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문학에 울려 퍼진 매미의 노래

조선의 매미를 찾아서 3

조선 시대의 여름은 매미 소리로 가득 찼다. 산과 들, 마을 어귀에서 울려 퍼지는 '맴맴맴' 소리는 참매미가 이끄는 계절의 상징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조선 선비들의 자연 관찰과 생태적 인식이 담겨 있었다. 앞장에서 우리는 유학을 중심으로 한 조선 선비들이 매미를 '오덕(五德)' – 배움, 청결, 청렴, 검소, 신의 – 을 지닌 덕스러운 존재로 이상화하며, 이를 통해 청렴과 절개의 상징으로 삼았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추앙은 매미의 생태적 사실을 유교적 덕목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일 뿐, 실제 매미의 생활사나 습성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 수준을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조선 선비들은 매미를 고결한 이미지로 높이 평가했지만, 과연 그들은 매미의 실제 생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조선 시대 문학은 사대부와 민간 계층의 삶을 반영하며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사대부는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시(漢詩), 시조(時調), 가사(歌辭)를 주로 창작하였으며, 특히 한시는 그들의 학문적·철학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 장르였다. 한시는 중국 고전 문학에서 유래한 형식으로, 오언절구(五言絶句, 한 줄에 다섯 글자씩 네 구), 칠언절구(七言絶句, 한 줄에 일곱 글자씩 네 구), 오언율시(五言律詩, 다섯 글자씩 여덟 구), 칠언율시(七言律詩, 일곱 글자씩 여덟 구)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칠언율시는 평측(平仄, 음의 높낮이 규칙)과 대구(對句, 두 줄이 대칭을 이루는 구조)를 엄격히 지켜 조선 선비들의 질서 정연한 세계관을 반영했다. 칠언율시는 매미 소리의 리듬처럼 반복과 변주가 조화를 이루는 형식으로, 선비들이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엮어내는 데 최적이었다.


한편, 시조는 3장 6구로 구성된 한국 고유의 정형시로,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표현이 특징이다. 가사는 시조보다 긴 서사적 형식으로, 선비들의 철학적 성찰이나 교훈을 담았다. 사대부들은 한시를 가장 고급스러운 장르로 여겼지만, 시조와 가사도 즐기며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 민간 문학으로는 판소리, 민요, 한글 소설(예: 《춘향전》, 《홍길동전》)이 있었으나, 매미는 주로 사대부의 한시와 시조에서 상징적 소재로 등장했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문학적 배경 속에서 매미가 어떻게 다뤄졌는지, 조선 사람들의 생태 지식 수준을 문학 작품을 통해 탐구한다.


문학작품을 들여다보면, 매미의 외모나 울음소리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사례가 많지만, 그 속에 담긴 생태적 관찰은 대체로 표면적이며 상징성에 치중한다. 이는 조선 시대 자연 지식의 특징을 보여주며, 실학 이전까지는 매미를 도덕적 비유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 그쳤음을 시사한다. 기계음 없는 조선의 자연 환경에서 매미 소리는 여름의 대표적 현상이었다. 상상해보라. 한양의 거리나 농촌 마을에서 매미 무리가 합창하듯 울어대면, 선비들이 붓을 멈추고 "여름이 깊었구나"라며 고개를 들었을 장면을. 문학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매미 관련 묘사는 그들의 생태지식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제 고려 말부터 조선 말기까지의 문학 속 매미를 따라가며, 그들의 관찰이 어디까지 미쳤는지, 그리고 어떤 문학 형식이 그들의 생각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흥미롭게 탐색해 보자.


고려 말·조선 초: 김극기의 《통달역》

김극기(金克己, ?1209? 추정)는 고려 중기 문인으로, 호는 노봉(盧峯)이다. 고려 명종(1170-1197) 때 활동한 그는 문과에 급제해 의주방어판관, 금나라 사신 등 관직을 거쳤다. 당시 고려는 몽골 침략과 무신정권의 혼란 속에 있었지만, 김극기는 관직을 떠나 전원생활을 즐기며 자연과 나그네의 고독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 그의 생애는 사대부의 이상적 삶—관직과 은둔의 균형—을 보여주며, 이는 후대 조선 선비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는 주로 한시로, 문집 《김거사집》에 수록되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대신 조선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이 편찬한 《동문선(東文選)》을 통해 전해진다. 《동문선》은 조선 초기(1615년경) 편찬된 150권 규모의 대형 문집으로, 고려와 조선 초기의 시와 산문을 체계적으로 모아 후대 선비들의 문학 교본으로 사용되었다. 이 문집은 현대의 문학 앤솔로지처럼, 과거 문인들의 작품을 보존하며 조선 문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김극기 통달역 원문(동문선본)최종.jpg

