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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Apr 13. 2021

일반화 거부라는 이름의 억압성

1년 만에 다시 만난 S와 카페에서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 일어난 일이다.


“남들은 20대에 겪는 일을 30대에 겪게 되니….”


“아니야! 남들 같은 건 없어. 대체 남들이 누구야? 세상에 일반적이라는 건 없다고.”


“아니, 언니! 일반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으면서 오히려 그런 말은 저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말이라고요.”


“아니, 난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


“아 일단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세요. 제가 진짜 하려고 했던 말은 아직 하지도 못했어요.”




그 순간 명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과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유독 S가 ‘대부분’, ‘보통 사람들’, ‘일반적으로’ ‘대체로’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마다 나는 S의 말을 막고 반론했다. 개별적으로 상황을 파악해야지 통계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때 S는 내 말을 막지 않고 그렇구나 들어주었다. 반면 S의 말대로 나는 S가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례를 들 때마다 그의 말에 동의하긴커녕 말도 못 하게 막았다. ‘다른 생각은 달라도 되지만 이것만은 안돼!’


S는 ‘생각이 달라도 저 사람은 그렇구나. 저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나와 나를 닮은 S의 지인은 다양성, 개성, 일반화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자신과 다른 생각 자체를 부정한다고 말했다.


‘아, 그럴 수 있었겠구나.’


S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새로운 폭압을 나을 수 있겠다는 아이러니를 마주쳤다. 순간 조금 억울하기도 해서 반론을 펼쳐보았다.


“아니, 나는 네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내 의견대로 너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네가 너의 경험을 다른 사람이나 일반화에 빗대서 너를 부정하는 것 같아서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건데. 너의 말을 다 듣고 보니 내가 무작정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겠구나. 미안해.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 진짜 미안.”


아무리 가볍게 적어보려고 해도 심각한 어조로 읽히는데 저 말을 하는 내내 우리는 웃고 있었다. 나는 신선한 충격에 빠져버렸다. 나는 내가 경청을 잘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반화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과 경계심을 지니고 있었다.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S의 말대로 S처럼 생각할 수 있고 그 생각 역시 내 생각만큼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통계적으로 정확한 수치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중론 혹은 세상의 상식이나 많은 이들이 은연중에 합의한 사회적 규칙이나 많은 이가 택하고 많은 이가 겪게 되는 보편적인 상황이란 것 역시 존재할 수 있다. 적어도 내게 해가 되거나 상대방이 내게 그 생각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나서서 부정할 필요도 정정할 필요도 없다. 그의 말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넘기면 될 문제이다. 



그러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상대방의 생각일지라도 일반화와 엮이려고 할 때, 나는 그 꼴을 보지 못한다. 극심한 거부를 표현하고 늘 그것을 강하게 부정한다. 오! 그러네. 일반화를 하지 말라고 상대방에게 폭력적인 억압을 하고 있었다. 일반화 거부라는 이름 아래 내 생각을 강요한 꼴이다.



S에게 살면서 그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렇게 말해 준 사람도 네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S는 굳이 말해줄 필요가 없으니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고 나는 ‘아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떠났겠구나.’ 말했다. 아마 나의 성장 배경과 경험에 의한 방어기제의 발동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어릴 적 나는 규제가 많은 사회 속에서 일반화와 사회적인 규칙과 편견에 치를 떨며 살았던 사람이고 일반화 당하지 않으려고 투쟁하며 살았기 때문에 지나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네 말을 부정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적 일반화라는 관념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한 자동반응 같은 거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일을 곱씹으면서 ‘일반화라는 건 어느 정도 필요하다 혹은 인생이란 어느 정도 일반화할 수 있다.’라는 가치와 ‘사람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라는 가치의 서열이나 옳고 그름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다양성을 존중해달라.’ 시위하는 LGBT 단체에 LGBT를 존중할 수 없다는 우리의 다른 의견을 왜 당신들은 못 받아들이냐고 묻는 경우라면, 확실히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사회적으로 옳고 바람직하다고 대답하겠다.
왜냐하면 아래 주장은 ‘인간이라면 또 생명체라면 무조건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자연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한 가치는 생명권과 인권에 관한 부분이고 다른 가치는 취향과 감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생명과 인권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반화는 어떨까? 누군가 나의 행동이나 결정에 관해 ‘일반적이지 않다’며 나를 평가하거나 비난하거나 통제하는 도구로 삼았을 때는 강하게 반발해도 괜찮다. 그러나 그 외 상황에서 예를 들어 누군가 MBTI를 맹신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려는 목적으로 사회적 일반화를 꺼내 드는 상황에서 내가 그것을 부정하거나 고쳐 줄 권리 따윈 없는 것이다. 거부감이 든다 해도 그것 역시 내 취향에 기반한 가치관이지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문제도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가치도 아니니까(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글을 쓰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일반화는 싫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S는 ‘목을 매지 말아야 한다는 관념 자체에 목을 맨 사람들’ 같다는 표현을 했다. ‘일반화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일반화한 사람들’, S의 말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타인의 생각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싶어 내 생각을 관철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는 걸. 이렇게 또 하나 발견했으니 일반화 거부에 관한 지나친 일반화를 경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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