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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Apr 28. 2020

가로등 아래 소년들 7

K의 이야기



 최근 N번방이 연일 뉴스를 타는 것을 보고 나는 안도했다. 이제는 최소한 많은 사람들이 N번방 같은 추악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저것은 '문제'라고 말하니까. N번방은 언제나 있어왔다. 하지만 다들 쉬쉬하고 밝히지 않았을 뿐, 가출한 아이들에게는 멀지 않은 이야기였다.

 인터넷에 가출 카페라는 것이 있다. 가출한 아이들이 숙소와 식사를 구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카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출 카페에는 기댈 곳을 찾는 순진한 청소년들과 N번방을 기웃거리는 쓰레기들이 공존했다. 최근에는 단속을 많이 하는지 많이 없어졌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종종 정말 좋은 마음으로 철없던 어릴 적이 기억난다며 선의를 베푸는 어른들도 있다. 쉼터 선생님이나 상담실 상담사가 아이들의 글에 답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어른들도 있다.

 N번방의 그들, 범죄자들이 가출한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한다며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이다. 네이버, 다음, 카카오톡, 아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페이스북 등에도 이러한 비밀모임은 다 있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페이스북에는 거의 매일 이런 그룹들이 뜨기도 했다.

 항상 볼 때마다 경찰들이 왜 이런 곳들을 막지 않는지 의아하다. 아이들은 구분하지 못하지만 어른인 우리들이 보면 충분히 위험하고 의심스럽다는 것을 글만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 '17살 여자인데 가출했어요. 잘 곳이 없어요'라는 글에는 비밀글이 순식간에 수십 개가 달린다. 어린 여자아이들만 구한다는 글, 일을 조금만 도와주면 숙식 제공한다는 글 등을 읽으며 일반적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하지만 가출한 아이들은 기댈 곳이 없고, 의외로 굉장히 순진하다. 그래서 그렇게 쉽게 범죄조직에 넘어간다.

우리 아이들 중 I가 그곳에서 왔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어엿한 3년 차 형님이 되었다. 아웃리치(길거리에서 학교 밖, 위기 청소년들을 만나는 것)가 신통치 않아 어떻게 아이들을 찾을까 고민할 때 오랜 선임 형님인 I(I도 처음에 가출카페에서 우리 기관을 찾아왔다)는 '가출카페에서 데려오면 되잖아요? 거기는 애들이 넘치는데'라고 했다. I는 몇몇 친구들과 연락을 했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듯한 남자아이들 두 명에게 두 번 정도 밥만 사주고 왔다. 그리고 우리는 며칠 뒤 그 두 명을 만나보기로 했다.

 숙소를 주겠다는 말을 듣더니 갑자기 남자아이들 둘은 일행이 더 있다며 여자애들 둘을 더 데려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네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중에 K가 있었다. K는 키는 컸지만 삐쩍 마르고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림자처럼 조용했다. 교사와의 대화는 대부분 K보다 1살 형인 Z가 했다. K는 차분하고 조용히 'Z의 세트'로 지냈다.

사실 초기에 나 포함 교사들은 K, Z가 데려온 여자아이들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 여자아이 중 하나가 바로 두 달 전 초등학교를 졸업한 꼬마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14살 중1짜리가 가출을 했구나. 지금은 아이들의 가출이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진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역대 최연소 가출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 쓰일 수밖에 없었다.

 여자아이들을 경찰과 부모에게 넘기고 어느 정도 문제가 일단락된 뒤 우리는 Z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Z는 청소년 포주였던 거다. 우리는 Z와 K의 관계를 파악했고 K와 Z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Z는 떠났다. Z는 알고 보니 우리 기관에 오기 전부터 수배 중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경찰에게 마지막 행적을 알렸다.

 Z가 떠나고, K는 우리 기관과 기존 청소년들에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증언들을 쏟아냈다. K는 부모님의 압박에 인터넷에서 함께 가출을 다닐 일행을 찾았고 그것이 Z였다. 처음에는 그저 길거리 생활에 좀 더 익숙한 형이라고 했는데 왠지 점차 이상하더란다. Z는 K를 이끌고 이상하리만치 전국을 떠돌았다고 했다. 내가 '교통비는?'이라고 묻자 '기차는 승강장에서 표검사를 안 하니까 그냥 타면 되잖아요'라고 했다. 전국을 지겨울 정도로 몇 바퀴나 돌았다고 했다. Z는 '돈 벌려면 가야'된다고 했단다. 그리고 자꾸 어디서 어린 여자애들을 데려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신과 같은 가출 일행을 챙겨 데리고 다니는가 보다' 했는데 이상하게도 며칠 뒤면 여자아이들이 없어진다고 했다. Z가 그냥 여자애들이 다른 데로 갔다고 해서 마음이 안 맞아 떠나거나 집에 돌아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항상 여자아이들이 떠나고 난 후 Z손에는 현금이 두둑했다고 한다.

K는 처음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Z와 함께 다녔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의심이 들었고 어느 날 Z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 돈은 어디서 났냐고. Z는 자기가 일하고 아는 '형들'에게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K는 Z와 함께 6개월 가까이 가출 생활을 했지만 Z가 일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 했다고 한다. K는 무언가 이상하게 일이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Z는 K가 자신을 의심하는 걸 알아챘는지 어느 날부터 K를 길거리에서 혼자 자라고 하고 자기 혼자만 여자아이들과 모텔에서 자기 시작했다. K는 이제 Z를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상하게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Z가 우리 기관의 I와 연락이 되었고 K는 도망칠 기회를 무사히 잡을 수 있었다. Z는 이미 전과 경력이 많았고 현재도 보호관찰에 수배 중이라 더 문제가 생기면 소년원으로 들어갈 상황이었다. 우리는 아마도 문제가 생겼을 경우 Z가 K에게 누명을 씌우고 도망가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게 아니면 Z가 돈을 더 들이면서 K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이상해서다. 다행히도 K는 우리에게 도망쳤고 처음에 우리는 K가 Z와 한패가 아닐까 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다행히 K는 그 뒤로 열심히 잘 지내려 노력했고 K는 피해자가 될지언정 가해자가 될 아이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깨달았다.

K는 그 뒤로 우리 기관에서 성실하게 배우고, 생활하고 지냈다. 우리는 K의 부모와 연락했고 K가 가출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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