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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에이스 Aug 15. 2023

욕심이 화를... ...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아니 술이 먼저였던가...

오늘따라 아주 축 쳐진다. 어쩐지 내가 비 맞은 허수아비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발에서 벗겨 저 떨어져 나간 슬리퍼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아무런 일도 있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이 든다. 하루의 대부분이 만족스러웠고 업무 시간의 99프로는 의도한 대로 또는 긍정적인 피드백과 무난한 과정으로 채워졌다. 딱 하나 1%도 차지할 수 없는 아주 사소한 피드백이 있었다. 그 0.05%가 오늘 저녁 나를 이렇게 꿀꿀하게 만들었다.


회사의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오픈톡방 같은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 여기서 어떤 동료가 일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한마디를 남겼다. "마무리가 되었네요, 도움 주신 모든 관계자들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했었으면 더 쉬웠을 것 같습니다."라는 말이었고 적당히 합리적이고 받아들일 만한 말이었다. 물론 그게 영어로 표현이 되다 보니 내가 이해하지 못한 행간의 의미가 있을 순 있겠다. 그래도 객관적으로  크게 신경 쓸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엄청 신경 쓰이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작게나마 분노하거나 억울한 감정까지 들고 있다. 이 낯선 나의 상태에 지금 매우 꿀꿀하다.


욕심 때문인 것 같다. 나에게 속한 원인들, 부족함, 그것이 나의 팀원에 대한 것일지라도, 타인에 의해 언급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히 욕심 때문인 것 같다. 책임 의식이거나 높은 수준을 지향하는 향상성에 의해 상처받은 자존심 따위로 인한 꿀꿀함은 절대로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완벽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인한 우울함도 아니다. 내가 한 일의 결과가 목표에 미치지 못해도 되는데, 그것을 누군가 알아차린다는 사실 자체가 화나는 것 같다. 왜일까? 

아 솔직히 모르겠다. 자존심도 아니고 대관절 무엇이길래 나의 중한 하루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냐. 자존심과 같은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나의 모습이 너무 쪼잔하다. 욕심쟁이 자존심 또는 욕심쟁이의 이기적인 자존심이 적절하겠다. 좋은 평판 부여잡고 싶고 잘못된 것은 숨기고 싶고 회피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지금의 나다. 가만 보면 꼭 일에서만 이러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요 며칠을 돌이켜 보니 일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상황들 이를 테면 재개발 중인 집의 추가 분담금 문제로 인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들 또는 복잡한 보험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나 사소하게는 운전 면허증을 갱신해야 하는 일까지 내가 해야 하거나 했어야 하는 일들에 대해 내가 미쳐 놓친 어느 순간을 다른 사람, 심지어 아내가 나에게 알람을 주는 상황까지도 꺼려했었다.

이런 이런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정말 중증이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렇게 살아보자. 나에 대해 말하는 것도 좀 들어보고 듣고 난 후에는 '아, 내가 그랬구나.'라고 받아들여 가면서 살자. 그러다 보면, 만족스럽게 흘러가던 하루가 어느 누군가의 한마디 또는 하나의 상황으로 인해 흔들릴 일도 없을 것이다. 온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행복한 얼굴로 가족을 쳐다볼 수 있을 것이다. 여유로운 웃음으로 하루를 넘길 수 있는 나를 보면서 동료들은 누구와 함께 일해야 한다면 나랑 일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나의 친구들은 나와 만난 시간 동안 고난을 토로하기보다는 즐거운 과거를 얘기하고 일박 이일의 골프 여행이나 계획하면서 시시덕거릴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지키고 사랑하고 그리고 그런 나와 나의 시간을 온전히 가족에게 쏟을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그럴 법한 일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데, 이걸 못해서 싸우고 이를 갈며 공격할 멘트와 상황을 계획한다. 부질없다. 그러면 그 회사가 내 회사가 되는 것도 아닌데. 내 것은 나, 가족, 친구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다. 이제 이기적으로 나에게 집중할 때다. 그러면 회사도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그때그때 끄적거리는 일기 같은 글이지만 혹시 나와 비슷한 누군가 이런 꿀꿀함으로 내일의 출근을 준비하거나 걱정하고 있다면 그냥 한번 털어내 잊어버리고 내일 당신의 하루를 살아가길 기원한다.

이만 밥 한 사발 때리러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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