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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Feb 02. 2022

상징으로 해석한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숨겨진 세상의 통합으로 되찾은 온전한 삶

출처: 네이버 영화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this is the purpose of ‘Life’”





2013년도 마지막  국내 개봉한  영화를 2014 극장에서 보았다. 8 , 고등학생 이후로 처음 자진해서 짧게 머리를 단발로 자른 지 얼마   날이었다. 변화가 필요하단  알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몰랐다. 이 영화의 원제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그때까지 숨겨진 Secret Life의 존재도, 탐험할 필요를 느낀  없었다.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가야겠다거나 퇴사할 마음 같은 건 표면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도 모르게 마음에 각인된 무언가가 있었다. 삶의 이면을 의미하는 감춰진 Secret Life 발견하고 그것과 조우하겠다는 작은 다짐 하나가. 윌터처럼 세상을 향해 과감히  발을 내딛을 기회를 잡을 거란 비장하면서 경쾌한 각오를 말이다.



그 후로도 몇 달간 일상으로 돌아갔다. 영화를 다시 보지도 이런 결심을 털어놓지도 않았다. 영화의 존재는 곧 바래졌다. 그해 , 퇴사를 했다. 다른 회사에 열심히 이력서를 넣던 중, 윌터 미티가 화산재를 피해서 자동차를 타고 미친 듯이 질주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여행을 가야겠다고 지금이라고 결심이 섰다. 내게 발견되어야  Secret Life 있다고. 그게 뭔지 모르지만 분명 있다고.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으로 가야 했다.



'영화는 재밌지만 그렇게까지 명작이라거나 훌륭하다고는   없어. 그래도  재미는 충분하지.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당시 내가 했을 법한 영화 리뷰란 이 정도이다. '그러나  영화는 내게 특별해.  삶을 바꾸게 만든 스위치를 켜버렸어.  영화는  삶을 바꾼 영화  하나야. 왜일까? ? 단순히 월터가 직장에서 벗어나 세계를 향했기 때문에?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을 모험하는 영화이기 때문에아니야. 단지 그게 아니야. 이건 삶의 원형을 상징하는 이야기다. 모험, 아름다움, 사랑에 관해 말하고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보여주는 영화이다.  또한 그런 삶을 살아 만족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말하지 못한 비밀을, 나의 Secrtet life를 여기 지금의 삶으로 이끌어준 '월터 미티'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글을 적는다.






1. Life


출처: 네이버 영화


윌터 미티는 Life 잡지 소속 사진 원화 관리자로 16년째 일하고 있다. 상징은 대놓고 말한다. 'Life'라고.  영화는 삶에 대한 영화이다. 처음부터 드러난 주제는 몇 번이고 강조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 그게 인생의 목적이라고.' 윌터는 잡지의 가장 핵심적인 사진, 그것도 원화를 관리하고 현상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원초적인 삶의 에너지를 의미에 맞게 가공해 물리적인 실체를 획득하는 두 세계를 잇는 '가교'임무를 수행한다.


'원화'가 삶을 사는  자체 행위의 상징이라면, Life 잡지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공동체적 집단의식을 공유하고 보존하는 매개체를 만드는 일이다. 순간의 삶을 물질로 구현해 저장해두기 위한 의식이다. 여러 사람의 개별적이고 생생한 삶을 정제하기 위해 일련의 틀에 추고 편집한다.   많은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그러나 그 정제 과정에서 최우선 되는 원칙은 회사의 모토이다. 삶의 목적을 왜곡하거나 날조하지 않을 것. 제까지 이 잡지를 만드는 이들은 원화가 찍힌 그 의도를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작업을 했고, 그 덕에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을 지속적으로 전승할 수 있었다. 