김극기의 《통달역(通達驛)》은 함경도 고원군의 역참에서 지은 시로, 12세기 후반(1190년대)으로 추정된다. 통달역은 고산도(高山道)의 교통 요지로, 나그네들이 말과 물자를 교환하며 쉬던 곳이었다. 이곳의 쓸쓸한 분위기는 김극기의 시에 고독한 정취로 녹아들었다. 이 시는 오언절구 형식으로, 한 줄에 다섯 글자씩 네 구로 구성되어 간결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언절구는 중국 한나라 때 시작된 형식으로, 조선 선비들에게도 사랑받았는데, 짧은 트윗처럼 순간의 감정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매력이 있다. 흥미롭게도, 고려 선비들이 역참 같은 장소에서 시를 지으며 여행의 감정을 기록한 것은, 오늘날 여행 블로그나 SNS 포스팅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통달역(通達驛)》

煙楊窣地拂金絲 (연양솔지불금사) 안개 낀 버드나무가 땅에 닿아 금실처럼 너울대고

幾被行人贈別離 (기피행인증별리) 몇 번이나 행인에게 이별을 선사하네

森邊一隻知客恨 (삼변일척지객한) 숲가 한 마리 매미가 손님의 한을 아는 듯

長吟上枝落日遲 (장음상지낙일지) 긴 소리로 가지 위에서 울어대니 석양이 늦네


매미 울음을 '장음(長吟)'으로 묘사하여 지속적이고 애절한 소리로 나그네의 고독을 강조한다. 매미는 감정을 공유하는 존재로 그려지며, 생태적으로는 매미가 숲가 나무에 머무르며 석양에 울음을 시작한다는 점을 포착했으나, 상징적 표현에 치중한다. 이 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경상도 하양편에도 인용되는데, 통달역이 함경도에 위치함에도 하양편에 실린 것은 편찬 과정의 실수나 지역 구분의 모호함, 혹은 나그네 주제와의 연관성 때문으로 추측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55권 규모의 관찬 지리서로, 지리·행정·인물뿐 아니라 지역 문학을 포함해 조선의 문화적 정체성을 기록했다. 이 문헌은 조선의 '문화 지도책'처럼, 지역의 정취와 문학을 후대에 전하며 지방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조선 중기: 윤선도의 《칠월초사흘날에 매미소리를 듣고》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조선 중기의 문인·정치가로, 호는 고산(孤山)이다. 인조(16231649) 때 문과 급제해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나, 효종(1649~1659) 때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갈등으로 해남으로 유배되었다. 그의 생애는 조선 중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고난과 은둔을 오간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이다. 윤선도는 시조의 대가로, 《어부사시사》 같은 작품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노래하며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시조는 3장 6구로 구성된 한국 고유의 정형시로, 한시보다 자유로운 형식 속에서 서정성을 강조했다. 윤선도는 한시와 시조를 모두 능숙히 다뤘는데, 이는 현대 아티스트가 시와 가사를 오가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의 작품은 사후 문집 《고산유고(孤山遺稿)》에 수록되며, 이 문집은 10권 규모로 1672년경 간행되었다. 《고산유고》는 유배 생활과 자연관을 담은 귀중한 자료로, 조선 시조 문학의 정형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칠월초사흘날에 매미소리를 듣고(聞蟬)》는 1640년대 해남 유배 중 지은 시로, 오언절구 형식으로 유배지의 고독을 매미 울음에 투영했다. 유배는 조선 선비들에게 흔한 시련이었고, 매미 소리는 그들의 고독을 달래주는 자연의 소리였다. 흥미로운 점은, 매미의 '오덕' 이미지가 유배지에서도 선비들에게 위안을 주었다는 것으로, 매미가 그들의 동료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칠월초사흘날에 매미소리를 듣고(聞蟬)》- 윤선도

