인가로 정리되겠지요.”


그날은 우리가 대화를 시작한 이래로 처음 낙성대를 벗어난 날이자 봄이 오는 정취를 조금 더 느껴보자 다짐한 날이었다. 서울의 중심부였다. 이제는 다 잊은 곧 잃어버릴 활기에 가득 찬 빛좋은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광경이나 ‘박근혜를 석방하라’라는 단호하고 뾰족한 플랜카드를 보물처럼 껴안은 사람들의 비장한 시위 모습을 새삼 발견했다. 그렇지. 세상은 내가 잊어도 잘도 돌아갔다. 그들의 존재를 딱히 확인해주지 않아도 잘도 돌아간다. 양자역학의 법칙은 작용하지 않는 건가? 아니 오늘 내가 그들을 확인했으니 이런 글도 나오는 거겠지. 당연하고도 지루하지만 왠지 안심을 주는 일상의 부조화와 번잡함, 혼란 사이 중간지대, 기가 막히게 어울리지 않는 평온의 장소는 늘 존재한다.


그런 보석 같은 장소를 찾는 능력은 내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지만 다행히 라라님은 그러한 장소를 알고 있었다. 점심 직장인의 소란스러움과 눈칫밥을 견뎌내며 어두운 조명 속 그 카페를 한 눈에 조명하기 좋은 명당 자리를 나를 위해 맡아주고 초대해주었다. 뭐하나 흠잡을 수 없이 끝내 주게 멋진 인테리어와 그보다 더 멋진 평온에 가까운 분위기의 카페가 서울 한복판에 존재했다. 의미부여에 심취한 나로서는 그 공간이 ‘춘자’스럽고 라라님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나를 밖으로 불러내는 주요 스케줄이란 2주에 한 번 나누는 그녀와의 대화뿐이었다. 그 대화는 일상적인 동시에 조금도 일상적이지 못했다. 별다른 자극 없이 살아가는 나는 분명 지루한 말만 늘어놓을 게 뻔해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차라리 입을 다물자라고 조용히 다짐한다. 그러나 어김없이 그녀를 만나면 나는 웃고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나의 이야기를 너무 신나게 떠드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지도 못한 대답하기 어려운 생소한 질문이 이어진다.


경쾌하고 분명한 어조로 빠르게 말하는 그와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진득하게 내 눈을 바라보며 내 대답을 기다린다. 그 얼굴을 마주할 때 결코 헛소리로 얼버무려버리거나 적당히 대답하기란 불가능하단 걸 깨닫게 된다. 어떤 형편없는 상태에 이르러도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언제나 나는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편의 의심이 든다. 그녀에게도 이 대화가 이만큼 인상적일까? 대부분은 그게 무슨 상관이란! 질문이 공기속으로 흩어져 사라지고 오늘처럼 불안한 정신을 지닌 날에는 입밖으로 소리를 내어 그녀 귀에 알려주기도 한다. (물론 당연히 그녀는 엄청 좋다고 힘주어 말해준다)




자주 그의 앞에서 고해성사를 내뱉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잘 지냈어요 대충 때우려는 얄팍한 심산 따윈 사라지고 최대한 말로 옮기려는 힘겨운 노력은 시작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거예요. 누가 연락하는 것도 싫고 뭘 하기도 싫고 그런데 딱히 별반 우울하진 않지요. 그렇게 시간을 축 내면서 하는 생각은 이런 제가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란 거죠. 제 모든 일상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을 때, 가끔씩 진정 제 모습을 누군가 알게 되면 어쩌지라고 생각해요. 이제 더는 저를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라라님이 알게 되면 진저리 칠 것이다 생각이 들죠. 제가 이렇게 형편없는 존재라는 사람들이 알까요?”


“에이, 말도 안돼! 그럴리가 없잖아요.”


