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oul Report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윤 Jan 16. 2022

떠넘기기가 필요해

책임감이 강한 게 아니라 위임을 못 하는 바보였어.

별다른 계획 없어 보이는, 특히 늦잠을 잔 일요일 오후는 눈여겨보아야 한다. 대부분 기억에 남는 일 없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리고 말지만 아주 가끔씩, 그런 날엔 그동안 잡아내지 못했던 심오한 깨달음의 순간이 우연히 찾아오기 때문이다. 거기엔 늘 대화와 커피가 함께 한다. 그러니 매주 일요일에는 맛있는 디저트와 함께 정성 들여 커피를 내려 먹어야 한다. 물론 아무런 기대감도 없이 삶의 문제와 완전히 접촉한 일상적인 상태로 말이다.




오늘의 출발은 빨래였다. 잔뜩 쌓인 빨래, 오늘은 운동복과 수건만 빨 계획이었다. L은 마지막 남은 원두를 털어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운동복을 널었다. L은 내일의 몫으로 남겨둔 빨래를 아무 고민 없이 세탁기에 넣고 있었다. 왜 나는 나머지 빨래를 미뤘는가? 빨래 건조대를 여유롭게 사용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아니 종종 빨래 건조대에 꽉 차게 빨래를 널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단순히 빨래가 잘 마르지 않기 때문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건 기능적인 이유와 상관없다.


그러고 보니 유사한 상황이 생각났다. 결혼 전 명절에 집에 내려가길 극도로 싫어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스트레스받는 순간은 빈틈없이 반찬이 꽉 차 있는 상에 억지로 반찬 접시를 끼어 넣어야 하는 아침 식사 순간이었다. 귀찮아서도 아니고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낯설고 불편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상에 비해 너무 많고 큰 접시를 옮겨야 하는 그 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L에게 나의 명절 상황을 설명한 후, 너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냐고 물었다. L은 ‘엄마! 더 이상 자리 없어. 그만 해!’라고 요구할 거고, 그런데도 엄마가 무시한다면 그냥 찬 접시를 바닥에 내버려 둘 거라고 말했다. 처음엔 농담하는 거라고 받아들였는데 생각해보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나와 달리 정말 그렇게 행동할 것만 같았다.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그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지 못한 이유는 자명하다. ‘넌 떠넘기기를 못 하네!’ 그 말을 듣고 ‘맞아.’ 하고는 가슴속 막혀 있던 못이 하나 빠진 자리에서 눈물이 마구 흘렀다. 난 살면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떠넘긴 적 없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에도 남을 못 믿어서도 아니라, 아예 그런 선택이 고려 범위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말을 듣기 전까지 내 세상에는 그런 선택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 내게 어떤 일을 맡겼고 그 자리에서 그걸 거절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곤란한 상황이 벌어져도 그건 온전히 내 책임이었다. 평생 그렇게 살았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내가 유일하게 무언가를 떠넘길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이제까지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 없어.’ 





‘떠넘기기’란 말은 '무책임'하거나 뺀질거린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들어 있다. 언뜻 보기에 떠넘기지 못하는 사람은 책임감이 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세상 어떤 일도 마냥 좋고 긍정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떠넘기기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L이 내게 말하고 싶은 건 ‘위임’이란 단어에 가깝다. 


그저 단순히 귀찮거나 일을 미루고 싶어서 아니라 살다 보면, 결코 혼자의 의지로만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혼자 끙끙거리고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라 그 일을 기꺼이 해 줄 수 있는 사람 혹은 나보다 그 일을 훨씬 잘 다룰 수 있는 이에게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나은 경우가 많다. 


팀플을 하거나 팀워크로 일 할 때도 혼자 모든 걸 떠맡고 모든 걸 책임지고 모든 실무를 일일이 다 처리하는 것보다 적절하게 일을 분배하고, 누군가에게 부분적으로 일을 완전히 위임할 수 있을 때 훨씬 시너지 효과가 크고 성과도 좋고 만족도도 높을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일이 힘에 부칠 때 그 일을 맡긴 사람에게 ‘이 일이 제 능력 범위 밖의 일이니,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지요.’라고 말한 적도, 다른 누군가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책임자라면 그야말로 최악의 리더이다. 이런 이유로 리더 자리를 최대한 피하면 살아온 걸지도 모른다. (업무뿐 아니라 그럴 필요 없는 일상 모든 영역에서 그러했다)


운 좋게 제대로 위임할 수 있는 책임자를 만난 경우, 팀원으로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운 좋게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배려하고 눈치가 빠를 때,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 하지 않고 함께 일을 나눠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저 운에만 기댔다. 계속 이렇게 살아왔음에도 오늘날까지 이게 나의 부족한 점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나는 힘에 부쳐 실패를 앞두고도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부탁도 하지 못하는 바보였다. 과거 학생 시절, 팀플을 할 때마다 왜 매번 나만 독박을 쓰는지 왜 이렇게 세상에는 무임승차자가 많은 지 이해할 수 없고 불만만 많았다. 팀 운이 좋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위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 그런 상황이 자꾸 벌어졌을 뿐이다.


책임감이 강한 게 최대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저 부탁을 못하는 것뿐이었다. 누군가 함께 일하는 게 효율적이고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상황조차도 위임하는 법을 몰라 혼자 끙끙거리며 어떻게 해서든 혼자 수습하려고 애쓰던 헛똑똑이에 불과했다. 자존심이 상해서도 내가 제일 잘나서도 아니었다. 그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도와 달라고 부탁해도 된다는 걸, 나눠서 일하는 방법을, 일을 위임할 수 있고 기꺼이 그렇게 해 줄 동료들이 있다는 걸 말이다. 




이미 가득 채워진 상을 보며 곤란하지만 어디에도 말할 수 없이 서서히 표정이 일그러지는 한 어린 소녀가 보인다. 엄마에게 그만 하라고 요청할 수도 없고 다른 이에게 도와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렇다고 들고 있는 반찬을 바닥에 내팽개칠 용기도 없는 소심한 소녀가. 그 소녀의 의무도 아니고 존재 목적도 아닌, 애초에 누군가의 부탁이었을 상에 접시를 나르는 일이 마치 자신의 소임처럼 공포를 느끼는 바보 같고 가엽고 어리석은 소녀를 바라본다. 


그때 울고 싶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였다.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스트레스도 걱정도 불안도 공포도 모두 내가 삼켜버렸다. 그 어린 소녀의 얼굴을 바라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기에. 


네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내가 어리석어서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계속 널 그 상황에 밀어 넣어 차라리 다른 사람과 등 돌리게 했구나. 소녀에게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사과한다. 날 용서해줘. 만일 다음에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우린 이제 다르게 행동할 거야. 왜 그럴 수 없는지 설명하고 도와줄 사람이 없을까 찾을 거야. 너보다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정중히 부탁할 거야. 이제 더 이상 무책임하게 널 거기에 버려두고 모든 걸 다 책임지라고 하지 않을 거야. 책임이란 굴레로 널 가둬 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 세상 밖으로 숨지마. 




매거진의 이전글 소울넘버 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