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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Feb 17. 2018

가로등 아래 소년들 3

C의 이야기

C는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C의 예술가 선생님의 말처럼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C야말로 완전한 예술가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누구든 C를 실제로 본다면 그렇게 느낄 것이다. C는 무엇이든 척 보면 그대로 복사하듯 베껴 그릴 수 있었다. C의 그림은 거침없는 선과 당당한 구도를 갖고 있었고 늘 선명하고 명료했다. 밑그림 스케치도 연습도 필요 없었다. '아 심심해' C는 그 특유의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걸어 들어와 무서운 집중력으로 잉크펜 하나를 들고 유리문에 커다랗고 화려한 나무 한그루를 그려놓고 바람처럼 가버린다.

 C 외모도 늘 감각적이고 세련되었다. 새하얗고 늘 삐쩍 말라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구부정하게 걷지만 모든 움직임 제스처는 자유롭고 여유 있었다. 한쪽만 건 십자가 귀걸이는 C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C를 따라 모든 센터 내 아이들이 한쪽 귀에만 십자가 귀걸이를 하고 다닐 정도였다.   


C는 모든 잠긴 문, 걸려있는 비밀번호를 풀 수 있었다. 적당한 클립, 옷핀 한두 개면 대문이든 현관문이든 금고든 서랍이든 다 열렸다. 비밀번호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푸는지. 하지만 어쨌든 모든 보안장치는 다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C는 지독하리만치 돈에는 관심이 없었다. C는 자신이 그냥 집에 들어가 쉬려고, 안에 뭐가 있나 궁금해서, 이런 이유로 잠긴 문과 자물쇠를 풀었다.


차라리 C가 욕심을 보이는 건 '재미'였다. C는 모든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고 충돌은 눈치 있게 피하며 예의 있게 지냈지만 재미없는 건 참지 못했다. 그렇다고 C가 재미가 없으면 나쁘게 한다는 건 아니다. C는 지루해지면,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이 C에 대해 분노하는 건 그 '사라짐'이었다. 그러나 늘 사람들이 분노할 때 C는 항상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어쨌건 충돌이라는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점이 C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최악의 문제였다. C가 무언가를 얻고, 받고, 배우고, 성취하게 만들려면 끊임없는 재미와 흥미를 유지시켜야 했다. 그러나 사실상 그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도 길어지면 힘든 것처럼.


C는 지독한 골초였다. 센터를 전부 통틀어 그렇게 독한 담배를 그렇게 많이 심하게 피우는 아이는 없었다. C는 밥은 이틀도 굶을 수 있었지만 담배는 3시간만 안 피워도 사람이 바뀔 지경이었다. 아니, C는 모든 중독에 있어 늘 가장 심했다. 아주 마르고 체력도 약했지만 덩치 큰 사람도 나가떨어지는 술판에서도 멀쩡할 만큼 술이 셌고 항상 죽을 것처럼 술을 마셔댔다. 온갖 도박, 게임도 잠을 며칠씩 안자며 하곤 했다. 그리고 잘하기도 했다. 게임판에서 C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 게임 속에서 C는 늘 명민하대범했다.


C는 눈치도 머리도 정말 좋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몇 년이 넘는 그 긴 가출 생활을 했지만 큰 사건에 연루되지도, 보호처분 한번 받은 적도, 위험한 사람들에게 말려든 적도 없었다. 그 엄청난 눈치와 머리 회전으로 사람들과 늘 즐겁게 잘 지냈지만 사실 누구와도 가깝지는 않았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밉지 않게 빠지거나 위험한 사람을 분별하고 의 상하지 않게 거리를 넓히 데에 있어서 C는 도사였다. 어쩌면 그 누구와도 절대 완전히 가까워지지 않는지도 몰랐다. 가까워질 듯하면, C는 마치 스스로 거리 조절을 하듯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너무 싫어도, 너무 위험해도, 너무 친해도, 너무 재미없어도 C는 상대가 준비할 수 없도록 떠나버렸다.


C는 너무 자주 사라졌다. 우리가 C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때였지만 C는 아무 말 없이 사라졌고 고등학교를 자퇴한 시점에 다시 만났다. C는 A와 B가 우리에게 오고 B가 폭력으로 잠시 우리를 떠났을 때 왔다. A는 한 살 형이라는 말에 무섭다며 기겁했지만 실제로 만났을 때는 친하게 잘만 지냈다. C는 그 누구와도 둥글둥글하게 잘 지냈다.


우리는 C에게도 A, B처럼 집, 식사, 교육을 제공했지만 늘 C는 중간에 사라져 버렸다. 실제로 C는 A가 지낸 3년 중 실제로 우리와는 1년 반 정도밖에 함께 지내지 않았다. 그 결과 C는 재능과 머리가 좋았고 형이었음에도 스무 살이 넘어서도 A나 B 보다 사회에서  잘 살지 못했다. 

예상을 벗어난 결과에 나 성실함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C는 A보다 머리가 좋고 B보다 사회성이 좋았고 D보다 눈치도 있었지만 사는 모습은 별 차이가 없었다. 무엇이든 하다가 가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끝에는 늘 남는 게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C는 스무 살이 넘어 우리를 떠났다. C는 꽃 같은 여자 친구와 그림 같은 연애 했지만 그 불성실함으로 여자 친구를 놓쳤다. 그리고 지금도 친구 집에 얹혀살기를 전전하고 있다. 가끔, C는 우리를 찾아온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검정고시 자격증 과정을 권하면 다시 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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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는 끝없이 도망치지만 빛나는 재능 갖고 있었다. 나는 C가 자신의 길을 깨닫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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