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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Sep 03. 2024

#30. 찬란한 과거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이고,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로 완성된다.

눈물을 머금고 단 4일 만에 키부츠로 복귀한 나는 남은 여행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한국에 있는 큰 형에게 얼마의 돈을 빌린 후 요르단과 이집트를 여행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룸메이트 형과 두 나라를 같이 여행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나는 튀르키예서의 충격과 여행 자금의 문제로 혼자 여행하기로 했다. 이슬람 국가를 혼자 여행한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스라엘과 튀르키예서의 수많은 경험은 나에게 걱정보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나는 키부츠에서 15일 정도 머무른 후, 키부츠 리더와 발론티어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긴장과 설렘을 안고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있는 요르단의 페트라(Petra)와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로 향했다.


배낭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한 가지는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고 계획에도 없는 뜻밖의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요르단을 일주일 그리고 이집트를 이 주일 여행하기로 하고 요르단의 수도 암만으로 이동했다. 내가 요르단에 가려고 한 이유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 1989>과 <스타워즈 : 라이즈 오브 스카이 워커, 2019>의 촬영지로 유명한 페트라를 보고 싶어서였다. 첫 번째 요르단 일정은 모세(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현재 이스라엘 땅]으로 이끈 지도자)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진 모세 기념교회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죽은 곳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한 곳이기도 했다. 산 정상에는 멀리 가나안 땅이 보였고, 모세를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놋 뱀 조각물과 모세 기념교회가 있었다. 이 교회는 잘 보존된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교회 바닥에는 사냥과 가축을 기르는 모습을 묘사한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고, 예배를 집례하는 탁자 앞으로는 애프스(apse)라고 불리는 반원형 구조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세 개가 있었다. 이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4세기에 처음 이곳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느낄 것 같은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는 암만에서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후, 다음 날 아침 페트라로 향하는 버스가 있는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어떤 이유로 버스가 아닌 승합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좁은 차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8시간을 에어컨 없이 사막 길과 울퉁불퉁한 시골길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비좁은 승합차 안에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답답함과 눈과 코가 아플 정도로 끝없이 들어오는 뜨거운 모래바람, 적응되지 않은 아랍 특유의 냄새는 마치 내가 어떤 큰 죄를 짓고 사막의 어느 교도소로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게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된 시간을 보낸 후, 나는 페트라 근처의 어느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본 관광객 준 이쉬바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일본 의과 대학생으로 인턴 생활을 하기 전에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페트라를 보러 왔다고 했다. 그날 저녁 나는 그와 함께 숙소에서 서로의 여행담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른 아침 우리는 설레는 가슴을 품고 페트라로 향했다.


페트라(바위를 뜻함)는 바위를 깎아 만든 고대 암벽 도시로, 나바테아 왕국(기원전 2세기 아라비아 북부와 남부 레반트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수도로 큰 번영을 이뤘다가 106년 로마에 의해서 멸망했다. 이 고대 도시는 지리적으로 이스라엘,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위치했던 만큼 무역으로 크게 번성했다. 페트라 여행은 영화의 클라이맥스(climax)를 경험하는 것 같이 여행자에게 과하지 않으면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조금씩 설렘과 감탄 그리고 감동을 선물했다. 석류색 빛을 띠는 높은 돌산 틈 사이의 평지를 따라서 시크(siq, 협곡)를 걷다 보면 어떻게 이 높고 긴 길을 만들었을까 하면서 감탄하게 된다. 그렇게 2km를 걷다가 조금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거대한 협곡 사이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알카즈네(보물창고) 건축물이 보인다. 그러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페트라의 놀라운 유적물을 구경하면서 눈으로 호사를 누리면 된다. 나는 하루 종일 일본 친구와 함께 페트라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놀라운 나바테아인의 건축 기술에 연신 감탄했다.


로마가 페트라를 멸망시키기 전까지 나바테아인은 분명 자신들의 왕국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천 년이 지난 후 그들의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과거의 찬란한 역사의 흔적만이 건축물로만 남아있다. 역사적으로 나바테아인은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지만, 페트라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건축물을 통해서 자신들의 존재를 말해 주고 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페트라의 감동을 사진에 간직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의 너는 과거인가? 미래인가?"


나는 깜짝 놀랐다. 누가 나에게 말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 음성은 어디서 들리는 것일까? 주변을 둘러봐도 목소리의 근원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조금까지 흥분으로 가득 찼던 마음은 정체불명의 음성에 어느새 긴장하고 있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음성이 들리는 거지?"


