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르소나 Apr 12. 2024

#5. 세상의 모든 초콜릿을 가져라.

도둑놈

  스마트폰과 피방이 없던 시절, 동네 친구들은 심심할 때면 동네 슈퍼 앞으로 모였다. 우리들은 함께 딱지치기, 구슬치기, 병뚜껑 놀이, 개구리 잡아서 먹기, 돌 깨기, 유리병 깨기, 연탄재 무너뜨리고 도망가기, 옥상에서 지나가는 여학생들에게 콩알탄 던지기 등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은 모두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동네 아지트로 향한 나는 놀라운 광경을 봤다. 친구들이 양손에 초콜릿을 들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맛있게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왜 그 장면이 나에게 충격이었는지는 그다음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초콜릿을 양쪽 바지 주머니에 한가득 가지고 있던 친구, 얼마나 먹었는지 초콜릿을 한 번 먹고 그냥 버리는 친구, 뜯지도 않은 초콜릿 상자를 그대로 가지고 있던 친구. "이 많은 초콜릿은 다 어디서 났지?"


  지금은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초콜릿을 사 먹을 수 있지만, 예전에 초콜릿이 귀한 때가 있었다. 과자 한 봉지가 300원 하던 시절, 제품마다 가격이 달랐지만, 초콜릿 하나에 500원에서 2,000원까지 그 종류와 가격은 다양했다. 누구도 감히 초콜릿을 껌처럼 쉽게 사서 먹고, 대충 먹고 버릴 수 있는 정신 나간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갑자기 한 명이 "너도 먹을래?" 하면서 초콜릿 한 상자를 나에게 건넸다. 그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이상한 행동의 일원이 되어서 그들과 함께 초콜릿 원정을 떠났다. 옆 동네에서 그 윗동네 그리고 조금 더 먼 곳으로. 우리의 원정은 계속되었다. 그랬다. 이 모든 초콜릿은 동네 슈퍼를 돌아다면서 훔쳤던 도둑놈들의 전리품이었다.


  나의 실력(?)은 하루가 멀다고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초콜릿 훔칠 때의 죄책감은 최고의 쓰리꾼(소매치기의 비표준어)로 칭송을 받는 것에 비교하면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느껴졌다. 칭찬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육 남매 막둥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으니, 나는 세상이 나를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그들은 나를 대장 삼아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제일 크고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을 팔고 있는 슈퍼마켓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년째 되는 한여름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그 현장에 없었다), 친구들은 어디서 절단기를 가져와서 휴가로 문이 닫힌 동네 슈퍼의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정신 나간 폭도처럼 마구 털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밀 장소에 모여서 누가 가장 많이 훔쳤는가를 경쟁하듯이 서로 으스댔다. 앞으로 이들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 채 말이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 동생 한 명이 일요일 오후 물건을 훔쳐서 나오다가 슈퍼 주인에게 발각되면서 우리의 절도 행각은 순식간에 온 동네에 퍼졌다. 경찰관들은 사건의 과정과 내용을 면밀히 검토 후 범행에 가담한 친구들의 부모님을 모두 경찰서로 연행했다. 나는 경찰서와 부모님들이 어떻게 피해를 본 가게들과 합의를 했는지 모른다. 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한겨울에 두 주일 동안 쌍둥이 형과 함께 교회 화장실(재래식)에 하루 종일 서서 지옥을 경험하라고 말씀하신 아버지의 엄포뿐이었다. 초콜릿의 달콤한 맛의 기억은 매스꺼운 화장실의 악취로 나를 괴롭혔고,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친구들의 시선은 영하 10도 이상의 칼바람으로 나를 때렸다.


   쌍둥이 형과 나는 춥고, 냄새나고, 지저분한 곳에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아버지가 "지옥으로 생각하고 하루 종일 서 있어"라는 말이 처음에는 장난으로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다. 형과 나는 정말 밥 먹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화장실에 서서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막상 추위와 싸워야 하는 날들과 고약한 냄새 그리고 주변의 시선은 잘못에 대한 후회보다는 원망으로 바뀌었다. 두 주의 고통스러운 기간이 끝나고 아버지는 형과 나를 부르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까지 훔쳤던 슈퍼를 모두 찾아가서 20,000원과 사과의 편지를 드리고 와라."


  우리는 난감했다. 우리가 훔친 슈퍼의 정확한 위치와 몇 번을 훔쳤는지를 기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가서 "저희가 초콜릿을 훔쳤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들이 경찰관을 부르면 어떻게 할까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령대로 우리는 짧게 쓴 편지와 20,000원을 가지고 여러 슈퍼를 돌아다니면서 사죄의 눈물을 흘렸다.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시는 분들도 계셨고, 기특하다고 다시 돈을 주시는 분도 계셨다. 몇 군데의 슈퍼를 찾아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이 사건이 마무리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 초콜릿과 도둑놈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사건이 내가 선택한 첫 번째 실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친구가 건넨 초콜릿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두 주 동안의 지옥 생활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그 선택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필연적 상황이라면 나는 나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할까?

이전 04화 #4. 좋아할 수 없는 맛있는 음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