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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Mar 23. 2021

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할 자신

동기심리학 수업 시간,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 그리고 보상 간의 상관관계 이론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다. 교수님은 어느 한 문장에 멈춰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 교과서에는 '내재적 동기를 지닌 행위를 돈으로 보상할 경우, 내재적 동기가 사라질 수 있다.'는 문장이 쓰여있었다. 한마디로 아무런 보상 없이 순전히 스스로 선택한 어떤 활동에 대해 누군가 돈으로 보상하면 원래 내재적 동기는 사라지고 외재적 동기만 남는다는 뜻이었다. 당시에 그 말이 의심스러웠다. 교수님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모호한 말을 던진 후, 개인적으로 자신은 이 이론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찰나의 순간이었고, 교수님은 약속대로 시험 범위에 그 문제를 포함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벌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닌가? 돈까지 벌 수 있는데 그게 왜 싫어지지?




시간이 꽤 흘렀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흔히 이런 말을 한다고 했다.


"일은 일이에요. 좋아하는 일을 일로 삼으면 그 일이 싫어져요. 좋아하는 건 취미로 남겨두세요."


그때보단 조금 이해가 되었다.


시각이 달라진다. 예로 영화 평론가라고 생각한다면 예전에는 편안하게 아무 생각 없이 오롯이 즐기던 영화를 분석하는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다. 직업병이 깊어지면 마음 편히 영화를 보고 싶어도 다시는 관람객의 입장으로 영화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일은 강제적이다. 마감기한이 있고 하기 싫다고 쉽게 그만둘 수도 없다. 원하는 일 하나를 하기 위해서 원치 않는 10가지를 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부수적으로 귀찮은 일도 따라붙을 것이고 꼼짝없이 처리해야만 한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재적 동기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다. 세상에서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찾기란 참으로 희박한 일이다. 그 소중한 경험이 그 특별한 소재가 바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재밌지 않고 그저 일이 되며 돈을 주지 않으면 하고 싶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은 그저 일이 된다. 내재적 동기는 외재적 동기로 대치된다는 그 이론이 맞았다.



그렇지만 반대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도 끝까지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평론가 김혜리 기자님은 어쩌다 운 좋게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여전히 일과 별개로 영화를 행복하게 감상하며 영화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자신은 별 다른 재주가 없기에 이 일 이외에 다른 직업을 가진 자신이 상상되지 않고 여전히 이 일이 좋다고 말했다.


어떤 유투버는 어차피 일은 고되고 힘들고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니, 그나마 좋아하는 일이라도 실컷 해봐야 나중에 삶이 덕 억울하며 조금이라도 개인의 삶에 후회가 없을 거라고 조언했다.


예술가는 예술하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예술가란 따로 부업을 하지 않아도 예술로 본업으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 예술가에게 예술은 일일 뿐일까? 재미는 존재하지 않을까? 아니면 오히려 생존의 압박에서 벗어나 신명 나게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두 가지 입장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은 알고 보면 진짜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성향의 차이일까? 저 두 입장이 오락가락 뒤섞이는데 점으로 멈춰 서서 누군가 물어보면 언제는 이런 대답을 하고 다른 때는 저런 대답을 하는 것인가? 여전히 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 못했다. 그래서 대답을 할 수 없다.



얼마 전 라라님과 대화를 하다가 우리가 녹음해 놓은 음성 파일을 그대로 두기 아깝다는 말이 나왔다. 아직 나 역시 들어본 적 없었다. 다시 에너지 없이 꽤나 무기력한 Down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라라님은 짧은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며 내게 여러 가지 제안을 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나와 라라님의 음성이 흘러나오는 파일을 들었다. 글로 정리할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처음엔 그리움이었다. 그 시기 반짝거림과 생기가 담겨있는 대화였다. 내 목소리지만 다른 사람 같았다. 혼란스러웠다. 요새 나는 별로 세상에 해 줄 말이 없어 글을 쓰기도 힘든데, 그 대화에는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그 말을 모두 잊어버렸다. 그 대화의 나는 마치 지금의 내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허무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번 듣고 나니 다시 그 대화가 듣고 싶었다.


문득 어떤 대화 파편이 유독 재미나게 들렸다. 내가 이렇게 말이 빨랐다니. 갑자기 충동이 일었다. 시험 삼아 영상 하나 만들어보지 뭐. 따로 찍어두거나 쓸만한 영상이 없었기 때문에 자막 텍스트로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은 고되었다. 그나마 배워 둔 프리미어 편집 방법을 다 까먹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유튜버들은 편집을 외주로 맡긴다. 편집은 노가다다. 시간을 갈아 넣는 행위다.


시험삼아 해보자는 게 너무 고된 작업이었다. 편집의 세계를 잊고 있었다. 만들 때는 재밌었는데 막상 다 만들고 나니 확신이 없었다. 이게 재미나 의미가 있나? 제목을 뭐라고 적어야 할지도 고민되었다. 다음 편을 만들게 되려나? 여기서 끝이려나? 자신 없이 영상을 업로드하고 이틀이 지났다.


이상하게 다음 편이 만들고 싶어 졌다. 대화를 다시 들었다. 재밌다. 재밌었다. 음성을 들을수록 아카이브하고 싶은 구간이 한가득이었다. 이거 재밌게 할 수 있겠다란 확신이 들었다. 의미는 모르겠지만 재미는 있겠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난 미래에 이 영상 클립을 보면서 너무 즐겁고 행복하겠다. 대화의 당사자이자 본질대화클럽 온리원 멤버인 라라님께 의견을 구하자 다행히 너무 재밌다고 또 신박하다고 용기를 마구 북돋아주셨다(사랑해요!).


작년 유튜브 강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사실 유튜브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재미'라고. 아무도 보지 않아도 꾸준히 끈기 있게 버틸 수 있을 만큼 자신에게 재밌는 걸 만들라고. 알고리즘이니 키워드니 영상 효과니 벤치마킹이니 그런 건 그다음 문제라고. 편집이라는 고된 행위를 보상 없이 견딜 만큼 자신에게 재밌는 걸 찾으라고. 외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내재적 동기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어떤 콘텐츠. 그만큼 좋아하는 일!


이거다! 내가 유튜브를 할지도 몰랐고, 유튜브로 만들려고 녹음한 음성 파일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100개는 만들 자신이 생겼다. 구독자도 없이 외롭게, 조회수와 상관없이 신이 나서. 대화를 듣고 또 듣고 영상으로 만들며 질리지 않을 확신이 생겼다. 아직 의미는 모르겠고, 내게 남는 건 시간이니 재밌는 걸 해봐야겠다!




본질대화리포트 / 고물 x 라라
라라님의 마인드 컨트롤 철학
20.12.02 대화 중 발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말 중 하나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번에 또 어떤 재미난 일이 생기려고 이러나." 생각한다는 라라님
뭔가 이 한 마디가 그의 인생 궤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마치 프랙탈처럼.



P.S. 오랜만에 타로를 뽑았다. 은둔자 카드. 외부 세계에 마음을 끄고 다시 세계를 줄이고 있다. 다행히 봄이 와서 따뜻하다. 조용히 고요 속에 앉아 나를 들여다보며 너른 마음을 가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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