나는 이 느닷없는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답을 찾기 위해서 며칠을 고민해 봤지만, 그 어떤 답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바테아인이 건넨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집트 여행의 마지막 날에 찾을 수 있었다.  




나에게 이집트는 셀 수 없이 많은 유적물로 넘쳐나는 카이로 박물관만큼이나 다양한 경험들로 가득하다. 만약 모든 내용을 다 적는다면 책 한 권 이상의 분량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을 적으면 다음과 같다.  


1.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3시간 기차를 타고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후 다시 6시간 버스로 이동해서 도착한 시와 오와시스(이곳에는 오래된 고대 도시의 흔적이 있고, 클레오파트라가 목욕한 깊은 연못이 있음)

2. 왕가의 골짜기 근처에 묵었던 숙소 주인의 추천으로 1박 2일 동안 나일강 상류에서 하류까지 바람으로만 움직이는 뗏목 선을 타고 나일강을 여행한 일

3. 칸 알-칼리리(이집트에서 가장 큰 시장)에서 이집트 사람과 말다툼(물건 가격을 흥정으로)하다가 이집트인들에게 둘러싸여서 죽을 뻔한 일

4. 기자 피라미드를 찾기 위해서 길을 묻다가 이집트인의 친절한 호의에 넘어가서 큰돈을 지불했을 뻔한 일

5. 알렉산드리아의 시골 시장에서 살아있는 양과 소를 바로 잡아서 케밥을 만들어 먹은 일

6. 이집트인의 난폭 운전에 치여서 도로에서 쓰러진 일

7. 휴지가 없어서 몇몇 현지인처럼 손으로 용변을 처리한 일

8. 파피루스로 직접 종이를 만들어서 책을 만들어 본 일


이 밖에도 나는 다른 여행자들처럼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내가 여행한 곳은 북쪽으로 기자의 피라미드(내부 무덤 포함)와 카이로 박물과 서쪽으로는 알렉산드리아와 고대도시, 남쪽으로는 룩소르, 카르낙 신전, 왕가의 골짜기, 아부심벨, 핫셉수트 장제전 등이 있다. 각각의 장소에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지만, 나에게 배낭여행 이야기는 인생의 목표와 도전을 위한 한 장(chapter)이기 때문에 이쯤에서 여행 이야기는 마쳐야 할 것 같다. 다시 요르단에서 받은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이집트를 여행하는 동안 나바테아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수없이 생각했다.


"지금의 너는 과거인가? 미래인가?"


왜 나에게 이런 질문이 떠 올랐을까?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분명 지금 있다. 내가 지금 있기에 나이고, 나는 현재 존재하기에 나는 미래에도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정말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일까?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였을까를 생각해 보면 과거의 나는 옛날의 나이지 지금의 나는 아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나는 과거인가? 현재인가? 미래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한 문구를 보고 찾았다.


그날은 유난히 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룩소르에 있는 핫셉수트 장제전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평소처럼 이집트 밖의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창가 우측에 멤논 거상이 지나갔고 바로 옆에 이런 글귀의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기억하라. 찬란한 과거의 역사를!"


갑자기 눈이 떠졌다. 나는 비밀의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한 듯 전율을 느꼈다. 두 단어가 머리에서 맴돌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았다. 그것은 기억과거였다. 현재 이집트는 기원전 30년 고대 이집트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은 문자, 농업, 건축, 종교 등의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피라미드, 카르낙 신전, 왕가의 계곡을 건축했고, 그들의 영광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점령하기 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현재의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었다. 이 기억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도전과 성장을 위한 기억이 아니라, "찬란한 과거" 에만 머문 과거의 "역사"였다. 만약 이들이 과거의 역사를 경험 삼아서 자신의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켰다면, 이집트는 더 강하고 부유한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과거의 기억(경험)으로 지금의 내가 되고, 지금의 나는(도전)으로 미래의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난날의 실패와 아픔이 아니라, 미래에 성공할 수 있는 나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의 현재이면서 미래의 내가 될 수 있는 시간의 주인공이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든 현재의 나이지만, 지금은 과거를 기억하면서 한숨만 쉬고 후회하는 시간이 아니라, 희망을 품고 미래를 가능성으로 세공하는 기회의 시간이다. 나는 "지금의 너는 과거인가? 미래인가?"에 대한 질문과 "기억하라. 찬란한 과거의 역사를!"의 문구를 가지고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들어 보았다.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한 나이고,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로 완성된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자, 나는 미국 유학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부터는 여행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서 더 치열하게 미래의 나를 준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 앞에는 언제나 뜻밖의 유혹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 나의 첫사랑이 프랑스에서 잠시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나는 유학이 아닌 사랑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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