윌터라는 개인은 지하 골방에서 일하고 있으며 아무도 하는 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는 중요한 대접을 받고 있지 않으며, 무엇보다 윌터 그 자신조차 자신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긴다. 윌터는 비록 공적으로는 타인을 위해 삶의 목적을 생생히 보존하는 작업을 성실히 해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아직 그 목적에 맞춰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특별한 일을 미래 시점에서 열망하는 이중적인 존재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속 모든 사건의 발단이자 균열은 덤블도어의 수염을 지닌, 새로  관리자가 등장하며 시작한다. Life 기존 오프라인 종이 매체, 즉 아날로그의 차원에서 효율성과 수익을 이유로 온라인 차원으로 이동해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아날로그 삶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고 느끼고 만진다. 자연스러운 흐름의 속도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갈 때 삶의 목적은 달성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 타인의 인정을 받고 성취를 이루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분업화, 효율화가 필수적이다.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하고 리스크는 가급적 기피한다. 아날로그 삶은 집단적으로 막을 내리고, 온라인 매체로 상징되는 간접적이고 편리하고 대리적인 삶으로 이행해야만 한다.


변화는 막을  없고 윌터 또한 저항하지 않는다. 제대로 대화조차 나눌 기회 없이 윌터 미티는 한눈에 새로운 삶의 양식에 부합하지 않는 솎아내야 할 정리해고 대상으로 분류된다.


이제 윌터의 마지막 의무이자 소명은 오프라인 삶의 마지막 모습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설사 내일은 사라지더라도 본래 의도를 보존함으로써 곧 죽어버릴 삶의 방식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래서 미티는 무력하고 무가치하고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사진작가 숀의 최고 걸작이라는 표지 사진을 찾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할 당위성을 얻는다.



새로  관리자는 Life 잡지사의 모토를 모른다. 회사의 모토에 대해 묻는 윌터의 질문에 그는 겸연쩍게 'Loving it?'이라고 되묻는다. 그러자 윌터는 담담히 말한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 그건 삶이 아니라 프랜차이즈가 쓸법한 홍보 문구 불과하다고. 당신은 인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많은 이들에게 상처 주었으나 그의 무지를 용서한다고. 그가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  이해하지만, 부디 다음 사람에게서 삶을 앗아가는 짓은 하지 말아 달라고. 진정한 삶의 목적을 잊지 말라고 그저 정중하게 조언할 뿐이다.





2. 숨겨진 상상 Vs 드러나 있는 현실



출처: 네이버 영화

고리타분해 보이나 안전하고 받아들여지는 삶이 있다. 이게 월터의 현실이었다. 생생한 삶을 만드는 윌터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적인 잿빛의 삶이다. 짝사랑하는 직장 동료 '셰릴'에게 데이트 신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온라인 매칭 사이트에서 그녀가 리액션 해주길 기다리는 . 욕망을 억누른  의무와 책임감에 짓눌린 . 감정이 숨겨지고 손실이 주도하는 삶. 존재는 사라지고 역할로 뒤덮여있는 삶.


그것이 우리 대부분이 중시하고 집중하는 정상 범주의 현실이라 불리는 삶이다. 이는 객관적으로 파악되고 눈에 보이며 물리적이다. 규칙이 있고 힘의 논리로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늘 책임이 따르며 짓누를 듯 무거운 어른의 삶이다. 그것은 이성과 리, 경쟁의 삶이고 물질의 삶이다. 효율성을 선택해야 하고, 가치를 측정할  있는 계량의 삶이다.  삶에서 미티는  주변인이조연이고 결과를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객체로 전락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반면, 윌터의 숨겨진 생활은 상상이 주도하는 삶이다. 그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현실보다 다이내믹하고 에너지 넘치는 공상에 가까운 상상을 한다. 좌절되고 억압된 욕망과 감정과 의지와 감정은 그 세계에서 응축되어 폭발한다. 현실의 막막함과 답답함, 두려움이 강해질수록 반작용으로 상상의 그림자는 더 길어지고 선명해지며 균열을 일으킨다.