놀랍게도 이런 말을 하면서도 우리의 분위기는 가라앉기보다는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고 들떠있다. 나는 종종 내면의 부끄러운 깊은 고백을 할 때 눈 주위에 눈물이 담기는 증상을 느끼는데 그런 상태마저도 라라님 앞에서는 대체로 명랑해지곤 한다.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라라님은 부끄러움을 아무렇지 않게 축소해주는 묘한 장기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몇 번 울고나서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면서 ‘형편없다’는 수식어가 꽤 신선하고 재밌다고 라라님은 재차 곱씹었다. 그날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가까이 앉아있었고 아주 재밌는 농담을 주고 받는 듯 웃으면서 라라님은 자신의 무릎을 몇 번이고 때렸다. 멍이 들까 걱정될 만큼의 힘이 었다. 그럴 때마다 라라님을 말려야했다. 중간중간 어이가 없어지거나 너무나 공감될 때마다 자연스럽게 라라님 손을 만지고 허리를 숙여 대며 웃었다. 그가 오프라인 만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라라님은 언제나 할 일이 많지만 언제나 더 많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결단하는 사람이다. 못 본지 2주 사이에도 라라님은 책 두 권을 곧 만들겠다는 결심을 갑자기 했노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자신은 너무 원 없이 하고 싶은대로 살아서 당분간 미친듯이 일을 해야만 한다 해도 할 말도 없고 불만도 없다고 말한 적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건 하면 되는 일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자주 그렇게 바쁜 데도 나를 만나주는 것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과 감사함을 표현하면 라라님은 이 대화가 아주 중요하고 가치있다고 받아쳤다. 연신 감동해서 뻔한 말을 진심으로 내뱉었다. ‘멋있어!’.


라라님은 나의 경우 어떤 식으로 일을 결정하는지 물었다. 결정한 일은 다 하는 편인지도 물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지만 그녀와 대화할 때만큼은 고삐를 풀고 논리도 서두도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를 풀어헤친다. (놀랍게도 이 글은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정제되었다)


“저는 웬만하면 일을 결심하지 않아요. 전 제가 메타인지 능력이 발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뭘 할 수 없는지 정확히 알았어요. 그러니까 수치나 목표가 비교적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쪼갤 수 있는 일에 관해서는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제가 진정 원하는 건 실체가 없는 것들이잖아요. 본질이니 관계니 하는 것들 말이죠.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저의 조급증이죠. 그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으니 차라리 때려치고 싶어지는 거죠.”


“고물님의 고민은 언제나 결론이 그렇게 끝나네요. 고물님은 완벽주의자 같아요.”


“으음..크읍…완벽주의..완벽주의. 그럴지도요. 완벽주의는 잘 모르겠으나, 그저 조급한거죠. 어쩌면 확신이 없어서 작은 파도에도 흔들리는 것 뿐이죠.”


“고물님이 하고 싶은 게 이 유리잔 밖 주변을 흠뻑 적시는 거라고 생각해봐요. 물이 넘치기 전에 우선 물을 채워야 하죠. 고물님은 어디까지 채우셨나요?”


“맞아요. 지금은 반이나 채웠을까요? 물을 채워야 하는데 집중은 안하고 주변을 적실 수나 있을까, 주변을 적시면 무슨 소용일까 바보처럼 고민하고 있네요. 항상 그런 식이죠.”


물을 채우기까지 과정은 언제나 지루하고 재미없고 확신없는 일이다. 그래서 늘 자주 형편없어지곤 마는 걸까? 봄이 왔는데도 가을을 걱정 중이다. 더 열심히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려야 하는데 수확에 대한 의심에 사로잡혀 있다. 약간의 침묵이 우리 사이를 채운 후, 적당한 시점에 라라님은 이런 말을 했다.


“햇빛이나 바람이나 꽃 하나를 보고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것 역시 소중한 감각이지만, 절대로 그것 만으로 만족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땐 전 그렇지 않거든요. 일상의 잔잔한 순간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는거죠. 고물님도 그런 사람 아닌가요?”


그 순간 머릿 속 안개가 한 겹 벗겨졌다.


“맞아요. 게다가 저는 반반이란 거죠. 한 편으로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지에 대해 배워서 평온을 얻고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어요. 그것도 진심이에요. 그러나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라라님 말처럼 그런 걸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는 거죠. 분열을 일으켜요. 원래 모순이 많은 인간이긴 한데 이렇게 하나하나 말할수록 더하네요. 대체 이 인간은 왜 이럴까요?”


