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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Feb 28. 2018

가로등 아래 소년들 5

E의 이야기



E는 길을 걷다 스쳐가면 다시 뒤돌아볼 만큼 잘생기고 멋지다. E는 그 아름다움 덕분에 살아남았고, 그 아름다움을 남용해서 망가졌다.


E를 본 한 아이가 그랬다. E형은 마치 늑대 같은 눈빛을 가졌다고. 그게 가장 E를 잘 표현한 말인 것 같다. E는 키도 크고 잘생겼고 자신을 어떻게 꾸며야 매력적으로 보일 지를 알고 있었다.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자신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도 알았다. E가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E에게 매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최고의 무기였다. E는 아마 처절하게 그 무기를 갈고 벼려냈을 거다. E는 사실 실제로, 어찌 보면 가장 우리 센터 내 아이들 중 온전히 받은 것도, 가진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학력도, 기댈 가족도 전혀 없는 잔인한 세상 속에서 E는 자신이 가진 가장 강하고 위험한 특성을 발견했다. 모든 벽을 뛰어넘어 자신에게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 E는 매력을 무기 삼아 생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의 어머니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E의 아버지는 확실히 E를 버렸다. E는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A 때와 다르게 그 안에서의 생활은 끝없이 눈치를 보고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해야 하는 곳이었나 보다. E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길고 긴 방황과 가출 생활을 시작했다. E는 다른 아이들보다 가출 기간이 길고 살벌했다. 아마 E의 처음 가출 생활도 다른 아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길고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을 사람을 망가트린다. E는 어릴 때부터 어느 바라는 곳에서 일했다. 나는 이 센터에서 일하기 전 그런 곳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사실 그 존재를 알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 유흥주점이 나이 든 남자들이 젊은 여자들을 끼고 노는 곳이라면, 그곳은 나이 든 여자들이 젊은 남자들을 데리고 노는 곳이다. 물론 법적으로 미성년자는 안 되겠지만 E는 겉보기엔 18살에도 완전한 어른 같았고 무엇보다 살기 위해서는 뭐든 속여야 했을 거다. E는 그런 곳에서 일했다. 그것도 아주 오래. 아마 그곳에서 온갖 추악한 인간군상들을 보고 겪었을 거다. 그곳 여자들이 E를 보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술이며 밥이며 사주던 것이 E에게는 엄마에게 못 받았던 밥과 관심이었다. 물론 우리는 그것들이 끔찍하리만치 말도 안 되는 비유라는 것을 당연히 안다. 하지만 이미 세상에서 구를 대로 구르고 닳을 대로 닳은 E에게는 뭐 밥이면 됐지 뭔 차이냐 싶은 그런 거였을 거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기 위해 E는 매력을 항상 전장에서 무의식적으로 차고 다니는 무기처럼 잘 준비하고 다녔다.


E는 머리도 아주 좋다. 함께 지내다 보면 깜짝 놀랄 만큼 명석하다. E는 그 두뇌 덕분에 살아남았고, 그 두뇌를 남용해서 망가졌다. 사회에는 그 뛰어난 머리에서 나온 편법과 불법을 잡아낼 더 정교하고 지혜로운 장치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E는 권력을 안다. 뛰어난 머리로 권력을 휘어잡고 권력을 쟁취할 줄 안다. 권력에 대한 E의 감각은 거의 동물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권력은 E를 강하게 만들지만 결국 E를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만든다.


E는 우리에게 와서 그 누구보다도 잘 지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그 모습을 유지했다. E는 선생님들에게 잘하고, 형에게 잘 보이며, 친구들과 화목했다. 사실 그렇게 '보였던' 것이었지만. E는 지능적으로 가장 권력이 있는 선생님들의 신임을 얻은 후, 그 신임을 등에 업고 아이들을 '통치'하려 했다. 이때, 선생님들이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편하고 싶다면, 이 구조는 그냥 유지된다. 왜냐면, E는 이 과정에서 굉장히 능력 있고 믿음직한 비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은 사실상 가장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사회를 보게 된다. 시키는 일을 척척 해내고, 말도 잘 듣고, 예의 바르며, 즐겁게 잘 지내고, 아무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문제는 숨기기보다는 터놓는 것이 더 건강하다. E는 뒤에서 영리한 방법들로 친구와 형들을 협박하고, 때리고, 달래고, 회유했다. 그렇다고 E를 교사가 배척하면, 이번에 E는 아이들 모두의 동의를 통해 만들어진 권력을 등에 업고 교사를 압박할 터였다. 센터 내 교사들은 이 아이와 지능적이고 보이지 않는 권력 다툼을 해야 했다. E와 적이 되는 건 현명하지 않았지만 E는 멈춰져야 할 권력을 휘둘렀다. E는 시간이 점차 흐르자 이 권력을 휘두르고 남용했다. E를 따르던 아이들 중에도 점차 적이 생기기 시작했다. E는 권력을 잡고 그걸 쓰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E는 점점 무너졌다. 그리고 사실상 E는 센터 내 한 명의 아이일 뿐 가진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 권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영원한 권력은 세상에 없고 그것이 나쁜 수단으로 쓰일 때는 더더욱 그 수명이 짧다. 권력이 진짜로 끝나는 것은 아래에서 끝내는 권력이다. 권력 자체는 사람의 모임에서 나와서다. 교사들은 직접 E를 상대하지 않고 환경들을 다양하게 바꾸어 조금씩 E의 권력을 무력화시켰다. 아이들은 모여있기보다 각자 자신의 특성에 따라 개별 프로그램을 따라가게 되었고 저절로 쓸데없이 E에게 충성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뭐든 간에 꼭 E의 뜻대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E는 권력의 성질을 알고 그걸 다루는 법, 쓰는 법을 알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권력을 가질 자질이 없었다. E는 '권력을 가지면 안 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E는 말 그대로 능력이 있었다. E가 아름답게 그 능력들을 사용했다면 감동적인 자수성가 스토리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E가 좋은 능력들을 가졌다는데 초점을 두고 보았지만, E는 자신이 갖지 못했다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E가 가진 능력을 주변에 나누어 잘 사용했다면 E는 우리와 친구, 동생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E는 늘 자신을 거대한 빌딩 숲 속 길 잃은 아이처럼 느꼈고 자신의 것만 지키려 능력들을 쓰다가 신임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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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는 위험한 고집을 절대 꺾지 않지만 뛰어난 능력들을 가졌다. 나는 E가 세상을 믿고 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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