숨겨진  속에는 힘과 에너지가 있다. 열정, 재미, 모험, 독창성이 탄생한다. 그곳에서 윌터 영웅이고 모험가이다.  삶에는 의지가 충만하고 감정에 솔직하다. 윌터는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삶은 너무나 무모하고 위험해 보인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 들키는 순간 멋진 모험담은 유치한 사회 부적응자의 망상으로 전락해버리고  것이다. 그러나  세계를 포기하기에 숨겨진 세계는 너무나 유혹적이고 보이는 세계는 퍽퍽하고 숨이 막힌다.


삶은 균형이다. 현실의 삶에 매여 퍽퍽해질수록 상상의 무모함이  많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느 한쪽의 세계에만 매몰되어 살 수 없다. 그 두 세계는 모두 자신에게 속한다.  세계를 알아채기 전까지 무의식적으로  세계를 오가며 줄타기를 하며 혼란의 시간을 겪는다.  세계를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역설적으로 언젠간  세계에 완전히 휘둘리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이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한 채 말이다. 


보이는 세계, 어른의 삶에 생긴 균열과 위기는 그동안 그저 상상 속에머물며 은밀하게 즐겼던 '숨겨진 세상' 점차 현실로 드러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 둘을 완고하게 나누던 벽은 이미 무너졌다.



출처: 네이버 영화




위기  윌터 조력자는 모두 여성이다. 그건 보이는 세상 속 윌터가 자신 안에 억눌리고 억압해 온 여성성을 새로이 발견해 내야 할 과제가 있음을 나타낸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성은 단순한 성별 구분이 아니라 여성의 원형적 상징을 말한다. 부드럽고 온화하며 화해하고 통합하는 직관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것은 논리를 초월하고 인정이 많은 사랑의 세계이며 존재 자체가 가치를 지니는 세계이다.


윌터는 이전 자신의 남성성을 내세워서 성취를 통해 여성성을 은밀하게 지켜줘야 한다 믿었다. 계산서를 쓰며 셈을 하고 직장을 삶을 견디며  어떻게 해서든 어머니피아노를 간직할 수 있도록 애를 쓴다. 미티에게 있어서 피아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선물이자 어머니의 정체성이다. 그것을 잃으면 여성적 가치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고 그걸 막기 위해 돈으로 상징되는 남성적 덕목만이 유일한 방책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윌터와 달리 그 여동생은 의무를 다하긴커녕 삶에 충동적이며 자기의 즐거움, 하고 싶은 일만 쫓는다. 그녀는 어른과 현실의 진지한 삶과 책임 따윈 가볍게 무시하고 창조와 즐거움이 담긴 삶을 중시한다. 미티는 이름 모를 교회에서 열릴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가는 여동생을 대신해서 피아노가 무사히 어머니 거실에 놓일  있도록 고군분투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러나 재밌는  그 구하고 지켜줘야 한다고 믿는 '어머니' 사실은  그 구원 투수가 되어준단 점에 있다. 그 어릴  선수만큼 스케이드 보드를 탔음을 일깨우는 것은 어머니와 여동생이다. 윌터  것도 아닌 작은 지역 신문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고 겸연쩍은 투로 말하지만, 어머니의 말투는 자랑스럽다. 스케이트 보드로 상징된 윌터의 순수한 동심과 열정, 창조적 놀이가 윌터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음을 일깨운다.


