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과 절개의 상징, 매미

조선의 매미를 찾아서2

청렴과 절개의 상징으로 읽혀진 여름 곤충: 조선 선비들의 매미 철학

조선 시대의 여름은 매미 소리로 시작한다. 산과 들, 마을 어귀에서 울려 퍼지는 ‘맴맴맴’ 소리는 단순한 자연의 소음이 아니라, 선비들의 정신 세계를 상징하는 청렴한 울림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김극기(15세기)의 시 "요란한 매미 소리에 저녁 노을 붉어 오고"는 매미가 여름 풍경의 중심에 있음을 보여주며,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의 「소서팔사(消暑八事)」에 등장하는 "동림청선(東林聽蟬)"은 매미 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잊는 선비의 피서법을 묘사한다. 매미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조선 사람들에게 여름의 상징이었지만, 그 의미는 훨씬 깊었다. 화조도나 초충도에서 나비나 잠자리가 화려한 색채로 사랑받았던 것과 달리, 매미는 그림 속에 아주 드물게 등장했다. 그러나 선비들의 시와 철학에서는 고귀한 삶의 상징으로 특별한 자리를 차지했다. 왜 그랬을까?


조선 선비들은 매미의 이슬을 먹는 습성과 나무를 붙잡고 우는 모습에서 청렴, 절개, 신의를 읽어냈다. 이에 따라 매미를 여러 덕을 갖춘 생명체로 칭송하며,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더라도 학문과 덕을 지키는 선비의 처지를 매미에 투영했다. 이러한 선비들의 인식의 배경에는 유교 혹은 유학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아 500년 넘게 지속된 왕조였다. 이 사회는 계급적으로 양반, 평민, 노비로 나뉘었으며, 그중에서도 양반이 정치, 문화, 사상을 주도하는 핵심 계층이었다. 특히 양반 중에서도 선비들은 사회의 정신적·지적 중추로서, 관료로 등용되기 위해 평생 유학(儒學)을 공부하며 학문과 덕을 쌓았다.

조선 선비들이 공부하는 방식은 중국 유교와 유학의 문헌, 특히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중심으로 한 『사서삼경』에 깊이 의존해 이치를 터득하려는 과정이었다. 선비들의 학문은 중국 경전을 충실히 따르며 그 틀 안에서 사고를 전개하는 데 머물렀다. 이러한 중국 유학의 과도한 영향은 선비들의 독창적 사고와 창의적 표현을 제한하는 한계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 유교적 틀 속에서 매미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매미는 단순한 여름 곤충이 아니라, 유교적 덕목을 상징하는 존재로 재해석되었다. 이를 통해 선비들은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청렴한 이상을 추구했다. 매미의 생태를 도덕적 상징으로 승화시킨 이러한 접근은 조선 선비들의 세계관을 잘 드러낸다. 예를 들어, 매미가 곡식을 해치지 않고 이슬만 먹는다는 믿음은 실제 매미의 나무 수액 섭취 습성을 유교적 청렴으로 비유한 것으로, 자연을 통해 인간의 도덕을 가르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상징성은 조선의 농경 사회에서 매미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관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선비들이 매미를 이상화한 주요 동기 중 하나였다.



조선 선비들의 매미 철학의 두 갈래: 매미 오덕

조선에서 매미는 단순한 여름 곤충을 넘어 선비의 고결한 덕목을 상징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1851년경)이다. 이규경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박물학자로, 호는 오주(五洲)이며, 조선 후기 과학·문화·사회를 포괄적으로 기록한 백과사전적 저술을 남겼다. 그의 생애는 청빈한 삶과 실증적 학문으로 요약되며, 정조 때 문과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이 순탄치 않아 여러 관직을 전전하다가 후반생에 학문에 매진했다. 그는 경기도 한성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익히며 성장했으며, 이후 실학적 사상을 발전시켜 자연과 사회를 관찰했다. 그의 저작 과정은 제자들과의 토론과 현장 조사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는 조선 후기 실학의 실증적 태도를 보여준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그의 대표작으로, 60권 규모의 박물지(博物志)로 천문, 지리, 역사, 의학, 동식물 등 만물을 고증·비교·설명한 문헌이다. 이는 조선 후기 실학의 전범으로, 자연과 인문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점에서 가치가 높다. 이 저작은 1851년경 간행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필사와 간행을 통해 후대에 전해졌다.


