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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r 22. 2018

가로등 아래 소녀들 6

H의 이야기



아직 추운 2월의 어느 날, 작고 새하얀 통통한 여자아이 하나가 왔다. 교복을 입고 단정히 자른 동그란 몽실 단발에 구석 의자에 앉아 분홍색 담요를 돌돌 두르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작고 동그란 얼굴에 새카만 눈으로 나를 보며 '선생님, 추워요'라고 하기에 온열 히터를 앞에 갖다 주니 또 가만히 인형처럼 앉아있었다. 저 아이는 무슨 사연으로 우리에게 온 걸까. 왜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여기에 있는 걸까. 대표 선생님이 일단 데리고 있으라 했지만 나는 그 아이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그 작은 소녀가 핸드폰을 들고 끊임없이 하던 그 무언가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요즘 미투가 대세다. 나도 여자이니 찬성 찬성 대찬성이다. 내가 보는 아이들은 대부분, 아니 전부가 남자아이들이다. 하지만, 가끔 정말 만나지 않으면 안 될, 돕지 않으면 안 될 여자아이들도 있다. 난 끝없이 이어지는 미투 행렬에 내가 만난 여자아이들이 왜 참여하지 않는지 울화가 치밀 지경이다. 내가 이곳에서 만난 여자아이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미투를 강하게 외쳐야 함에도 그들은 아무 목소리가 없다. 그 아이들은 성폭력이 생활이고, 생계이고, 일상이면서도 그것을 폭력이라고 자각조차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H의 아빠는 조폭이었다. 엄마는 H말에 따르면 자기가 어릴 때 자기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놀러다녔'다고 했다. H에게는 할머니가 진짜 엄마고 H의 모든 세계였다. H를 예뻐해 주고, 정말 사랑해주고, H말에 따르면 뭐든지 '오냐오냐 해주는'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 H의 온 세계이자 제대로 된 버팀목인 할머니는 H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나버렸다. H의 세상은 갑자기 모두 사라져 버렸다. H는 일주일을 장례식장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다 울고 나니, 갑자기 괜찮아져서, 한 3일은 멍하게 있었다고 했다. 아. 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구나. 하고 생각했단다. 그건 사실 괜찮은 게 아니라, H의 영혼이 금이 간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H는 정말 문자 그대로 '낯선 아빠'와 '낯선 엄마'와 살게 되었다. 낯선 아빠는 조그만 중학교 1학년 소녀인 H를 나무 각목이 부러질 때까지 때렸다고 했다. H는 일말의 슬픈 기색 하나도 없이, '내가 경찰서에 신고해서 이제 아빠가 나 못 때려요'라고 했다. 마치, '어제 친구들이랑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라고 말하듯이.  H가 맞지 않게 되는 데까지도 지난한 시간이 걸렸을 터다. 엄마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앞에 무력했다. 본인도, 맞고 있는 자식들도 보호하지 못했다. H는 당당하게 '최근 들어 이제야 엄마를 좋아하게 됐다'라고 했다. G는 H가 중1 때까지도 공부하는 평범한 중학생이었다고 했다. H가 아주 많이 맞았던 어느 중1 겨울날, H는 집을 나왔다. 친구와 수다를 떨며 길거리를 헤매고, 쉼터를 들락거렸다. 처음 가출을 하고 며칠 후, H는 힘들고 무서운 마음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엄마의 냉대와 아빠의 폭력으로 H는 다시 내쫓겼다. 심지어 아빠는 이제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H는 가출했고, 돌아가고, 외면받고, 가출하고, 돌아가고, 외면받고.... 계속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치 울다가 멍하니 있던 것처럼, 우는 걸 포기했듯, H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했다.


