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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Aug 20. 2024

#28. 히치하이커

도전에 내기를 걸어라.  

나는 150km의 자전거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여행에 더욱더 자신감이 생겼다. 틈만 나면 갈릴리 주변을 돌아다녔고, 키부츠에서 제공하는 휴가(한 달에 3일 정도 휴가를 준다.)를 모아서 이스라엘 전역을 룸메이트 형 또는 동생들과 여행했다. 에인 게브에서 한국인은 나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 있었다. 현지인같이 영어와 히브리어를 잘했던 세라 누나, 운동을 잘했던 공룡 아저씨 동혁이 형, 따뜻한 마음과 호탕한 성격을 가진 랑이, 말없이 혼자 사부작사부작할 것은 다 했던 소미, 언제나 주변 사람을 잘 챙겼던 새침쟁이 효진이. 우리는 이스라엘 여행을 모두 같이 하지 않았지만, 이들과 함께 한 여행은 나에게 모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가이사라(Caesarea) 해변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이야기를 나눈 것과 욥바(Jobba)의 해안가 절벽에 붙어 있는 쥐며느리를 민며느리라고 모두 잘못 알고 배꼽을 잡고 웃었던 기억, 계단식 정원으로 유명한 바하이가든(Bahai Garden Haifa)을 배경으로 찍은 아름다운 경관의 사진과 예루살렘의 올드 투어 여행은 나의 기억 속 앨범의 가장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과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나에게 선물해 준 이스라엘을 좋아한다.  


이스라엘은 대한민국과 지리적으로 유사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고대 근동(Ancient Near East)에는 이스라엘 북쪽으로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바빌로니아)가, 남쪽으로 이집트와 페르시아가 있었다. 북쪽의 강대국이 남부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통과해야만 했고, 남쪽의 나라들도 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침략과 전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강대국 사이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는 것이었고, 살기 위해서는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뭉쳐서 끝까지 버티는 것뿐이었다. 민족 우월주의를 상징하기도 하는 선민사상(하나님이 선택한 백성, the doctrine of election)이 종교와 연관성이 있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종교적 고집과도 같은 유일신앙(고대에는 다신교가 대부분이었다.)과 함께 유대인의 생명력을 유지해 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들의 역사적 디엔에이(DNA) 때문인지, 이스라엘은 AD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지만, 이천 년이 지난 1948년 지금의 팔레스타인에 모두 사라진 고대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만 역사에 다시 등장한다.


어떤 것이든 알면 더 많이 보이고 더 잘 보이는 법이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볼거리와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찬 나라다. 한반도 1/5 정도의 작은 땅인 이스라엘의 최북단에는 한 겨울에 스키를 탈 수 있는 헬몬산(Mt. Hermon, "거룩한 산")이 있다. 이 산에서부터 흐르는 물은 갈릴리 호수의 원천이 되며, 풍부한 수량은 가이사라 빌립보(Banias, Caesarea Philippi) 인근 지역에 깊은 계곡과 밀림이 생겨나도록 했으며,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서쪽에는 보석 바다로 유명한 지중해(Mediterranean Sea, "땅 한가운데 있다.")가 있고, 남쪽으로는 오랜 화산 활동과 침식작용으로 생긴 독특한 모양과 색깔을 지닌 바위산과 습곡 지대로 된 네게브 사막(Negev Desert, "황무지")이 있다. 무엇보다 해발 -430.5m로 지표에서 가장 낮은 곳에는 사해(Dead Sea, "소금")가 있다. 이곳에서의 수영은 오직 이스라엘서만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재밋거리이다. 또한,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의 삼국이 만나는 아카바 만(Gulf of Aqaba)에는 다양한 해양 생물들을 경험할 수 있는 스노클링 명소가 즐비하기도 하다. 또한, 이스라엘에는 내가 발론티어로 일했던 갈릴리 호수(Sea of Galilee, "바다 같이 크다는 의미")도 있다. 어찌 이것들 뿐이겠는가! 고대 도시들의 유적들과 유명한 역사적인 장소까지 덧붙인다면, 이스라엘은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우리의 버킷리스트는 한 번 정도는 수정될 가능성이 높은 나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스라엘 여행을 글로 쓴다면 책 몇 권으로도 부족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내가 키부츠 이야기를 "이런 인생도 있습니다."에서 언급한 이유는 앞으로 더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내 인생의 도전 이야기에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앞으로 소개할 요르단, 이집트, 터키 여행 이야기는 나라별로 하나의 장(#)으로만 끝내려고 한다. 시간적인 여유가 더 있다면, 더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경험을 나중에라도 함께 나눠보고 싶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으로 그중에 몇 가지 경험만을 간단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1. 키부츠 전체 발론티어를 모아서 태권도 훈련을 한 후, 킥복싱을 하는 친구가 와서 같이 대련하고자 한 일; 그 이후 스웨덴에서 온 친구가 자신은 가라테를 한다고 하면서 시합을 하자고 결투를 신청한 일

2. 태권도 격파를 미국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짱돌을 준비(하루 전날 미리 금을 냈다.) 하고 자신 있게 격파한 일

3. 터진 고무보트(구명조끼 없이)를 타고 노 없이 두 손만으로 갈릴리 바다를 건너려고 한 일(배로 30분은 건너야 할 거리다.)

