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새벽 5시가 넘도록 무슨 짓을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쉼호흡을 깊게 하며 몸을 재워보기도 했고, 수면 유도 음악을 들었으나 도무지 의식은 잠이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걱정이 있거나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는 것도 특별한 일을 앞두고 있지도 않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이유도 없이 울적할 때 나는 늘 잠을 택한다. 잠은 나의 도피처다. 반대로 잠이 들 수 없을 때는 무언가 기쁘거나 희열에 차 각성이 되서 도무지 몸도 마음도 잠들고 싶지 않을 때다. 그러나 어제는 그런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잠들고 싶었고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호흡과 몸 상태를 관찰하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작고 큰 소원을 빌었다. '삶의 목적을 알고 싶어.' 내가 이 세상에 무엇을 하러 온건지 알려줘. 난 소명처럼 계시로서 명확히 이 일이 내 사명이라는 체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걸 어떤 식으로든 알려주면 안되냐고 나는 잠시 물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잠이 오지 않아 그런 생각은 송두리째 잊고 내가 아는 잠과 유사한 상태로 빠지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결국 5시가 넘어 언제인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꿈을 꾸다가 종종 깨며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어났다. 두통이 있는 건 아니었으나 전체적으로 몽롱했다. 날씨가 좋다는 말에 이대로 집 안에 있으면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밖으로 나가는 김에 상호대차로 대출 예약을 해 놓은 '내면작업'이란 책을 빌렸다. 카페는 조용하고 책 읽기 좋았다. 책에 빠져들며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났다.
첫 번째는 꿈 작업의 일부를 브런치에 기록해야겠다는 것,
두 번째는 내가 생각하는 본질대화란 자신의 어둡고 별로인 부분까지 탐색할 용기있는 사람들간의 이루어지는 대화라는 것, 그러나 이건 단순히 삶에 적응할 만큼 정상적인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넓은 자신의 확장과 통합을 위해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탐색해 나가기 위한 대화라는 점에서 상담과도 힐링과도 다르다는 것.
그래서 그 중 하나가 자신의 그림자와 숨겨진 욕망을 파악하기 위해 무의식을 이해해야하고 무의식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꿈의 상징과 언어를 진지하게 해부해야 한다는 것.
세 번째, 그러고 보면 난 뭔지도 모르면서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내게 해준 말은 어차피 다른 이들은 현실의 세계의 보이는 구체적인 성취와 성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테니 나는 보이지 않는 내면을 탐색하는 일에 나를 헌신할 거라는 찰나의 결심, 그러나 대학에서 내가 알게 된 심리학은 주제가 내면 세계였으나 최대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확률과 과학적 방법론을 다루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거기에 나를 바쳐야 겠다는 생각을 철회했다는 것.
네 번째는 어차피 구원의 대상도 내면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도 각 개인이라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관심도 없고 여기에 거부감을 갖는다고 해도 단순한 자기 만족이 아니라 삶을 충만히 살아나가고 싶다면 표면적인 삶의 적응으로서도 그 작업은 의미가 있다는 걸,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이론가도 아니고 증명도 할 수 없으나 어차피 개인적인 작업을 스스로 탐색해나갈수록 관심을 지니고 질문을 하고 응원을 하고 함께 걸어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 것. 분명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것.
다섯 번째 만일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의 무의식과 그림자를 알아채고 통합한다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도 내 삶은 몇 배로 만족스럽고 평온하며 내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의미있다는 거..
그러고보니 어제 내가 빌었던 소망을 잠 들지 않음으로서 일어난 연쇄 작용으로 지혜로운 내 안의 부분이 알려준거나 다름 없다는 걸.
이런 글이라도 적어 놓지 않으면 나는 왠지 오늘도 잠들 수 없을 거라는 것.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 나와 더 적극적으로 대화해두어야 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공유해야 한다는 것. 이 바람과 생각이 바래지지 않도록 이렇게 브런치에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