여동생은 윌터에게 어린 시절 갖고 놀던 팔이 늘어나는 장난감을 선물한다.  생일 선물은 현실 속 일터에서는  다른 놀림거리가 되지만, 상상이 구현된 모험적 삶에서는 셰릴(사랑)과 가까워지고 스케이트 보드(동심, 창조)의 교환물로 가치를 지닌다. 스케이트 소유자와 언어(이성적 이해)가 통하지 않는 건 이 세계에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위험지역을 통과하기 위해서 어머니의 사랑과 지혜를 상징하는 ' 케이크' 혁명군 대장에게 내물로 바친다. 현실의 세계에서 분쟁지역을 케이크로 오가는 일은 의심스럽고 위험하고 비현실적인 일이다. 그러나 여성적 원형이 상징하는 사랑과 지혜로 가득 찬 세계에서는 논리를 초월해 러한 기적의 실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셰릴' 함께 하고 사랑을 얻고 싶다면, 윌터는 모험 속 세계로 나아가 독창성을 확보하고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셰릴은 뮤즈이자 위안이고 모험계기인 동시에 가장 강력한 조력자이다. 현실  관성과 습관에 따라 윌터가 예전처럼 그린란드에서 술에 취한 조종사를 따라가지 않기로 결정할 , 상상  셰릴이 나타나 '우주비행사 ' 등장하는 'Space Oditiy' 부르며 모험을 떠나라고 부드럽게 그를 독려한다.



모험에서 발견하고 찾게   월터의 숨겨진 세상  내재된 자신의 여성적 덕목이다. 어른이 아닌 어린아이로서의 마음가짐이다. 논리와 성취, 쓸모에서 나아가 불확실성에 부딪히고 어떤 현실적인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로서 놀이를 포기하지 않는 동심을 되찾는 . 자신의 잿빛 삶에 여성성과 아이적인 면모를 통합해서 삶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온전한 삶의 주인이 어 살아가는 , 이전 보이는 세상 하나 만으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삶의 목적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러니 숀은 말한다. 눈꽃 표범도 마지막 표지 사진도 잊고 지금은 그저 공놀이를 할 시간이라고. 자네가 함께 해야 짝이 맞는다고. 지금 여기 윌터가 해야  진짜 역할은 그저 아이가 되어 노는 것뿐이다.  





3. 윌터, 넌 작고 하찮지만 세상의 전부야.


출처: 네이버 영화



지갑은 '정체성' 상징한다. 숀은 윌터가 떠나기  Life 모토가 적힌 가죽 지갑을 자신의 위대한 작업물을 넣어 윌터에게 선물한다. 숀은 충실한 삶을 사는 현자의 상징이자 윌터의 이상향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의도를  이해하고 훼손되지 않게 작업해준 윌터에게 감사의 의미를 전하며, 그는 윌터가 지금은 모르고 있지만 분명 그에게 잠재된 정체성을 소중히 간직하라 지갑을 보낸다.


그러나 기껏 떠난 모험(위험 감당)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어른과 현실의 삶에서 배제되어(직장에서 해고된다) 화가  윌터는 어머니네 집으로 돌아가 분풀이하듯 지갑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건 상상과 동심, 독창성과 여성적 덕목이 살아 숨 쉬는 삶에 대한 부정과도 같다.




그러나 사실 윌터가 그토록 찾고자  '삶의 정수'라고 불리는 마지막 잡지 표지 사진이 지갑 안쪽 주머니에 숨겨져 있었다. 윌터가 버린 건 통합되지 못한 삶의 덕목인 동시에 결국 보이는 세계, 즉 현실 세계의 가장 고난도의 가치를 지니는 미션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자포자기해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윌터에게 다시 한번 구원자가 손을 내민다. 바로 어머니이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라고. 네가 나를 지켜줄 필요도 남성성으로 여성성을 구원할 필요 없다고.  모든 측면은 동등하며 나름대로의 기능과 의미가 있기에 각자 존중하면  뿐이다. 그토록 모든  의무적인 삶에 희생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삶도 윌터의 삶도 괜찮을 거란  모험을 다녀온 윌터는 진정 이해한다. 어머니와 동생과 포옹하는 윌터는 동시에 피아노 수표(현실적 가치)도 잊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러자 잃어버린  알았던 자신의 지갑이 기적적으로 돌아온다. 윌터는 이제  숨겨진 세상에서 가치 있던 여성성, 동심, 창조, 모험이란 정체성을 품고 있는 지갑을 소중히 루게 된다. 그것들은 윌터의 현실 속 삶으로 당당하게 편입된다.