4. 사막에서 잠을 자다가 전갈에서 쏘일 뻔한 일; 엄청나게 많은 별에 눈이 호강한 일

5. 베들레헴에서 멋모르고 이스라엘을 칭찬했다가 팔레스타인 가게 주인에게 쫓겨난 일

6. 갈릴리호수에 잡은 조개와 게(crab)로 수제비를 끓여서 친구들과 파티한 일

7. 안식일에 사발면을 먹기 위해서 이스라엘 군인과 싸워서 뜨거운 물을 받아내고 통곡의 벽을 보면서 라면을 먹었던 일

8. 사해에 누워서 책을 봤던 일; 갈릴리호수, 지중해, 홍해 바다, 사해에서 수영한 일

9. 원형 극장에서 노래를 불러 본 일

10. 히치하이킹으로 이스라엘 전역을 돌아다닌 일

 

이스라엘을 여행한 사람 중에는 나보다 더 기억할 만한 추억을 간직하신 분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에인 게브를 방문한 어떤 한국인은 오직 자전거로만 이스라엘 전역을 여행했다. 내가 그분을 처음 봤을 때 바지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는데, 새벽에 네게브 사막을 이동하면서 들개떼의 습격으로 바지가 찢어졌다고 했다.) 내가 이스라엘을 여행하기로 다짐한 이유가 대학교 동기 형의 권유와 영어를 생활로 배워보고 싶다는 바람(#22.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늦지 않도록" 참고)인 것을 고려하면, 히치하이커로서 내 여행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히치하이킹(hitchhiking)을 시도할 수 있지만, 모든 차주가 쉽게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차량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히치하이킹도 나름 노하우가 필요하다. 먼저 오른팔을 길게 뻗어서 검지와 중지에 힘을 모은다. 거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팔목만 "까닥까닥" 흔들지 않고, 팔 전체에 탄력을 줘서 오른팔이 움직임의 디딤돌 역할이 되도록 신경 쓰면서 손가락은 간절함과 애절함의 동작으로, 크게 위아래로 흔들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손가락을 사용해서 차를 세울 것인가"가 아니다. 손가락을 사용하는 목적의 의미가 운전자에게 전달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손가락의 언어를 몸의 언어로, 그리고 몸의 언어가 마음의 언어를 담아서 운전자에게 전달되게 하는 것이다. 다른 의미로, 히치하이커는 자신의 손과 몸을 써서 운전자에게 초대(invitation)와 환대(hospitality)를 받고 싶다고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운전자가 차를 세우면, 나는 이방인에서 초대받은 자로 환대받겠지만, 차가 내 앞을 지나가면, 나는 낯선 이에서 버림받은 자로 버려지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언제나 히치하이커에서 운전자로 또는 운전자에서 히치하이커가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상학자 리처드 커니(Richard Kearney)는「이방인, 신, 괴물」이라는 책에서 타자성에 관해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타자의 출현에 항상 당황하면서 자신의 주체성이 공격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나(주체)는 너(타자)로 온전히 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온전히 나로 설명될 수 없고, 너에게 비췬 나의 모습으로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 앞에 출현한 타자는 네가 아니라, 내가 될 수 있고, 다시 타자는 내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결국, 주체와 타자의 개념은 내가 만든 주인과 종의 개념이지, 관계 진술의 개념이 아니라는 말이다.


히치하이커로서 나의 신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과거 여행자였지만, 지금은 운전자이다. "운전자가 나를 태워줄 것인가?" "내가 어떤 차를 잡아탈 것인가?"는 나의 선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내가 운전자가 될 때, 운전자가 내가 될 때, 나(히치하이커이면서 동시에 운전자)는 온전히 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히치하이커로서 "200미터 앞에 오고 있는 흰색 SUV를 타깃으로 할 것인가?"


운전자로서 "200미터 앞에 서 있는 저 친구를 나의 SUV에 태울 것인가?


이 선택의 상황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기(wager)뿐이다. 20대 초반 나는 도전과 경험에 내기를 걸었고, 그 결과 더 큰 내기에 도전할 수 있는 배짱이 생겼다. 그 배짱으로 나는 학생에서 여행자로, 여행자에서 유학생으로, 유학생에서 원장으로, 원장에서 박사로, 박사에서 교수로 도전할 수 있었다.  


고민이 되는가? 망설여지는가? 걱정이 되는가? 그러면 지금 당신 앞으로 달려오고 있는 여러 고민거리를 히치하이커의 손동작으로 잡아 세우라. 그리고 외쳐보자.  


"도전에 내기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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