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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Aug 13. 2024

#27. 자전거 여행 150km

도전은 선택과 후회의 반복으로 생긴 굳은살이다.

어느 날 두 명의 독일 형제가 키부츠에 왔다. 이들은 독일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이스라엘까지 이동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이들의 등장에 밥을 먹다가 나와 룸메이트 형(한국인)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새로운 도전이 생겼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대부분의 여행을 히치하이킹(hitchhiking,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는 일)으로만 했던 우리에게 독일 형제의 출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행 방식을 시도하도록 우리를 자극했다. 우리는 키부츠닉과 독일 형제에게 부탁해서 두 대의 자전거를 빌렸고, 이 주 후에 이스라엘의 서북부 지역을 여행하기로 했다. 우리가 여행할 지역은 나사렛(Nazareth), 가나(Gana), 아마겟돈(Harmagedon, 혹은 므깃도), 벳산(Beth Shan), 타보르산(Mount Tabor)이었다. 평소 이곳을 가고 싶었던 우리는 구체적인 여행 일정과 준비물을 하나씩 챙기면서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칠지도 모른 채 말이다.


우리가 자전거로 이동할 거리는 150km 정도였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이 도전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스라엘의 날씨를 나름 파악했던 우리는 새벽 2:00 무박이일(無泊伊日) 일정으로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간단하면서도 많았다. 갈증을 해소해 줄 1.5ml 생수통(항상 목에 걸고 다녔다.)과 이틀 동안 먹을 빵, 과일, 치즈, 반 팔과 반바지 두 벌, 지루한 여행을 달래 줄 CD 플레이어도 챙겼다(레이저로 작동했던 기계인 만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음악이 자주 끊겼기 때문에 몇 번 듣지도 못했다.


드디어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날이 왔다. 나와 형은 그 전날에 키부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1:30분 예정대로 우리의 첫 자전거 여행이 시작됐다. 모두가 잠든 새벽 한국인 두 명은 큰 소리로 기쁨의 함성을 지르면서 낯선 환경과 시원한 공기를 온몸으로 만끽했다. "이것이 바로 자전거 여행이구나." 힘차게 달리는 자전거의 속도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나는 정말 자전거 여행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생각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갈릴리 호수 동쪽에서 남부를 거쳐 서부 키네렛(Kinneret)으로 이동할 때까지만 좋았다. 해가 뜨자, 아스팔트의 온도는 급격하게 올라갔다. 갈릴리 지역을 여행할 때까지는 도로가 평지였다면, 키네렛에서 가나로 가는 길은 대부분 언덕길이었다. 그냥 언덕이 아니라, 자동차로도 올라가기 힘들어 보이는 높고 굽은 길이 대부분이었다. 형과 나는 눈앞에 펼 펴진 길을 보면서 서로 속삭였다.


"잘못 왔다."


처음 자전거 여행을 계획할 때는 장소, 거리, 물품만 신경 썼다. 막상 여행하다 보니 놓친 것이 있었다. 자전거 여행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지리적 조건이었다. 우리의 완벽한 계획은 몇 시간이 되지 않아서 틀어졌다. 지금 건너는 산길만 넘으면 평지가 나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달렸다. 그러나 언덕 너머에는 또 다른 언덕이 있었고, 산길 그다음에는 또 다른 험난한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지옥 길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듯 태양은 더 강렬하게 우리를 괴롭혔고, 시원한 바람은 자취를 감추고 뜨거운 입김만 연신 불어댔다. 거기에 독일 친구에게 빌렸던 자전거의 안장이 나와 맞지 않으면서 요도(尿道, urethra)를 계속 눌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점점 심해졌고, 화장실에 도착했을 때는 소변이 나오지 않을 정도까지 됐다.