오주연문장전산고.jpg 매미의 오덕을 정리하고 있는 이규경 선생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오주연문장전산고』 「만물편」 「충어류」에서는 매미의 오덕(五德: 문, 청, 렴, 검, 신)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원문 한자: 蟬有五德: 一曰口方不食五穀, 文也; 二曰飮露不食, 廉也; 三曰無室, 儉也; 四曰知時而出, 信也; 五曰處高潔, 淸也. 해석: 매미에게는 다섯 가지 덕이 있다. 입이 곧아 곡식을 먹지 않으니 문(文)이다. 맑은 이슬만 마시고 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廉)이다. 집을 짓지 않으니 검(儉)이다. 때를 알고 나왔다가 때가 되면 물러가니 신(信)이다. 높은 곳에 머물며 깨끗하니 청(淸)이다.


각 덕목은 매미의 생태와 유교적 가치를 연결한다. 문(文)은 매미 날개의 섬세한 무늬를 선비의 예복(黼黻)에 비유해 학문적 품격을 상징한다. 이는 매미의 외형적 아름다움이 선비의 학문적 완성을 나타낸다는 상징적 해석이다. 청(淸)은 이슬과 나무 수액만 먹는 습성을 청빈한 삶으로 해석한다. 매미가 곡식을 먹지 않고 자연의 이슬로 생존한다는 관찰은, 선비가 물질적 욕심을 버리고 청렴한 삶을 추구해야 함을 암시한다. 렴(廉)은 농작물을 해치지 않는 생태를 청렴의 덕목으로 간주하며, 이는 매미가 농경 사회에서 해를 끼치지 않는 생태적 특성을 도덕적 가치로 승화시킨 것이다. 검(儉)은 집 없이 나무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검소한 삶으로, 신(信)은 정해진 생애 주기(여름에서 가을로의 변화를 따르는 습성)를 신의로 해석했다. 이규경의 오덕은 매미의 생태적 특징을 인간의 도덕적 삶에 비유해, 자연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유학적 자연관을 반영한다. 이는 동아시아 전통의 상징성을 계승하면서 조선 사회의 도덕적 이상을 자연 속에서 찾으려 한 시도로, 매미의 오덕 기록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조선 선비들이 매미 오덕을 강조한 배경에는 유교적 이념이 깊이 관여했다. 『사서삼경』에서 강조되는 덕목(예: 청렴, 신의)은 선비들이 사회적 이상을 실천하려는 동기였으며, 매미는 이러한 이상을 자연에서 발견한 상징물이었다. 이규경은 실학자로서 자연을 관찰하며 이를 문헌에 기록했지만, 그의 오덕 해석 역시 중국 유학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조선 선비들이 매미의 외형과 일부 생태적 특성(예: 이슬 먹기)을 도덕적 비유로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 매미가 나무 수액을 먹는다는 생태적 사실은 무시되었고, 이는 유학적 이상을 우선시한 결과로 해석된다.


고선포목: 절개와 끈기의 상징

조선 선비들은 고선포목(枯蟬抱木)이라는 표현을 통해 관직의 부침 속 자신의 고난과 이상을 투영한다. 고선포목은 "마른 매미가 나무를 붙잡는다"는 뜻으로, 중국 고전 『장자』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다. 장자는 "枯蟬抱木, 不隨風而墜"라며, "마른 매미가 나무를 붙잡아 바람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썼다. 이는 단순히 매미의 허물이 나무를 굳게 붙잡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선비의 절개와 끈기가 상징되어 있다.

나무에 매달린 매미껍질.jpg 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에 등장하는 매미 우화 후 나무에 매달려 있는 매미껍질 선퇴의 모습. 고선포목이란 바로 이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예가인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은 그의 모든 저작에 "枯蟬抱木" 인장을 각인한다. 유한준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서예가로, 호는 청계(靑溪)이며,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는 경기도 한성부에서 태어나 한학을 익히며 성장했으며, 서예와 학문을 통해 조선 후기 문화에 기여했다. 그의 생애는 관직에서의 좌절과 학문적 열정을 동시에 보여주며, 이는 고선포목과 깊은 공감을 이룬다. 그의 작품은 문집 《청계집(青溪集)》에 수록되며, 《청계집》은 유한준의 시, 산문, 서예 등을 모은 10권 규모의 문집으로, 조선 후기(1800년경) 간행된다. 그의 학문과 예술을 반영한 대표 문헌이다. "枯蟬抱木" 인장은 관직의 유혹과 고난 속에서도 본심을 지키려는 자조적 다짐을 표현한다. 유한준에게 고선포목은 자신의 철학적 좌우명으로, 빈곤한 삶을 비유하며 선비의 절개를 강조한다. 그는 이 인장을 각 작품에 새겨 넣음으로써, 자신의 삶과 철학을 후대에 전하고자 했다.


