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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Apr 15. 2024

#6. 17평에서 8명이 살았다.

닭장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다 이유가 있었다. 이들 중에는 머리가 좋아서 천재 소리를 듣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학벌이 좋거나, 돈 걱정 없이 원하는 학원 다닐 수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친구들은 공부도 잘했고, 무엇을 해도 다 잘했다. 나는 공부 잘하는 친구를 부러워해 본 적이 없다. 내가 가장 질투했던 친구는 자기 방을 가지고 있는 녀석(나는 남중을 다녔다)이었다. 나에게 자신의 방이 있다는 것은 먹을 것으로 싸울 필요가 없을 정도의 형제가 있다는 뜻이었고, 하나의 공간을 내줄 정도의 경제적 여력이 있는 부모님이 계신다는 말이었으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세 개의 방과 하나의 화장실 그리고 부엌과 창고가 있는 20평 남짓의 집에서 살았다. 우리 집은 겨울이면 방에서 입김이 났고, 장판 아래는 수맥이 흐르는 건지 아니면 보일러 관이 터져서인지 항상 축축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천장에는 가끔 물기가 맺히기도 했고, 창고는 쥐와 이름 모를 벌레들로 득실거렸다. 세 개의 방은 꼭 필요한 가구와 누울 정도의 크기만 했다. 부모님의 방은 가족들의 옷을 넣을 수 있는 가구 두 개와 돌로 만든 침대가 하나가 있었고, 누나 방은 옷장 하나와 화장대가 있었다. 나머지 방은 냄새나는 네 명의 형들이 차렷 자세로만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이곳에는 작은 이불장 하나와 용도를 알 수 없는 긴 책상 하나가 있었다. 우리 방의 용도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잠을 자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겨울에 메주를 건조하는 것이었다. 왜 엄마가 우리 방에서만 메주를 건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쉰내 나는 이곳을 어떻게 해서든지 정화하려고 했던 숨은 의도가 있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는 목회하신다고 정신이 없으셨다. 엄마는 아버지 내조와 집안 살림 그리고 교인들을 챙기시느라 바쁘셨다. 나는 궁궐 같은 집에서 형과 누나와 부대끼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밖에서만큼은 그들의 살냄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마당에서, 동네에서, 그리고 들판에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면서 형제들의 냄새를 바람에 날려 보냈다. 한 번은 정신없이 싸돌아 다니는 나를 "이번에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셨던 엄마가 "그만 나가!"라고 소리 지르면서 방 안에 나를 가두셨다. 나는 울면서 제발 밖으로 보내달라고 사정했다. 엄마는 내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도록 문 앞을 지키시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면서 창가에 매달린 채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것뿐이었다.




  집에 대한 기억은 다양하다. 안락한 곳, 쉼이 있는 곳, 행복한 곳, 위로받는 곳, 웃음이 끝나지 않는 곳. 나에게 집은 경쟁하는 곳이었다. 나는 밥을 먹기 위해서는 600만 달러의 사나이보다 빨라야 했고, 부모님의 호출에 즉각 반응하기 위해서는 소머즈와 같은 밝은 귀를 가져야만 했다. 다른 형제들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목소리도 커야만 했다. 최대한 짧은 시간에 가장 빨리 나의 존재를 어필해야만 했다. "나 여기 있어요. 나도 살아있다고요! “진화는 생존의 위기에서 더 빨리 진행되는 법이다. 우리 집(사택)은 교회 옆에 있다 보니 많은 사람이 방문했다. 빈손으로 오는 손님도 있었지만, 대부분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 그것은 종합선물 세트였다. 선물 상자 안에는 껌, 사탕, 젤리, 초콜릿, 과자 등 다양한 먹거리들로 가득 찼다. 상상해 보라. 과자 하나도 마음대로 사 먹지 못하는 동네 꼬마 앞에 휘황찬란한 빛을 내는 알록달록한 과자들의 모습을.


  형제들은 선물 세트가 들어온 날에는 외출하지 않았다. 화장실도 눈치를 보면서 갔다. 혹시라도 낮잠을 자는 날에는 침을 흘리면서 "하나만 줘."라고 다른 형제들에게 구걸했다. 부모님은 선물 세트를 형제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신 것이 아니라, 조련사가 먹잇감을 맹수들에게 던지는 듯이 우리에게 과자 상자를 통째로 주셨다. 여기서부터는 전쟁이 시작된다. 누군가 상자의 포장지를 뜯기도 전에, 제일 빨리 손을 상자에 넣어서 가장 크고, 묵직한 것을 낚아챈다. 한 개만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두 손을 사용해서 최대한 많이 잡는다. 그렇게 시작된 먹이 사냥은 10초도 되기도 전에 끝이 난다. 그래도 우리 형제들 사이에는 규칙이 있었다. "한 사람당 몇 개"라는 나름 공평한 기준에 따라서 비슷한 개수의 과자를 나눠 가졌다. 최고의 간식은 부피가 큰 과자, 그다음은 초콜릿, 그리고 꼴찌는 사탕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껌이라도 건진 사람은 오랫동안 아껴 먹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나름 위안을 삼았다.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지금의 나는 과거 나의 결과이고, 지금의 나는 미래 나의 모습이다. 지금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시간으로, 나는 지금으로 과거를 알고, 지금으로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지금으로 나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가? 말이 빠르고 목소리가 큰 것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수없이 외쳤던 존재의 메아리일 것이고, 양팔로 이불을 고정하고 잠을 자는 것은 추위에서 벗어나기 위한 진화의 흔적일 것이다. 지금 나는 불이 꺼진 방 안에서 과거의 나를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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