H는 술을 배웠고 친구와 얼싸안고 슬픈 자신들의 처지를 서로 비관하며 소주병들을 네댓 병씩 비웠다. 친구에게 담배를 배워 추운 겨울날 가진 것 없이 떠돌아야 하는 신세한탄을 연기로 날려 보냈다. H는 할머니의 사랑 없이, 부모의 사랑 없이 살아있어야 했다. 그런데 H는 14살짜리 소녀였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깊은 외로움과 기댈 곳 없는 깊은 공허함과 허전함. H는 쉼터나 길거리에서 만난 H처럼 사랑이 필요한 가출한 남자들과 사귀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남자들은 H에게 진짜 진정한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다. H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진짜 사랑이 뭔지 잘 몰랐다. 그냥 드라마나 영화 속 그런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었다. H는 사랑을 주고받는 마음과 느낌이 아니라, 표면적인 스킨십과 선물을 주고받는 게 사랑이라고 학습했던 것 같다. 텔레비전을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H는 곧 진짜 사랑의 의미는 퇴색된 그냥 '사귀는 행동'을 했다. H에게는 너무 뻔한 거. 일상적인 거. 남자를 만난다. 손 잡고. 안고. 키스하고. 자고. 한번 이미 했으니 시시하니까 끝. 헤어지고. 다시 다른 남자 만나고. H는 남자의 '하룻밤 놀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자 곧 H에게 '남자와 자는 일'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다. H와 잠자리에 들며 남자들은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서 참을 수 없어서 이런다'라고 했고 다음날이면 이제 사랑 안 한다며 H를 버리고 갔다. H에게  사랑은 이상하리만치 짧고 가볍고 남자들에게 맞춰주려 아무리 노력해도 잡히지 않는, 신기하게 금방 날아가버리는 거였다. 불행히도 H가 남자들에게 채워준 건 사랑이 아니라 욕정뿐이었다. 그러나 H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 H의 가출은 1년이 넘어갔다. H는 자신이 전국의 쉼터란 쉼터는 다 돌고 그 쉼터마다 남자 친구들을 사귀었고(사실 사귄 게 아니라 하룻밤 잔 것이지만) 자기가 사귄 남자들은 (잔 남자들은) 100명도 넘는다고 했다. 100명 넘는 남자들과 잤으니 뭐 늘 하던 거 하다가 돈도 준다는데 라는 생각으로 H는 몸도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 H는 20대 새끼 조폭들의 소굴에서 살며 그들에게 몸을 주며 살게 되었다. 1년 전만 해도 H는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수다 떨고 수학시험 점수가 안 나와 속상한 그저 평범한 14살 소녀였다. 하지만 이제 H는 20대 건달 12명이 돌아가며 데리고 자는 노리개, 가끔 알바로 원조교제, 조건만남을 뛰는 15살이 되고 말았다.


 갈 데까지 가 떨어져 버린 H를 멈춘 건 우연이었다. 경찰이 H가 살던 집을 급습했다. 경찰들은 남자 조폭들의 범죄를 잡으려다 그곳에서 함께 공모하던 피의자이자 (본인은 피해자인 줄 모르는) 피해자인 H를 발견했다. 남자들은 죄다 교도소로, 미성년자인 H는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H는 소년원 생활 후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국가의 명령을 받아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국가의 명령을 조폭 아버지는 더 이상 거역할 수 없었기에 H는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H를 때리지도 않게 되었다. 그래서 H는 행복해졌을까?


 H는 더 이상 평범한 소녀가 아니었다. 불행히도 끔찍한 삶은 H를 너무 많이 바꿔버렸다. 이제 H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 생활이 이제 더 편하고 익숙해져서 집을 나갔다. H의 가족이, 세상이 H를 망가트려 놓고는, 갑자기 왜 착하게 지내지 않냐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H를 내쫓던 엄마가 집에 왜 안 들어오냐며 울고불고 난리였다. 아이들은 진심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아빠는 법원 명령 때문에 날 안 때리지만 때리고 싶어 하는구나. 아빠는 집에 들어오라고 하지만 사실 나랑 있는 게 싫어서 나를 불편하게 해서 내쫓고 싶구나.

H는 지독하게 사랑을 갈구했지만 가족, 남자들 등등 그 대상들은 지독하게도 H를 사랑하지 않았다.


