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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유숙 Jan 19. 2019

오뚝이 노견의 저력?!

매일 다시 일어서는 견생 이야기

개농장에서 배설물로 허기를 채우던 똥강아지 '루피'(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천방지축 대형견의 시기를 거쳐 암과 사투 중인 노견이 되기까지 희로애락이 참 많았다.


그중,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몇몇 사람들의 씁쓸한 충고!


입양한 루피를 처음 선보였을 때  
: 애가 개야? 강아지야? 너무 크다. 다른 걸로 못 바꿔?

루피랑 산책 나갔을 때 어르신 반응
: (얌전히 걸어가고 있었을 뿐인데, 손사래를 치고 피하시면서) 어이구, 저런 송아지만 한 개를 대체 왜 키운대? 서울에서...

전셋집을 알아볼 때 중개업소의 반응
: 큰 개가 있으면 집 얻기 힘들어요. 시골에 어디 보낼 때 없어요?

루피가 암 선고를 4번이나 받았을 때
: 에고, 곧 가겠네. 가겠어.

루피의 암 투병이 길어지자...
: 아직도 살아있어요?

암에 이어 녹내장으로 두 눈 모두 실명까지 했을 때
: 더 불쌍해지기 전에 안락사가 낫지 않을까?


만약 루피가 위의 조언을 다 알아들었더라면 여러 번 상처 받고 진작에 무지개다리를 건넜겠지만, 다행히도 뭐라 떠들거나 말거나 언제나처럼 꿋꿋하게 자신만의 견생을 실천 중이다.  


주인과 함께라면 어떤 집에서 살아도 좋고,

암세포도 우적우적 먹어치울 식성으로 매일매일 면역세포를 만들어내고,

안고 있으면 대형견만의 듬직한 매력으로 꿀잠을 선물해주고,

주인인 나조차도 '이제는 정말 죽나 보다. 여기가 끝인가 보다.'라고 체념할 때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나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마치 10번 넘어져도 11번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오늘은 시각장애견이 된 후 처음으로 동네 뒷산에 올랐다.

맨 처음 실명했을 땐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했는데, 점차 조금씩 행동반경을 넓혀나가더니 급기야는 등산을 할 정도로 기운을 회복했다.

아, 좋다! 산 냄새..
킁킁, 이건 무슨 냄새지?
흠, 내가 좋아하는 나무 냄새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루피가 팔팔했을 때보다 늙고 병든 지금의 모습이 더욱 사랑스럽다. 온 마음을 다해 주인을 의지하고 따르는 애틋함이 있어서...


그리고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그저 사는데 불편함이 있을 뿐!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올 겨울, 우리 노견을 간병하느라 당일치기 여행은 꿈도 못 꾸고 4시간 이상 집을 비울 수도 없지만 전혀 답답하지 않다.


루피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오르기 시작한 등산길이
내겐 새롭고 행복한 여정이라서...!
힘내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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