七月初三聞蟬 (칠월초삼문선) 칠월 초사흘날에 매미 소리를 듣고

客子更遲變塞民 (객자갱지변새민) 나그네 신세라 더욱 늦게 느껴지는데, 변방 사람들은 이름도 모르네

不知名露飮無慾 (부지명로음무욕) 이슬 마시니 욕심 없겠구나

曉秋哀草木凋零 (효추애초목조령) 가을을 알리니 애닯아라, 초목은 시드니 서럽도다

暮淸風不喜 (모청풍불희) 저녁 맑은 바람도 반기지 않네


매미의 이슬 마시기(露飮)를 청렴함으로 상징하며, 유배지의 고독을 매미 울음에 빗댄다. 생태적으로는 매미가 가을 초입에 울며 바람과 어우러진다는 점을 포착했으나, 정서적 표현이 주를 이룬다. 이 시는 조선 중기 문학의 자연주의 경향을 보여주며, 유배 생활이 선비들의 문학 창작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생생히 드러낸다.


조선 후기: 강재항의 매미 시

강재항(姜再恒, 16891766)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숙종(16741720)과 영조(1724~1776) 때 활동했다. 문과 급제 후 보은현감, 한성부판윤 등을 지내며 청렴한 관리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생애는 지방 관료로서 민생을 돌보며 자연과 교감한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이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은 지방 근무 중 자연을 관찰하며 시를 짓는 경우가 많았는데, 강재항은 특히 청렴을 실천한 인물로, 매미의 '검소하고 신의 있는'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그의 시는 문집 《강재항집》이나 《동문선》 후속 선집에 산재하며, 매미 시는 보은현감 시절(1720년대) 지은 것으로 《한시선집》 같은 후대 문헌에서 인용된다. 《한시선집》은 조선 후기 비공식 선집으로, 지방 관리들의 작품을 모아 지역 문학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 시는 오언절구 형식으로, 간결함 속에 감정을 담아내는 데 특화되었다. 오언절구는 짧고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탁월해, 현대의 짧은 시처럼 감정을 빠르게 포착한다.


강재항의 매미 시는 매미 울음을 가을 초입의 여름 잔향으로 묘사한다. 흥미롭게도, 조선 선비들이 관아의 고요한 순간에 매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감정을 투영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매미의 '포주명(抱柱鳴)'이 선비의 굳건한 절개를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縣齋庭午靜 (현재정오정) 고을 관아 뜰, 고요한 한낮

秋蟬抱柱鳴 (추선포주명) 가을 매미가 기둥을 끌어안고 울고

喧喧久不去 (훤훤구불거) 시끄럽게 울며 오랫동안 떠나지 않네

似訴悲與冤 (사소비여원) 마치 슬프고 원통한 마음을 하소연하듯


매미의 지속적 울음(喧喧久不去)을 경쟁적 발성으로 암시하나, 생태보다는 감정 비유에 초점을 맞춘다. 강재항의 생애를 반영해 매미의 청결함과 연결된다. 이 시는 조선 후기 지방 관료 문학의 한 면을 보여주며, 선비들의 일상 속 자연 관찰이 어떻게 문학으로 승화되었는지 생생히 드러낸다.


조선 말 여성 선비, 정일당 강씨의 《가을 매미 소리를 들으며》

정일당 강씨(姜靜一堂, 1772~1832)는 조선 말기 규수 시인이자 성리학자로, 본명은 강지덕(姜至德)이다. 충청도 제천에서 양반 가문 출신으로 태어나, 1791년 윤광연과 결혼하여 그의 유배 생활을 따라다니며 시를 지었다. 조선 시대 여성 문학은 주로 궁중이나 사대부 가문에서 꽃피었지만, 정일당처럼 유배를 함께하며 창작한 경우는 드물다. 그녀는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남편 대신 친척들의 행장이나 추도문을 지어줄 만큼 학문적 역량을 발휘했으며, 이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글쓰기가 제한되던 시대에 보기 드문 ‘여성 선비’의 모습이다.