“정말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다음날 절친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살아라. 인생 뭐 별거 있냐. 삶의 위대함 따윈 어쩌면 그 날 먹는 초코케이크보다 못한 것이다’라는 원대한 메시지를 내게 주었다. 그 말이 힘이 되면서도 나는 그 전날 라라님과 한 대화를 떠올렸다. 아쉽게도 정말 아쉽게도 내가 초코 케이크로는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 못난 욕심쟁이란 거지.



라라님은 그날 내가 무언가를 다시 결심하길 도와주었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당장 짧은 시일 내에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나 해야 해요.


그것이 무엇일지 아이디어를 여러 가지 내보았지만 비대면 코로나 시대와 굳어버린 머리로는 좋은 생각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자주 길을 잃는 나를 위해서 지금 우리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무언가 실질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 날의 대화와 처음 만난 날을 제외하고 여덟 번의 대화를 녹취했다. 훗날 어떻게 쓰일지 정해두지 않았지만 대화를 복기하기 위해서였다. 라라님은 그것을 그렇게 내버려두기 아깝다고 말했다. 글로 정리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니 그것으로 기상천외한 짧은 영상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음성은 그렇다치고 영상이라…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내가 항상 짓는 멍한 표정으로 으음..으음…네…라고 확신없이 대답하자 라라님은 소심한 내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대화를 대화 형식으로 적는 건 어쩐지 쉬운 길이라 내키지 않았다. 직접적인 데다가 라라님의 사생활 거기다 내밀한 사상이나 가치를 드러내기도 하니까, 아니 분명 거기엔 내가 있을 거고 그 글의 관점은 1인칭에다가 내 세계의 반영이니까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거기에 집착하니 라라님은 왜 자신을 버리려고 하냐고 물었다. ‘자기연민은 징글징글하니까요.’라는 말 이외에 그럴듯한 대답을 해낼 수 없었다.


라라님은 더해보라고 했다. 파고파고 원하는 만큼 마음껏 하라고. 알고 있었지만 내가 어떤 글로 적든 내가 어떤 시선으로 라라님과의 대화를 해체하고 해석하든 그는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내가 글을 평생 적지 않는다고 해도 딱히  한심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을 거다.  사실을 확신하기까지  번의 대화가 필요했다니.





이외에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가 왜 그녀를 그토록 좋아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고유하고 독특하며 (좋은 쪽으로) 이상한 존재인지 확인하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덧붙이진 않겠다.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일을 의논하러 떠나는 그녀와 인사하며 조금 아까 빵을 먹으면서 보았던 전국종이접기 연합 간판을 떠올랐다. 어쩐지 만나본  없는 그들의 진지함이 크게 위로가 되었다. 녹음기 없이 흩어질  대화를 어떻게 기록해야 하나 즐겁게 골머리를 썩으며 집으로 돌아오며 라라님의 말을 복기해보았다.


“고물님 아직은 그 단계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절대로 오래 살았다고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알게 되거나 더 많이 알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까 말씀하신 공허함에 감각을 비슷하게 느껴본 적 있는 저로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쩌면 조금 슬픈 말이지만, 나이가 지나면 확실히 무감각해지거든요. 어떤 일이 일어나든 동요하지 않을 수 있어져요.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붙잡히진 않거든요. 뭐랄까. 주변의 일들로는 개의치 않게 된달까요.


개의치 않음. 나는 그녀처럼 세상과 타인과 무계획에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 그 말은 결국 예전에도 해 준 적 있는 이 말의 변형에 가깝다.


‘고물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의 대화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어쩌면 이것이 전부다. 욕심쟁이라지만, 필요한 안전 장치도 사실 하나면 된다. 창작자의 자아로서 유일하게 위안을 받는 만남이다. 운 좋게 태양을 찾아 낸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우주 밖으로 던져 지지 않도록 공명하는 주파수를 찾아 따분하게 하품을 하며 조급함에 몸이 달아도 아직은 그녀 주위를 빙빙 돌고 있다. 언젠가 이런 행성과 별들이 모여 나의 은하계가 완성되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책을 쓰는 이유는 너를 찾기 위해서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