한편 북학파의 실학자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고선포목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 연암체로 유명한 문장가인 그는 「답홍덕보서(答洪德保書)」에서 홍대용에게 보낸 답장에서 "安可責人如枯蟬抱木, 竅蚓飮泉而已哉"라고 썼다. 이는 "어찌 사람에게 마른 매미가 나무를 붙잡거나 지렁이가 샘물만 마시듯 살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박지원은 벗들의 출세를 유쾌하게 축하하며, 유교적 이상이 강요하는 빈한한 삶의 부담을 자조적으로 비판한다. 박지원은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이자 문인으로, 호는 연암(燕巖)이며,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등과 북학파를 형성했다. 그의 작품은 사후 문집 《연암집(燕巖集)》에 수록되며, 《연암집》은 박지원의 사상과 학문, 벗들과의 교류를 풍부하게 담은 문집으로, 조선 후기(1806년경) 간행된다. 북학파 실학의 핵심을 보여주는 문헌이다.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으로 구성된 북학파 실학자 집단 백탑파. 조선 영조, 정조 때 서울 사대문 안 탑골 백탑에서 시문과 선진 사상을 논하였다고 한다

고선포목은 매미 오덕과는 다른 개념으로, 주로 선비의 절개와 끈기를 강조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오덕이 매미의 생태적 특성을 도덕적 덕목으로 체계화한 것이라면, 고선포목은 매미의 허물(마른 매미)이 나무에 붙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통해 외부의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를 비유한다. 이는 조선 선비들이 관직의 부침과 사회적 압박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태도를 반영한다. 유한준의 경우, 이 표현을 인장에 새겨 자신의 삶의 철학을 상징화했으며, 박지원은 이를 비판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유교적 이상의 경직성을 풍자했다. 이러한 차이는 조선 후기 실학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매미 철학이 단순한 상징을 넘어 시대적 맥락에서 변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조선 매미 철학의 뿌리: 고려 이규보의 《방선부》

조선 선비들의 매미 철학의 뿌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중기의 대표적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방선부(放蟬賦)》(13세기)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어떤 이가 거미줄에 걸린 매미를 놓아준 이야기를 통해 매미의 성품을 형이상학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이규보는 고려 명종·신종 때 활동한 문신이자 문인으로,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며, 문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거쳤다. 그는 고려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문학적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시와 부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도덕을 탐구했다. 그의 생애는 관직에서의 고난과 학문적 열정을 동시에 보여주며, 이는 매미 철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의 작품은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수록되며, 《동국이상국집》은 이규보의 시, 산문 등을 모은 80권 규모의 대형 문집으로, 고려 후기(1241년경) 편찬된다. 고려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 문헌이다.


이규경의 방선부.jfif 고려후기 문인 이규보의 <방선부>, 제목의 뜻이 '매미를 풀어준 이야기'

《방선부》 원문 한자 일부: 蛛之性貪, 蟬之質淸. 規飽之意難盈, 吸露之腸何營. 以貪汙而逼淸, 所不忍於吾情. 해석: 거미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매미는 바탕이 맑다. 배부르려는 욕심은 채워지기 어렵지만, 이슬 먹는 창자야 무슨 경영이 있을까. 욕심 많고 더러운 놈이 맑은 놈을 박해하니, 내 어찌 동정이 없을까.

이규보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거미의 탐욕스러운 행태와 대비하며 매미의 청렴한 성품을 칭송한다. 그는 매미의 맑은 외모와 행태를 청렴(렴, 廉)과 맑음(청, 淸)의 덕목으로 해석해, 후에 조선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오덕의 원형을 보여준다. ‘방선부’가 쓰여진 고려 중기에 이전에 이와 유사한 매미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문헌을 여전히 찾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발견하지 못한다. 방선부의 매미와 거미 이야기는 중국 문헌이나 먼 나라 이야기라기보다는 고려의 일상에서 탄생한 이야기였지만, 이를 해석하는 방식은 중국 문헌에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이규보의 저작은 고려 사회의 자연 관찰과 유교적 도덕관을 결합한 것으로, 이는 조선 선비들의 매미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중국 문헌에서 찾은 매미 인식의 뿌리