1832년(순조 32년) 61세로 세상을 떠난 후, 남편 윤광연은 아내의 원고를 모아 1836년에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를 간행했다. 이 문집은 10권 이내의 소규모 문집으로, 여성 시인의 고독과 자연 관찰을 담은 귀중한 자료다. 윤광연은 여러 선비들에게 행장과 만시(輓詩)를 청해 부록으로 실었으며, 이는 부부의 깊은 유대와 남편의 아내에 대한 존경을 상징한다. 부부는 유배지에서 ‘학문 남편’과 ‘노동 아내’로 역할을 나누어 생계를 유지했는데, 남편이 아내를 ‘여성 선비’로 여겨 그녀의 글을 세상에 알린 것은 조선 시대 보기 드문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마치 현대의 파트너가 서로의 재능을 지지하며 세상에 알리는 것처럼, 이 부부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감동적이다. 정일당의 시는 주로 절구 형식을 따랐으며, 이는 간결한 표현으로 여성의 섬세한 감정을 담기에 적합했다.


《가을 매미 소리를 들으며(聽秋蟬)》는 가을로 접어드는 매미 울음을 여름의 끝 아쉬움으로 해석한다. 이 시는 오언절구 형식으로, 조선 여성 문학의 특징인 서정성과 고독을 잘 보여준다. 재미있는 점은, 매미가 여성 시인에게 ‘자유의 상징’으로 다가왔다는 것으로, 유배 생활의 제약 속에서 매미 소리가 해방감을 주었을 것이다.


《가을 매미 소리를 들으며(聽秋蟬)》

萬木迎秋氣 (만목영추기) 모든 나무가 가을 기운을 받고

蟬聲亂夕陽 (선성난석양) 매미 소리 저녁 해질 무렵 어지럽게 들리네

悲時節欲盡 (비시절욕진) 제철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獨繞林陰徜徉 (독요임음창양) 숲 아래 홀로 헤매이네


매미의 어지러운 울음(亂)을 집단 합창으로 연상시키나, 계절 변화의 슬픔에 초점을 맞춘다. 강씨의 생애를 반영해 매미를 자유의 상징으로 삼는다. 이 시는 조선 말기 여성 문학의 독창성을 보여주며, 사대부 중심의 문학 세계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조선후기 대표 실학자 정약용의 《소서팔사》

조선 실학자 중 최대의 저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강진유배 시절을 표현한 AI이미지)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로, 호는 다산(茶山) 또는 여유당(與猶堂)이다. 경기도 남양주(당시 광주)에서 남인 가문 출신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총명해 1783년 문과에 급제했다. 정조(17761800)의 총애를 받아 규장각 검서관, 암행어사 등을 지냈으나, 가톨릭 신앙(세례명 요한)으로 인해 1801년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18년 유배되었다. 유배 기간은 그의 학문적 성숙기였으며, 제자 18명(다산학단)을 양성하며 실증적 지식을 추구했다. 정약용은 조선 지성사의 정점으로, 약 500여 권(2,300만 자)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그의 대표작 '1표 2서'—《경세유표》(정치·경제 개혁), 《목민심서》(행정·관료 윤리), 《흠흠신서》(형사법)—는 실학의 실용성을 보여주며, 《마과회통》(의학), 《아방강역고》(지리), 《매씨서평》(경학) 등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그의 문학은 실학 정신을 반영해 자연 관찰을 중시했으며, 유배지 강진에서 매미 소리를 들으며 지은 시는 그의 삶과 학문이 하나 된 순간을 상징한다. 흥미로운 점은,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자연을 관찰하며 시를 지은 것이, 현대 과학자가 현장 연구를 통해 통찰을 얻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정약용의 작품을 찾다가 두편의 매미에 대한 시를 발견했다. 이전 작가들의 작품과 비슷한 경향의 작품으로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작품이 있고, 아예 매미 울음 소리가 시의 소재이자 주제이자 제목이기도 한《선음삼십절구(蟬吟三十絶句)》라는 작품도 발견됐다. 이 두작품은 모두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수록되어 있다.


