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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유숙 Jan 03. 2019

암 때문에 짱구 머리여도 괜찮아!

공포의 암세포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

1년 7개월째 암 투병 중인 반려견 루피
(래브라도 리트리버, 10살)가
새해를 맞았다!


사람과 달리 동물의 암은 치료법이 제한적이고, 완치율도 낮고, 노견이고, 1년을 넘기기 힘든 편평 상피세포암이라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할 때, 루피한테 2019년은 매우 특별한 새해인데 언제나처럼 담담하다. 경망스러운 주인이 호들갑을 떨거나 말거나!


관리방법은 작년 10월 경, 브런치에 <암 선고 4번 받고도 건강한 내 개, 기적일까? 오진일까?> 글에 쓴 것과 같다. 건강상태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우선 머리에 난 암세포가 울퉁불퉁 커져 짱구 머리가 됐는데, 이게 매일매일 조금씩 변한다. 줄어들었다가 다시 부어오르고, 없어지는가 싶더니 다른 곳에 다시 나타나고.. 한 마디로 암세포 마음대로다.

두 번째 변화는 멀쩡하던 왼쪽 눈마저 시력을 상실해 시각 장애견이 됐다. (명색이 맹인 안내견 이건만...)


세 번째 변화는 자고 일어나면 몸이 홀쭉해져 있다. (몹쓸 놈의 암덩어리가 밤새 우리 루피의 영양분을 다 빨아먹나 보다.)


그래도 괜찮다!!!


때로는 우리 루피의 머리를 덮고 있는 암의 무게가, 죽음의 위협이, 이별의 두려움이, 슬픔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지만.... 그래도 괜찮다!


항암치료를 안 하고 있는데도 암이 전이되지 않았고..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며,

시간 맞춰 대소변 장소에 데려다주고, 주인의 신호에 따라 걷는 연습을 시키니 안 보이는 상황에 적응하였으며,

죽기 직전까지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청한 먹성을 자랑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답게 잘 먹고 잘 자니 다시 두둥실 살이 오른다. 마치 '암'이란 녀석과 누가 누가 잘 먹나 대결하는 것처럼!


암에 대처하는 루피의 의연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제는 '나의 마음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쁜 엄마 대신 우리 삼 남매를 돌봐준 외할머니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셨을 때도...

사랑하는 엄마마저 유방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들었을 때도...

자식과 다름없던 반려견 볼키(시츄)를 구강암(흑색종)으로  속수무책 잃었을 때도...


나는 분노하고, 신을 원망하고, 다가올 이별에 슬퍼하고,두려움에 떨었다.


그래서 의학 전문가 안드레아스 모리츠를 비롯한 여러 의학자들이 ‘암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다! '라고 주장해도 나는 솔직히 암이 무섭다. 내 삶의 행복을 무너뜨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뺏어간 죽음의 질병이고, 가족력이 높은 나 자신도 언제 암에 걸리지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암 때문에 현실의 괴로움을 수용하고 타협하는 방법을 배웠고...

평범한 일상이 기적의 순간처럼 소중해졌으며,...

소홀했던 건강을 챙기게 되었으니...


어쩌면 더 진짜 중요한 문제는 '악성 종양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라고...


그렇게 마음을 고쳐 먹은 후로 나는 더 이상 루피의 증상 하나하나에 안달복달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생을 다하는 날까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현재를 즐기며 최선을 다할 뿐!


그런 주인의 마음을 읽었는지 오늘도 루피는 밥그릇을 힘차게 물어 든다. 암 따위가 몸 속에 있거나 말거나 오로지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서!


밥 좀 더 주시개! 멍! 멍!
암보다 배고픔을 더 못 참는 루피,  사료가 먹고 싶어 입가에 침이 주르륵 ~
입이 예전처럼 안 벌어져도, 눈이 안 보여도 밥그릇 시위는 여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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