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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Jan 01. 2022

당연하지 않은 읽고 쓰기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당연하지 않은 활동을 해 보는 게 어때? 너에게 책 읽고 글 쓰는 활동은 너무 당연한 거잖아."


미래에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면 L은 고민 없이 이런 조언을 해준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져 그 말이 한동안 기억 언저리에 남았다. 별 말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굉장한 말을 들은 듯 생소하고 낯선 말이 조심스럽게 스멀스멀 나를 관통하고 차지했다. 새해 아침이 되어 빈둥거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언제부터 읽고 쓰는 게 당연한 사람이 된 거지?'





신기하고 생소한 일이다.


살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쓴 시간을 모으면 얼마나 될까? 그건 수능 시험을 잘 보려고 투입한 시간보다도 취업하겠다고 자격증을 절실하게 준비한 시간보다도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데 공들인 시간보다 적을지도 모른다. 취업을 하고 나서는 읽고 쓰는 시간은 내 인생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누군가는 여행 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던데, 몇 줄의 일기 쓸 체력도 없어서 여행지에서 하루를 보내면 잠에 빠져들기 바빴다.



그저 고등학교 때 한 두 달 열심히 블로그에 기록했던 기억이 마음이 심란하고 기댈 곳 없을 때 몇 달간 일기장에게 심정을 토로했던 그 기억이 나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굳이 삶에서 무언가를 창작해야겠단 결심에는 경쟁 후보도 없이 글이 떠올랐다. 어딘가에서 글로 상을 받아 본 일도 크게 글을 잘 쓴다는 칭찬도 받아본 적 없고 함께 글을 써본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생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손을 잡아주고 길을 이끌어준 소설 속 주인공과 삶으로 알게 된 모든 지혜를 풀어내며 내게 따뜻한 위로를 보태 준 작가들의 말에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에, 그들의 흔적으로 인생을 함께해서 조금 덜 외로웠기에, 가본 적 없는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날 그곳으로 이끈 이야기에 여러 번 감격했기 때문에, 그리 많은 책을 읽지 않았어도 내게 책이 주는 의미는 특별했다.



특별히 많이 읽지도 특별히 잘 쓰지도 매일 많이 쓰지도 않으면서 이런 소소한 계기와 기억은 나를 특별히 책을 읽는 걸 좋아하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건 또 어느새 다른 활동이 잦아들자 주변 사람과 내게 '읽고 쓰는 게 당연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했다. 지금은 내 안에 내재된 자연스러운 결과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3~4년 전을 떠올려보면 내게 있어 얼마나 큰 변화인지 새삼 실감이 난다.





 해가  김에 읽고 쓰는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말해 본다. 이렇게 원하는 만큼 마음껏 읽을  있고, 이렇게 생각과 느낌을 글로 쓰는  크나큰 행운이고 기쁨이라고. 오래전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던 소망이 이루어졌는데도 오늘의 나는 당연함을 이유로 감사할  몰랐다. 책을 읽다가 지루해져도 오늘 문장이 입 안에서만 웅얼거리더라도 작은 불만을 품는 대신 오늘의 읽고 씀에 환희하고 싶다. 읽고 쓰는 사람이라니! 그 어떤 수식어보다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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