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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Feb 16. 2022

검고 반짝거리는 것에 대한 꿈

요리를 하면서 팟캐스트를 틀었다. 최애 팟캐인 은 언니 숙 언니의 비밀보장, 랜덤으로 골라 멈추어둔 회차의 재생된 사연에서 정말 뜬금없이 비트코인 이야기나 나왔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 안테나가 제 멋대로 작용하더니 과거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 발굴했다.




첫 직장을 다니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내가 고르거나 준비를 하거나 관심이 있던 기업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조교 언니의 추천과 일단 돈을 벌어보자는 마음 + 취업준비를 안일하게 했던 과거 경험 그리고 경제학과 복수전공이라는 조건에 굉장한 메리트를 부여하던 특이했던 팀장이라는 네 가지 우연한 일치로 그 회사에 신입이 되었다.


그 팀 자체도 지금은 사라져 남아있지 않고, 그 기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묘한 팀이었다. 정확히 10년 전이고 그때 난 팔자에도 없던 디지털 콘텐츠와 시장에 대해 조사했고, 진보적인 팀장님 덕분에 온갖 디지털, 미래, 기술(ICT) 이 세 가지 중 뭐라도 키워드가 포함되면 세미나, 포럼 등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자연스럽게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왕왕 만나거나 소식을 듣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당시 친하게 지냈던 동료를 다시 본 날 지나가는 이야기로 이런 말을 들었다.


기억나요? OO업체 부대표님, 그분 비트코인으로 떼돈 벌어서 회사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기억난다. 나와 나이가 유사하거나 더 어렸던 스타트업 너드 스타일 공대생 대표님, 조곤조곤 차분하고 확신에 찼으나 담백하고 간결한 말투도 기억이 난다.


'그렇구나. 신기하네요!'
'OO 씨, 기억 안 나요? 우리 그때 세미나에서 비트코인 이야기 한 번 들은 적 있었는데.'
'진짜요? 전 왜 전혀 기억이 나질 않죠?'






지금 시점의 비트코인을 아는 내가 10년 전, 재테크가 뭔지도 모르고 돈도 없고 기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상태 과거의 나에게 비트코인을 선물하고 싶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질문을 던지자.. 아주 적절한 시나리오와 최선의 계획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씨 좋은 동료(버텨야 하니까)가 있고 기술에 대해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알아갈 수밖에 없던 회사에 취직시키고, 비트코인에 대한 개념 알려주기. 그러나 시야가 좁고 여유가 없던 나는 기회를 보고도 기회인지조차 몰랐던 거 아닐까.


그렇다며 나는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는 나의 엉뚱함에 풋-하고 웃었다. 하지만 왠지 신경 쓰이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듣게 되면, 예사로 지나치지 않고 모조리 알아보게 될 것 같다.


만일 그때 비트코인을 구매했다고 해도 과연 내가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묵혀둘 수 있었을까? 그때의 나라면 많이 어려웠을 것 같다. 100만 원만 되어도 너무 기쁜 마음으로 팔아버리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 모든 if를 차치하고라도 월급을 여행자금으로 쓴 건 잘한 일이다.






어린아이 모티프에 담긴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아이가 지닌 미래의 가능성이다.
따라서 개인의 심리에서 어린아이 모티프가 출현하는 것은 언뜻 회고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일반적으로 미래의 발달에 대한 기대를 상징한다. -카를 융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오늘 꾼 꿈에 검고 반짝 거리는 시선을 확 사로잡는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데리고 가던 어린아이의 손을 놓쳐 그 아이가 날 잃어버려 엉엉 울고, 비난받고 다시 돌아가 그 아이에게 사과하는 꿈이 생각났다. 검고 반짝 거리는 게 코인(왠지 비트코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 뜨끔했다.


울고 실망한 아이에게 눈 맞추고 제대로 사과하고 꿈속 내가 오늘 네게 들려준 말이 진심이라며 다시 한번 잊지 않도록 천천히 말해준 말이 생각난다. 정말로 그 아이를 사랑한다. 다시 볼 수 없고, 아이가 날 미워하더라도 말이다.


1. 넌 마냥 아이처럼 기쁘고 행복해도 돼.

2. 강하다는 의미는 항상 강하단 걸 의미하는 건 아니야.


이 말은 모두 진심이고 아이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으니 다음번에는 아이의 손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한 편으로는 나의 이중적인 태도를 꼬집는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갈길이 멀다. 어제는 메모장에 이제 시작이야!라는 글귀를 적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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