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리뷰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는 바람의 아이이다. 바람의 신에게 모두를 지켜주길 기도한다. 바람을 이용한 동력 없는 비행기로 날아다니는 아이. 바람은 골짜기를 가리지 않고 불어온다. 여인의 치마폭을 들춰내고 아이의 머리카락을 헤집고 나뭇잎으로 춤을 춘다. 바람은 늘 불어온다. 사랑이 있는 한,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조화가 있는 한. 그래서 나우시카가 사는 바람의 계곡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나우시카는 평화로이 날아오른다.
익숙지 않은 불청객, 생소한 미지의 존재는 언제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인간들은 부해와 오무를 두려워한다. 독성이 퍼지고 오무가 찾아오면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왕국은 멸망한다. 부해와 오무를 피해 멀리 도망치거나 그들을 끝장내고 자신의 영역과 자기편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들은 파괴하고 싸워야 하며 대치되는 적대자이다.
"우리는 주변국을 통합하여 평화로운 왕국을 건설하러 왔다. 너희는 부해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받들어 왕국 건설에 참여하라. 부해를 태우고 인간세계를 재건설한다!"
-트로메키아 여왕
자신을 멸망시킬지도 모를 거대한 적대자에 대한 두려움은 복수를 낳는다.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더 큰 두려움으로 저항한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자신까지 파괴할 통제 불능한 존재를 깨운다. 오로지 오무와 부해를 없애버리겠다는 의지 아래에 비합리적으로 반응한다.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고, 그보단 차라리 두려움을 상쇄하기 위한 무력을 과시하며 자신들보다 약한 자들을 침략한다. 다른 왕국을 멸망시키고 차지하고 복속시키면 자신들의 무력히 꺾인 자존심이 어느 정도는 보상되기 때문이다.
곤충이 덮치게 할 거야.
페지테도 당신들이 그랬군요. 왜 그런 짓을...
어쨌든 거신병이 부활하기 전에 빼앗아 와야 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야. 이해해줘.
그렇다고 사람들을 죽일 건가요? 그만둬요. 제발 그만둬주세요.
토르메키아군이 우리 편을 다 죽였어. 다른 수가 없어.
지금은 쑥대밭이지만 일단 거신병을 빼앗아오면 부해를 태우고 인간 세상을 부활시킬 거야.
말도 안 돼! 토르메키아군과 똑같군요.
당신들도 물을 마시잖아요? 누가 물을 깨끗이 하는지 알아요? 인간들이 오염시킨 강과 호수를 부해의 곤충들이 정화시키는 거예요. 그런데도 숲을 태울 건가요? 거신병 따윈 다 소용없어요.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그를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한다. 물론, 그들에겐 늘 명분이 있다.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 알고 보면 그들을 위한 최선이라는 변명.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합리화, 파괴를 막기 위한 파괴, 악에 대항하기 위한 복수. 그러나 평화는 결코 두려움으로는 이룰 수 없다.
꼼짝 마. 명령은 내가 한다.
당신은 뭘 두려워하죠. 꼭 길 잃은 여우다람쥐 같아요.
뭐야?
두려워하지마요. 난 당신이 돌아가길 바랄 뿐이에요.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다니까.'
'놀라서 그런거지?'
그러나 나우시카만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한다. 폭력과 공격적인 행동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는 걸. 사실 그건 살려달라는 외침이자 놀란 마음에 본능적으로 보이는 반응일 뿐이라는 걸. 두려움을 보이는 상대방에게 맞설 필요 없이 고요히 기다리고 마음을 열어 보여 나는 너의 친구란 걸 확인시켜주면 된다는 걸. 나우시카는 자신을 공격하고 상처 내는 사막다람쥐가 겁먹지 않도록 아픔을 견디며 기다린다.
두려움이 없는 나우시카에게는 편 가르기가 없다. 이분법도 없고 편 가르기도 없고 편견도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면 나우시카는 묻는다. 나우시카는 유일하게 포자가 생긴 이유와 부해가 존재하는 이유를 궁금해하고 탐구한다. 그저 모두가 자신의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모두가 두려움 없이 평화롭길 바랄 뿐이다.
부해가 생긴 이유라.. 넌 별걸 다 생각하는구나.
부해의 나무들은 오염된 인간세계를 정화하려고 생겨난거야.
땅의 독을 흡수해 깨끗하게 만든 후 죽어서 모래가 되는 거야.
이 지하동굴도 그렇게 생겨난거야. 곤충들은 그 숲을 지키고 있지.
'제가 포자를 모아 키운 거예요. 독을 내뿜진 않아요.'
'확실히 공기가 오염되지 않았군... 독성이 강한 꽃이 피어있는데 어찌...'
'지하 우물에서 물을 끌어올렸죠. 모래도 우물 밑에서 가져온 거예요. 부해의 식물도 깨끗한 환경에선 독을 뿜지 않아요. 땅이 오염된 게 문제예요. 왜 누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건지...'
절대 적으로 여긴 부해는 두려움의 눈을 벗고 바로 보면, 치유와 정화라는 사실이 보인다. 그들은 오염된 인간 세계를 멸망시키지만, 그건 치유를 위해서이다. 깨끗한 환경에서 부해는 독을 내뿜지 않는다. 부해는 독이나 적이 아닌 환경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 같은 식물이자 생명이었다. 깨끗한 물과 모래에서 부해는 다채로운 생명으로 피어오른다.
나우시카는 운다. 바보처럼 두려움에 휩싸여 서로에게 상처 입히고 생명을 죽이는 사람들로 인해 상실감에 운다. 누군가가 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파서 운다. 나우시카는 자신의 상처로 울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증오와 적대감으로 생명이 사라져 갈 때 애달피 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우시카가 가장 크게 울 때는 기뻐서이다. 자신이 찾던 답을 찾았을 때, 자연이 주는 축복 앞에 섰을 때, 상처 입어서도 자신을 걱정하는 어린 생명의 다정함을 만났을 때. 반짝반짝 빛나는 생명의 경이로운 빛과 사람들을 용서하고 마음을 열어준 오무에 휩싸였을 때. 나우시카는 기뻐서 울고 기뻐서 웃는다.
죽은 나무가 부서져 쌓인 거구나.
나우시카. 우는 거니?
응. 너무 기뻐서.
정말 미안해. 용서하라고 말할 수도 없어. 많이 아프지..
움직이지마. 체액이 나온다고. 착하지...움직이지마.
안 돼! 호숫물에 상처가 닿으면 완전히 탈 거야...
너...
착하구나, 난 괜찮아. 지금 다들 데리러 올 거야.
나우시카는 고요하게 몸을 맡긴다. 어떠한 방어구도 장애물도 없이 미지의 생명체 곤충들에게 존중과 사랑을 담아 자신의 몸을 완전히 내맡긴다. 곤충들은 나우시카의 몸을 감싼다. 그들은 언어 없이도 오해하는 법이 없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찬 어떤 두려움도 없는 나우시카에게 그들도 숨기는 게 없다.
나우시카는 결단하고 행동할 때 흔들리지 않는다. 망설임 없는 눈빛으로 사랑에 가득 차 굳건히 마주한다. 적의 총구 앞에서도 상처가 타 들어갈 강물을 뒤에 두고도, 죽음 앞에서도. 나우시카에게 희생은 비장하지 않다. 다정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기꺼이 죽음을 향해 두 팔 벌린다.
인간도, 동물도, 오무도, 부해의 식물도 모두 살았으면 해.
모두 집으로 돌아갔으면 해.
나우시카는 춤추며 바람을 타고 깨어나 돌아온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미소를 띠고 모두를 안고 기뻐하기 위해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