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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Dec 29. 2021

잠을 자는 이유는 몰라도

당신이 편안히 잠자리에 들기를

무리하게 운동을 했나 어째 평소보다 더 피곤하다 싶던 참, 역시나 늦은 아침을 먹고 영화를 보고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눈이 떠보니 시계는 2:55이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또 하루를 날렸네, 이 게으름을 어쩌면 좋지.' 걱정 인형이 되어 자책 타임에 빠질 만도 하지만, 다시 돌아온 따뜻한 체온, 여전히 근육통은 느껴지지만 아침보다 훨씬 홀가분해진 몸에 절로 '잘 잤다'란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틀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할 일을 시작한다. 


어릴 때 잠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사는 시간의 1/3을 그저 눈감고 누워있는 게 이상하고 비효율적이다. 그 시간에 게임 조금 더 하고 재밌는 영화 더 보고 소설도 더 보고 싶은데. 얼마 놀 시간도 없는데 바로 자야 하다니! '시간이 늦었네. 이제 자야지.' 이 말이 어찌나 잔소리로 들렸는지. 새벽까지 인터넷도 되지 않는 컴퓨터에 소설을 받아 읽으며 밤을 새운 날이 제법 많다. 



그런 내가 잠의 달콤함에 취하게 된 계기는 역으로 현실이 싫어질 때였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잠이라는 게 있어서 잠들 때만큼은 현실의 복잡한 문제, 가슴 아픈 감정, 무겁고 부담스러운 의무감과 죄책감도 모두 사라진다. 잠 속 세계로 도피하는 시간마저 없었다면 그 어디서도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없었겠지. 잠이 좋다 못해 영영 잠들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 시절 잠은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나만의 안식처였다. 





잠이 좋을 때도 잠들기 싫을 때도 '왜 사람은 잠을 자는 걸까?' 늘 궁금했다. 억지로 잠을 재우지 않으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실험을 할 수는 있어도 아직 그 누구도 정확하게 사람이 왜 잠을 자야만 하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기억력 향상, 면역체계 유지, 에너지 절약, 스트레스 감소 등 여러 가설이 존재할 뿐이다.





이제까지 들어본 설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설은 이것이다. 영혼이 현실 세계에서 감각의 이성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힘이 들어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몸을 떠나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 잠이라는 것. 몸도 이성도 완전히 활동이 정지하고 간섭에서 벗어나 영혼은 본래 모습대로 자유롭게 우리가 모르는 차원을 넘나 든다. 마치 어린아이들을 재우고 엄마 아빠 역할을 벗어나서 평소 좋아했던 장소로 놀러 가는 사람들처럼. 육아에 지친 가련한 영혼의 일탈 시간. 그 가설에 따르면 정말 자신의 삶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수면시간이 아주 짧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귀여운 설을 믿게 되고 나서 더더욱 졸리고 잠을 자고 싶다면, 내가 모르는 큰 뜻이 있겠지 싶다. 영혼이 지쳤든 몸이 지쳤든 면역력이 약화되었든 충분히 원하는 만큼 저항 없이 재워준다. 자고 싶은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명상을 시작하고 난 후, 잠들기 전 보내는 시간이 아주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몸이 잠들 준비를 하며 의식의 경계가 서서히 흐려진다. 깨어있는 의식 상태에서 이성과 감각이 무뎌지고 잠재의식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간. 그 시간 동안 내가 느낀 기분과 감정은 고스란히 꿈에 반영되기도 하고 다음날 아침의 컨디션에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잠재의식 속에 슬쩍 박힌 관념과 기분은 점차 삶을 구성하는 연료로 쓰인다.



시험공부를 마저 끝내지 못하고 잠들었을 때는 시험이 다 끝난 후 강의실에 도착하는 꿈을 꾸었다. 너무 놀라 일어나 보니 이미 아침이 되었고 실제로도 시험 시간에 지각해 성적도 좋지 않았다. 아마 잠들기 전까지 '자면 안 돼...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았다고..' 불안에 떨었던 것 같다. 엊그제는 잠들기 전 백예린 님의 'Square 직캠'을 봤는데 꿈에 초록 원피스의 상큼한 미소를 지닌 예린 님이 등장했다. 그 영상을 보기 전까지 난 예린 님의 얼굴을 제대로 몰랐다. 



우리가 왜 잠을 자는지도 꿈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나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아무리 고되고 힘겨운 하루를 보냈어도 몸과 이성이 잠들 때는 그들의 걱정도 불안도 같이 잠들게 보내주자고. 오늘을 무사히 보낸 자신을 격려하며 평온하고 홀가분한 상태로 편안한 잠자리에 들자고. 그럼 또 예린 님이 등장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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