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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Dec 13. 2021

그래, 마음은 언제나 어린아이지.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를 읽고

인간을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런 거예요. ‘정신mind’, ‘마음heart’ 그리고 ‘몸body’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 존재로 보는 것.


우선 정신에 대해서 얘기해보죠. 정신은 자기계발, 책임 완수, 사회생활에서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요. 성취에 관여하거든요. 그러니 정말 중요한 일을 하는 건데 단점이 있죠. 천성적으로 욕심이 많아요. 그렇다고 나쁜 놈이라는 건 아니고요. 다만 너무 힘이 세다는 거, 그리고 절대 만족을 모른다는 게 문제이지요.”


다음은 마음 얘길 해보죠. 마음은 정신과 완전히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어요. 욕심이라곤 없고, 아주 사소한 일에 만족하거든요. 단순한 데다 조금만 신경 써줘도 기뻐하니 철없는 어린아이 같다고 보면 돼요. 맛있는 것, 재미있는 것 등 즉흥적인 즐거움이나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때 만족하는 걸 봐도 그렇고요. 마음이 원하는 건 대개의 경우 정신이 추구하는 성공, 성취,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일 등과는 거리가 멀어요. 쉽게 만족하는 대신 상처도 잘 받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관심을 표현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게 중요해요.


은 매우 충실한 조력자이자 투명한 친구예요.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거든요. 아끼고 존중하며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 좋은 컨디션으로 정신이나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함부로 대하면 어김없이 문제가 생기죠. 또 겉으로만 잘해주는 척하거나 의리를 저버리는 일은 참지 못해요.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손미나






몇 권의 책을 늦게 반납한 탓에 도서관 대출이 막혔다. e-book을 좋아하진 않지만, 괜히 늦은 밤 태블릿으로 전자도서관을 뒤적거렸다. 평소라면 눈길이 가지 않았을 책을 다운로드 받아 읽고 있었다. 최근에 쓴 이 책은 읽어보지 않아도 내 상황과 다를 게 뻔했다.


나름 자신을 돌보고 균형적인 삶은 산다고 믿고 있었고 부족한 거 하나 없던 손미나 님은 별안간 휴가지에서 자신이 너무 불행한단 걸 알게 되어 당황한다. 자유로워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계획적으로 성취하며 자신을 몰아치며 일하는 그에게 발리에서 만난 그루는 정신을 쉬고 마음이 원하는 일을 하라는 극약처방을 받는다. 그 후로 마음이 원하는 버킷리스트를 실행하고 진정 몸을 도구가 아닌 소중한 친구로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한국에는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우리 사회는 빠른 속도에 경쟁적이며 성취 지향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문화 의식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휴식도 충분히 취하지 못한 채 너무 바빠서 삶에 떠밀리듯 사는 지친 사람이 여전히 많겠지. 일을 하고 있는데도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거나 N잡을 준비하며 다음 삶을 계획하는 성실하고 진취적인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너무 정신에 치중한 삶을 살고 있는 일 중독자 정도 되어야 제대로 이 책에 공감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상하게도 왜 내가 '마음'이란 단어에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모를 일이다.



지금 내 삶은 양심이 없을 만큼 너무나 한가롭고 여유롭다 못해 권태롭다. 해야 할 의무 같은 건 조금도 없고 특별히 문제 되는 상황도 없다. 정신에게 전혀 일을 주지 않고 성취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도 왜 내 주파수는 네가 묻는 답이 이거라고 공명하고 있을까.


마음이 아픈데는 자격도 조건도 필요치 않고, 내가 성취지향적인 인간인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균형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마음은 다치면 아프다고 울 뿐이다. 마음이 힘든 건 정신과 몸의 영역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몸을 잘 돌보고 목표를 정하고 성취에 집중해도 마음의 상처는 우회적으로 치료되지 않는다. 나만큼 인생 편하게 사는 사람이 없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마음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니 최근 자꾸만 우울해지는 중심부에는 마음이 아프다고 자기 좀 보라는 애달픈 신호가 있었다.



착각했다. 마음은 자라는 거라고. 나이가 들면 이전에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질 거라고. 내성이 생기고 방벽이 두터워질 거라고 그렇게 마음에게 기대했다. 아닌데. 나이가 들고 성숙해진다고 해도 감정이 영원히 감정 그대로인 것처럼 마음도 마찬가진데. 마음이 애같이 구는 건 당연한 거다. 사소하고 따뜻한 것에 금방 풀리고 아프고 억눌린 것에는 문을 닫아버리고. 재지 않고 욕심없는 본능에 가까운 아이.


다정하게 대해줘야 했는데 아프다고 울면 위로해주고 호호 불어줘야 하는데 아이를 앞에 세워 두고 일장 연설이나 하고 눈물 그치라고 이성적으로 대했다. 마음이 애처럼 구는 건 연륜이 부족해서도 무지해서도 아닌데 내가 덜 자랐다는 증거가 아닌데. 원래 마음이란 건 그렇게 작동하는 건데 말이다.



거창하고 그럴듯한 이유가 없어도 마음은 언제나 단순하다. 난 그 아이를 마치 어른인 척 법정에 세우고 자격과 이유를 변론하라 요구했다. 마음이 다쳤다고 상처받았다고 인정하는 게 너무나 유치해보여서 누가 뭐라고 한 적도 없는데도 그럴 리 없다는 이상한 방벽을 세워 억지 결론에 도달했다. 어른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고 유치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며.



몇 십 년이 지나 노인이 되고 삶의 끝에 다가온다해도 마음은 늘 어린 아이 일거다. 대외적으로는 아무리 멋지고 교양 넘치는 일을 한다해도 그래도 마음은 그때도 자신을 다정하게 봐달라며 어린 아이처럼 굴 거다. 마음은 자라지 않는다. 도덕과도 경험과도 성숙과도 무관한다. 마음은 그저 다정한 눈길과 따뜻한 관심, 사랑만 원할 뿐이다. 말로는 안 된다. 매일 매일 조금씩 어루만지며 소중하다 말해주어야 한다. 그게 뭐 그렇게 어렵고 부끄럽다고 해주지 못했을까.



그저 아팠구나. 넌 자라지 않는 아이구나. 다정하게 대해줄게. 라고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언제 아팠냐는 듯 마음은 내게 활짝 웃으며 안겨들었다. 어떻게 이 아이를 미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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