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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Aug 06. 2024

#26. 에인 게브 키부츠

우물 안의 개구리는 대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에인 게브는 이스라엘 북부의 갈릴리 호수 우편에 자리 잡은 키부츠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키부츠닉(Kibbuznik, 키부츠 정착민)은 주로 관광업(갈릴리 호수의 숙박과 레스토랑)과 농업(바나나 농장)에서 나오는 비용으로 공동체를 운영한다. 키부츠 내에는 작지만, 유치원, 학교, 병원 등의 기본 시설이 있어서 키부츠닉은 경제 및 교육 활동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경험과 일을 배웠다. 바나나 농장에서는 바나나가 잘 열릴 수 있도록 가지치기하는 방법을 배웠고, 가축들의 사료를 운반하기 위해서 트랙터 운전하는 법도 익혔다. 어떤 날에는 홀리데이 빌리지의 해변을 관리하기도 했고, 세탁소에서는 한국과 다른 방식으로 옷을 정리하는 것도 배웠다. 한국에서 요리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된 키부츠 리더는 나에게 주방 보조 일을 요청하면서 나는 이스라엘의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방법과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나는 안타깝게도 대부분 채소 다듬기, 주방 청소, 음식 운반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음식을 만드는 방법은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 내가 일했던 것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갈릴리 호수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잡는 일이었다.


에인 게브 사람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고기를 잡았다. 아침 5시간(이스라엘은 아침 7시만 돼도 온도가 30도 이상이 넘는다.) 되면 선장을 제외한 키부츠닉과 볼런티어들은 고철로 된 배 안에 잘게 부순 얼음을 한가득 싣고 비밀 덮개로 얼음을 덮었다. 이 얼음의 용도는 잡은 고기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얼음 운반작업이 끝나면, 고철 배의 앞부분과 운행 선(조타와 항법 장치가 있는 배)의 선미에 단단한 줄로 묶고 후 선에는 두 명의 승조원을 탑승시켰다. 그러면 출항 준비가 모두 끝났다. 고기를 잡는 시간은 얼음이 녹는 시간 동안이었다. 배가 항구를 떠난 지 20분 정도가 되면, 선장은 항법 장치로 고기떼의 위치를 확인 후 계란판을 던져서 그 지점을 선원들이 인지할 수 있게 했다. 후 선에 있는 사람들이 엥커(anchor, 돛)를 내리고 선장에게 신호를 보내면, 선장은 배의 속도를 높여서 원 모형으로 그물을 쳤다. 그물 작업이 끝나면 후 선에 있는 사람들은 운행 선으로 넘어와서 함께 그물을 당겼다. 기계의 힘을 빌려도 될 것 같은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두 손으로 그물을 당겼다. 40도가 넘는 뜨거운 호수 위에서 온 힘을 다해서 그물을 당기는 것은 여간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작업이 늦어지면 고기가 도망을 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그물을 당겨야만 했다. 그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어느 정도 고기가 잡히면, 두 명의 선원은 다시 후 선으로 이동해서 최대한 빨리 삽으로 얼음을 퍼서 고기를 덮었다. 그러면 1차 조업이 끝이 났고, 이런 작업을 오후 12:00까지 반복하면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미리 준비해 온 빵과 음료수를 배 위에서 먹는 것이었다. 커피는 호수의 물을 끓여서 마셨다. 식수는 호수의 물을 컵으로 그냥 마셨다. 설거지는 더 간단했다. 세제 없이 물로 접시와 컵을 닦아 주기만 하면 됐다. 이렇게 30분 정도의 식사 시간이 끝나면 다시 어업에 나섰다. 12:00~14:00 사이에는 45도가 넘으면서 얼음이 더 빨리 녹기 때문이다. 이 시간 동안 우리들의 손길은 더 바빠졌다. 더운 날씨에 힘겨운 일은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는 일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더 신나게 일을 했다. 내가 베드로(어부 출신인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에인 게브 키부츠에서 고기잡이 일은 모든 볼런티어에게 허용되는 않았다. 나도 처음에는 세탁소와 주방에서만 일을 하다가, 볼런티어 리더에게 몇 번이고 고기 잡는 일을 하고 싶다고 부탁했었다. 선장은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일을 하다가 위험할 수 있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다른 작업 현장에서 OO는 다른 외국인과 달리 성실하게 일한다는 말을 들은 리더는 선장을 오래 설득한 후, 나에게 승선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주었다.  




14:00이 되면 모두 어업 활동이 끝이 난다. 그러면 모든 볼런티어가 기대하는 갈릴리식 윈드서핑을 즐길 시간이다. 선장이 배에서 긴 줄 하나를 호수에 던지면, 순서대로 한 명씩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줄을 양손으로 강하게 움켜쥔다. 선장과 서핑을 즐길 사람이 서로 오케이 하면, 선장은 배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줄을 잡고 물속에 있던 친구는 배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수면 위로 자신의 몸을 조금씩 노출하면서 물 위를 달리게 된다. 갈릴리 서핑은 배의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특별한 장비가 없어도, 발을 보드(board) 삼아서 물 위를 시원하게 달릴 수 있다. 이 모습이 얼마나 스릴이 있고 재미가 있는지 달리는 동안 물 위에 있는 사람이나, 그 장면을 지켜보는 친구들 모두 큰 소리를 외치면서 환호했다.  


"Great!" (멋있다.)

"You did it." (잘하고 있어.)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천 년 전에 베드로가 고기를 잡다가 예수를 만났던 그 장소에서, 내가 똑같이 고기를 잡는 모습을 말이다. 이 장면은 꼭 종교인이 아니어도, 자신이 평소 소원했던 것을, 그렇게도 원했던 현장에서 직접 체험했을 때 느끼는 황홀한 감정과 같다.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것, 상상이 실제가 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자리를 떠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나에게 갈릴리 호수와 예수 그리고 베드로, 더 나아가 수 천년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의 현장이 나에게 경험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기개(氣槪, unyielding spirit) 때문이었다.  


우리 모두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라는 것을 꼭 이뤄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이 있다. 이 바람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떠나야 한다. 지금의 자리에서 만족하지 않고 일어서서 또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지금의 환경이 편하고, 주변의 사람이 좋고, 현재의 조건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의 안위에 만족하는 것은 나의 성장 근육의 이완과 수축을 방해서 나의 행동을 더디게 만들고, 결국에는 나를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의 만의(滿意, satisfaction)가 더 큰 성장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 불안하고, 막연하고, 고생할 것 같은 것에 도전해야 한다. 힘들겠지만, 장소를 옮기면 새로운 것이 보이고, 무엇인가를 하면서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기게 된다.


우리 속담 중에 "우물 안에 개구리"가 있듯이, 서양에도 비슷한 격언이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대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A frog in the well knows nothing of the great ocean.) 내가 아는 것만큼 세상은 보이기 마련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세상은 우물이고, 호수 안의 개구리에게 세상은 호수인 것처럼, 나의 세상을 넓이기 위해서는 더 큰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 나의 우물이 대한민국이었다면, 이스라엘에 있을 때 나의 우물은 중동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나의 행동반경이 넓어지면,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경험이 다양해지면 행동과 판단이 과감해진다. 그러면 나의 목표는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으로 구체화하면서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것이 내가 이룰 목표가 된다. 그러면 된다.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면,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그러면 절반은 이룬 셈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대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사진출처: facebook(ein gev):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0158041646481417&set=pcb.1015804164688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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