H는 학교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변해버린 H는 학교가 너무 버거웠다. H는 학교 모든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H는 대안학교로 보내졌다. H는 그곳에서도 적응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H는 나름 짜증은 나지만 다시 착해져 보려고 노력도 했다. 하지만 이미 착한 소녀는 H에게 너무 멀고 어렵고 재미없었다. H는 대안학교도 그만두었다. H는 착해지려는 시도마저 이제는 좌절되자 다시 가출을 계획했다. 그 수없이 하던 핸드폰으로 조건만남 어플을 깔고, 페이스북을 통해 더럽고 추악한 남자들을 만났다. 친구도 없고 엄마도 남 같은 외로운 H가 조건 어플에 만나자며 글을 올리면 16살 여자애를 가지려 추악한 쓰레기들이 1분 간격으로 미친 듯이 경매를 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하며 끔찍해했지만, H는 자신이 '예뻐서 인기가 많다'라고 했다. H는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가 몇천 명이 넘는다며 자랑했다. 그러나 그 친구 추천을 거는 작자들은 모두 범죄자, 미성년 성범죄자, 사기꾼, 조폭들이었다. H의 인간관계는 말 그대로 변기통 같았다. 그들이 실시간으로 보내는 끔찍하고 징그러운 메시지들을 H는 '나랑 놀아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었다. 우리는 그 끔찍한 인간관계를 일시적으로, 강제적으로라도 끊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학교, 가족, 복지센터 모두의 의견으로 H는 열여섯의 꽃다운 나이에 정신병원 철창 뒤에 갇혔다. H는 상담과 약을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드디어 H는 깨달았다.


자신을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믿었던 남자들 모두가 나를 사랑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이용했다.


꼭 깨달아야만 했지만, 깨달았을 때, H는 견딜 수가 없었다. 갇혀있는 정신병원 생활도 미칠 것 같았다. H는 자살을 시도했다.


누군가가 H가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울 때, 더 이상 우는 H를 안아줄 할머니가 없었을 때, H를 위로해줬다면, H는 울기를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치유하고 성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누군가가 H가 가출을 접고 집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면, H는 집으로 돌아가는 걸 포기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H는 정신병원에서도 강제퇴원당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으며 학교로부터 아이를 위탁받았다.


H는 어린아이 같은 인내심, 갓난아기 같은 체력, 항상 늘어지고 누워만 있으려 했다. 사실 H는 머리는 좋았다. 하지만 공부는 싫어했다. 깊은 외로움과 허무함, 공허감은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끝없는 외로움과 공허감을 아이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선생님 H 왔어요'라며 센터를 들어올 때마다 나에게 안겼다. 안기는 걸 좋아하는 어린 아기 같았다. 애교도 많고 사실은 숨겨진 꿈도 많은 아기. 태권도를 좋아했다고 했다. 소년원에서 배운 커피를 우리와 내리기도 했다. 우리와 함께 신나게 드릴을 박으며 목공을 하기도 했다. 종종 이전 친구들을 만나고 지저분한 인간들을 만나기도 하며 출석률이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H는 1년을 우리와 보내는 데 성공했다.


겨울방학에 H가 다시 찾아왔다. 아빠가 기분 나쁘다고 난동을 부린다고 했다. 엄마도 맞고 집에 갇혀있어서, 있을 곳이 없어서 왔다고 했다. 우리는 같이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그 아이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그 아이와 수다 떠는 날들이 사실 재미있었다. 친구 같기도 했다.
나는 친구처럼 그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어도, 그 아이는 내가 재미없는 선생님 뿐이었을 수도 있다.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했다. 새로운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다며.

저녁때, 집을 나온 엄마와 함께 아이는 아빠를 피해 지방에 있는 고모네 집으로 가서 지내기로 했다고 했다. 그 고모는 자기가 집 나가 돌아다니는 내내 언제든 고모네 집으로 오라고 계속 연락했다고 했다. 그래. 잘 되었어. 너를 미워하는 사람 말고, 널 사랑하는 척하는 사람들 말고, 널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가야지. 아이는 2월에 온다며 손 흔들며 갔다. 아이는 16살 소녀답게 밝게 웃고 발랄했다. H는 겨울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갔다.


H는 지방의 고모네 집으로 전학을 가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와 H의 위탁교육은 끝났다. 여전히 아이의 페이스북은 지저분한 인간들로 가득하다. 주변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스스로 바뀌지 않는 한 아직은 어렵다. 


누군가는 H의 천성 탓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H를 결국 굴러 떨어지게 한 건 이 세상이다. H를 만나면서 진심으로 세상이 싫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왜 아무도 이 소녀가 돌아가고 싶었을 때 잡지 않았을까. 수없는 외면에 이 소녀는 돌아가길 포기했다. 고통을 씻을 눈물 흘리기를 포기하고 차라리 난 이미 망했어. 라며 술, 담배, 남자 같은 쾌락 속으로 자신을 잊으러 도망쳤다.


H는 강인하게 살아남았, 간절하게 사랑을 원했지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는 H가 진짜 사랑을 깨닫고 자신을 사랑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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