조선 선비들의 매미 인식의 배경에는 중국 고전의 영향이 크다. 도가 사상서 《장자》(기원전 4세기)는 ‘枯蟬抱木, 不隨風而墜’라며 고선포목으로 매미의 허물이 나무를 붙잡는 모습을 절개와 끈기의 상징으로 그린다. 매미를 청렴과 오덕으로 연결한 문헌은 후대에 두드러진다. 당나라 공영달의 《오경정의》(7세기)는 《시경》의 ‘蟬鳴于樹, 聲聲相和’를 주석하며 ‘蟬, 餐露而鳴’이라 하여 매미의 이슬 먹는 모습을 맑은 성품으로 그렸고, 후대 유학자들이 이를 청렴의 상징으로 재해석한다. 이러한 중국 문헌은 조선 선비들의 매미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한준과 박지원이 사용한 고선포목이라는 표현이 중국 고전 《장자》에서 유래했듯이 조선의 매미오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헌은 중국 진나라 문인 육운(陸雲, 262~303)의 《한선부(寒蟬賦)》(3~4세기)로 추정된다. 육운은 중국 동진 시대 문인으로, 형 육기(陸機)와 함께 '육씨형제'로 유명하며, 시와 부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도덕을 탐구했다. 그의 생애는 삼국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학문과 문학에 전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조선 선비들과 공통점을 가진다. 그의 작품은 문집 《육운집(陸雲集)》에 수록되며, 《육운집》은 육운의 시, 부 등을 모은 문집으로, 중국 진대(303년경) 편찬된다. 중국 고전 문학의 대표 문헌이다.


《한선부》 원문 한자: 蟬有五德: 頭上有緌則其文也, 含氣飮露則其淸也, 黍稷不享則其廉也, 處不巢居則其儉也, 應候守常則其信也. 해석: 매미에게는 다섯 가지 덕이 있다. 머리에 갓끈 관대가 달려 있으니 문(文)이다. 기운과 이슬을 마시니 청(淸)이다. 곡식을 해치지 않으니 렴(廉)이다. 집을 짓지 않고 사니 검(儉)이다. 때를 지키며 변하지 않으니 신(信)이다.


이는 조선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오덕과 매우 유사하다. 두 문헌 모두 문, 청, 렴, 검, 신을 다섯 덕목으로 삼는다. 매미의 이슬 먹기와 곡식을 해치지 않는 행태를 청렴과 고결로 본 점도 같다. 그러나 차이점도 명확하다. 《한선부》는 문학작품으로 형이상학적인 묘사를 강조하며 "바람과 이슬"을 언급한다. 이는 매미가 자연의 순수한 요소만을 섭취한다는 이상화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반면,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조선 농경 사회 맥락에서 곡식과의 관계를 부각하며 백과사전식으로 기록한다. 예를 들어, 『오주연문장전산고』는 매미가 곡식을 먹지 않는다는 점을 농업 사회에서 긍정적인 특성으로 해석해 렴(廉)을 강조한다. 이는 조선의 농업 중심 경제에서 곡물 보호가 중요했음을 반영한다. 또한, 《한선부》가 "應候守常則其信也"로 때를 지키는 생태를 신의로 본 반면, 『오주연문장전산고』는 "知時而出"로 생애 주기의 규칙성을 더 구체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차이는 조선이 실학적 관찰을 반영하려 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나무수액을 먹는 매미.jpg 다큐멘터리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감독 박성호, 98분, 2016) 매미는 이슬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주둥이를 나무에 박아 수액을 먹는다

수많은 문헌에 등장하는 매미가 이슬을 먹는다는 묘사는 실제 관찰이 아니라 결국 중국 문헌에 대한 의존에서 비롯된 지극히 비과학적인 문학적 표현에 불과하다. 실제로 매미는 나무 수액을 먹는다. 이는 중국이든 고려와 조선 사람들이든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매미의 생태지만 이슬을 먹는 것으로 묘사된 것은 유학적 교양의 영향이다. 결국 조선이든 중국이든 학자들이 추구한 것은 사람의 바른 도리나 덕목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에서 발견되는 고귀해 보이는 존재를 설정하고, 그 존재의 외형 혹은 성정을 통해 이상적 인간상을 구현하려는 비유적 사고의 결과다. 이러한 중국 문헌은 고려와 조선 선비들의 매미 인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고려의 방선부로부터 조선의 매미오덕과 고선포목까지 연속성을 가졌다.


조선시대 매미에 대한 인식은 비록 과학의 관점에서는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현대에도 의미가 있다. 매미의 오덕은 현대 공직 사회에서 청렴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의 모델로 재해석되며, 조선의 매미 인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맥락을 드러낸다. 여름이 오면 들리는 매미 소리. 그 속에는 500년 조선 역사와 선비들의 철학이 담겨 있다. 단순한 곤충의 울음이 아니라, 청렴과 절제를 추구했던 한 시대의 정신적 풍경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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