모든 것이 후회됐다. 몸이 힘드니 말하기도 귀찮았다. 형의 조그만 실수와 불평에도 짜증이 났다. 형도 마찬가지였다. 형은 "군대도 갔다 온 녀석이 그것도 못 참느냐"며 핀잔을 주었고, 나는 "형이 타는 자전거는 내 것보다 훨씬 좋기 때문에 나의 고통을 모른다."라고 따졌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힘겹게 목적지로 자전거를 운전했다. 오후 12:00가 조금 넘는 시간이 되자, 우리는 나무 그늘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빵과 음료수를 먹으면서 다시 키부츠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지 의견을 나눴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식당에서 팔라펠[Falafel, 넓적하고 둥근 빵에 야채, 후무스(으깬 콩을 뛰긴 것], 소스를 넣어서 먹는 대표적인 이스라엘 음식)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침을 흘렸다. 무엇보다 뜨거운 열기로 타들어 갈 듯한 몸을 시원한 갈릴리 호수에 뛰어들고 싶다는 말에 동의하면서 서로가 안쓰럽게 보였다. 하지만 반나절이 넘은 시간 동안 몇 개의 산과 언덕을 온 힘을 다해서 넘어왔다는 생각에 도전을 포기하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정신과 신체는 주변 환경에 적합하게 대응하기보다는 이질적으로 반응했다. 물을 마시면 헛구역질이 났고, 자전거 페달을 밟을수록 요도관에서는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고, 목에 걸고 있는 1.5ml 생수는 큰 바위를 메는 것처럼 무거웠으며, 끝없이 펼쳐진 급경사의 언덕길과 잔인하고 혹독한 날씨는 여기서 죽는 것이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우리의 자전거 여행은 '하고 싶은 여행'에서 '하고 싶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는 여행'이 되었다. 이쯤 되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최대한 빨리 여행을 끝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달리고 달렸다. 경사가 너무 심해서 오를 수 없는 길은 시지프스의 돌을 옮기듯이 각자의 자전거를 밀고 당기면서 올라갔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어떤 차량은 우리 곁을 지나가면서 창문을 내리고 격려를 해주었고, 장난이 심한 현지 청년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약을 올리는 듯한 말과 표정으로 우리를 조롱하기도 했다. 나는 숨쉬기도 힘든 상태로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우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가나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의 성급한 여행 결장과 어리석은 판단을 후회하면서 여행의 모든 순간을 실패의 조각으로 맞춰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왜 자전거 여행을 선택했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내가 왜 지금의 상황을 후회하고 힘들어하는지를 처음부터 되짚어 보았다.


"평범한 도전은 뻔한 경험만 할 뿐이다."

"내 선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모든 것은 끝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나의 도전이 이 정도의 상황에서 끝날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들자. 힘이 났다. 지금 힘든 상황이 더 많은 것을 경험할 기회로 보였다. 여행자 대부분은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차 안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이스라엘의 시골 풍경을 TV의 한 장면처럼 눈으로만 관찰하겠지만, 나는 팔레스타인 목동이 이끄는 수백 마리의 양무리를 흥미롭게 관찰할 수도 있었고, 물 한 방울 없는 광야에서 아름다운 꽃 한 송에 눈을 축일 수 있었으며, 나무 아래 편하게 누워서 이스라엘식의 여유도 챙길 수 있었다. 목말라하는 나에게 이스라엘 노인이 건넨 생수 한 모금의 기쁨과 환한 미소로 인사하는 어느 여인의 자상함은 온전히 자전거 여행을 선택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었다. 또한, 한 시간 정도 걸려서 힘겹게 오른, 높고 험난한 언덕길 정상에서 내리 달리는 쾌감은 로드 바이크와 산악자전거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까지 나에게 선사해 주었다. 나는 나의 선택을 감사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상황을  즐기고,  많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힘을 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도 됐다. 인생에서 더(more)는 선택과 선택의 상황을 긍정할 줄 아는 사람에게 신이 허락하신 선택의 잉여물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선택의 상황에 직면한다. 현재 상황과 가능성을 최대한 고민해서 최선의 선택지를 고른다. 하지만 선택의 상황이 상상에서 현실로 바뀌면 처음에 고려했던 것이 불필요한 고민인 것을 깨닫게 된다. 처음에 예상했던 것 그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선택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것이 아닌, 저것을 선택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선택은 알 수 없는 미래의, 확신할 수 없는 판단의 순간이다. 이 선택이 신념과 확신에서 시작했다면, 미래와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선택이 현재의 충동적인 욕망과 외부의 시선에 따른 수동적 선택이 아니라, 깊은 내면의 성찰과 고민으로 결심했다면, 당신은 그 어떤 것도 해 낼 수 있다. 결과는 선택의 상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 그 이후의 결과에 대처하는 자세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도전은 선택과 후회의 반복으로 생긴 굳은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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