윌터는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 다시 Life사에 방문한다. 윌터에겐 득이  것도 없고, 관리자는 반기기는커녕 비아냥댄다. 윌터는 싸우지도 분노하지도 않고 자신과 사진이 담고 있는 가치와 인생관에 대한 메시지만 전한 채 사진을 대가 없이 넘겨준다. 삶의 진정한 목적이 많은 이에게 전승되길 바라며 순수하게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어쩐지 퇴직 연금을 받으러 마지막 창구에 길게 줄을  윌터는 이전과 달리 담담하고 편안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하던 동료는 눈물짓고 있다. 그는 아직 윌터처럼 숨겨진 세상을 발견하지 못해 현실 속 자신의 지위가 격하되는 사건으로 우울하고 침체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지니고 있는 박스 안에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잎이 가득한 화분과 빨간 책을 보니  역시 진정한 삶을 찾게 될 거란 예감이 든다.



이제 윌터는 자신의 이력서를 쓴다. 윌터는 한쪽 세상에 치우쳐있던 이전 삶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 자신의 정체성을 의지에 의해 확고히 정립한다. 이력서는 지갑과 달리 혼자 간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연결되고 교감하기 위해 드러나는 정체성에 가깝다. 거기엔 원화 관리자로서의 현실  역할과 함께 온갖 황당해 보이는 흥미진진한 모험 세계 속 이력 또한 적혀 있다.  이상  세계와 윌터의 정체성은 숨을 필요 없이 통합되어 세상에 드러난다. 무얼 적어야 할지 몰랐던 윌터는 이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윌터는 Life 회사의 주인공이 아니다. 윌터에게 마지막 사진을 은 답례로 고마움을 전하거나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영웅적 서사 같은  없다. 그러나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던 윌터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숀의 '삶의 정수'로 불리는 사진 속 주인공이었다. 지난 을 마무리하고, 아낌없이 헌사를 보내야 하는 대체   없는 핵심 인물이자 역할. 물론 윌터의 얼굴이 연예인처럼 전면을 차지한  아니다. 그러나 Life 사를 상징하는 건물  윌터가 원화를 들여다보는  일상적인 장면이 그 삶의 모토를 지켜내기 한 숭고한 작품이었다. 그의 역할은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특별했다.





이제 자신의   주인공이  윌터는 굳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확인받을 필요도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숀이 말한 대로 윌터 또란 아름다워서 관심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윌터는 이제 사랑을 전하 위해 '셰릴'에게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담담하게 말을 건다. 자신의 감정과 속마음을 드러낸다. 심지어 상상의 세계를 드러내고 인정할 수도 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윌터는 직장을 구하고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윌터는 종종 어린아이처럼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놀이를  것이다사랑을 하고 감정을 드러내고 용기를 내고 존재를 표현할 것이다. 현실  삶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윌터는 상상의 세계를 그저 상상 속에 가둬두지 않고 현실로 끌어내면서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을 립하며 성장했다. 그래서 그의 세계는 모든 것이 변했다. 초반, 고리타분하고 어딘가 불안하고 소심해 보이던 그의 인상이 이제 숀의 것과 유사하다. 윌터는 이제 자신의 삶을 산다. 그저 Life를 만들던 윌터의 삶은 진정 Life가 되었다.







 이야기는 동화 파랑새와 같은 원형의 플롯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소중하고 절실하게 찾아 헤매는  무언가는 사실 가장 익숙한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성장 드라마의 익숙한 구조를 지닌다. 그러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한들  모험을 떠나지 않고, 안에만 머물렀다면 우리는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결코 찾을  없었을 것이다. 있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모험을 감행해야 하며 그 사람은 비록 같은 자리에 서있다 한들 이전의 사람과 완전히 다르다. 자리진화한다.  사람의 성장에 맞추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추기 위해서 말이다.


온전한 삶이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발견하여 보이는 세계로 통합하는 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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