《여유당전서》는 정약용의 방대한 저서를 1938년 일제강점기 조선학 운동의 일환으로 출판을 하게 되면서 현대에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소서팔사》는 선비들이 여름 더위를 이기는 여덟 가지 방법(송단호시: 활쏘기, 허각투호: 투호놀이, 청점혁기: 바둑두기, 서지상하: 연꽃 감상, 동림청선: 매미 소리 듣기, 남창봉월: 달맞이, 북실안침: 낮잠, 기하음차: 차 마시기)을 각각 한 수씩 노래한 연작시이다. 이 연작은 칠언율시 형식으로, 한 줄에 일곱 글자씩 여덟 구로 구성되어 평측과 대구의 조화를 이룬다. 칠언율시는 중국 당나라에서 완성된 형식으로, 조선 선비들이 선호했는데, 정교한 음악처럼 각 글자가 리듬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소서팔사》는 여름의 일상을 시로 풀어내며 선비들의 여유로운 삶을 보여준다. 그중 동림청선(東林聽蟬, 동쪽 숲에서 매미소리 듣기) 부분의 원문과 해석은 다음과 같다


東林蟬聲滿樹頭 (동림선성만수두) 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가 나무 꼭대기에 가득하고

高枝低枝 齊鳴不休 (고지저지 제명부휴) 높은 가지 낮은 가지 모두 쉬지 않고 함께 울어대네

閉目靜聽 如聞天籟 (폐목정청 여문천뢰) 눈을 감고 조용히 들으니 마치 천지의 자연스러운 소리 같고

煩躁之心 化爲淸流 (번조지심 화위청류) 번잡하고 초조한 마음이 청량한 흐름으로 변하네


매미 소리가 숲에 가득해 더위를 잊는다는 내용으로, 매미를 청량한 여름 정취의 상징으로 다룬다. 이는 조선 선비 사회에서 매미 소리가 단순한 소음이 아닌, 청렴하고 고고한 매미의 오덕을 상기시키는 문화적 아이콘임을 보여준다. 매미 울음은 무더위를 잊게 하는 자연의 선물로, 선비들의 이상적 삶(전원생활, 자연과의 조화)과 연결되었다.


매미를 통해 본 조선의 자연 인식

김극기부터 정일당 강씨, 그리고 정약용의 《소서팔사》에 이르는 조선 문학 속 매미는 공통적으로 여름의 정취와 이별, 고독, 무상함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강조한다. 매미 소리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작가들의 감정을 투영하는 문학적 도구로 활용되며, 생태적 세부보다는 정서적 비유에 치중한다. 이는 매미를 오덕의 상징으로 보는 전통적 관점과 맞물려, 계절의 순환과 인간의 감정을 연결짓는 역할을 했으며, 특히 선비들의 처지(유배, 나그네 생활 등)를 매미의 고독한 울음에 이입하는 경향이 강하다. 조선 문학작품에서 매미를 언급한 사례들을 찾아보니, 한 가지 특징적인 점이 두드러진다. 매미를 여름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과 별개로, 시들에서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가장 많이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계절성이 강한 곤충은 많지만, 가을 하면 귀뚜라미의 울음이 떠오르듯, 매미 역시 외모나 행태보다는 그 울음소리가 사람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찾아낸 작품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매미 울음소리를 통해 계절의 정취와 선비의 감정을 생생히 담아냈다는 점이다. 조선 선비들은 매미를 깊이 추앙했으나, 매미가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왜 내는지 등 매미의 생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들의 묘사는 상징성과 정서에 치중했다.


그러나 정약용은 이와 달랐다. 그는 《소서팔사》에서도 여름의 상징으로 매미를 노래했지만, 이 시의 주인공이 매미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남긴 다른 한 작품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는 《선음삼십절구(蟬吟三十絶句)》라는 매미 소리에 관한 30절구의 대작의 시를 남겼다. 상식적으로 매미 소리를 소재로 해서 삼십절구의 시를 남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과연 동양권에서 매미 소리만으로 이런 대작을 남긴 작가가 있을까 싶다. 이 작품을 자세히 읽다보니 매미 소리에 대한 설명들이 다른 작품과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하기로 한다.


<참고문헌>

독립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98분, 감독 박성호, 2016)

다음카페 <용두열 칼럼, 수필> '<한시산책> 가는 여름 붇잡는 매미 소리' 작성자 박영우

다산학술재단 사이트

한국고전DB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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