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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모도로 Mar 15. 2023

3. 퇴사하겠습니다. 팀장님.

퇴사는 아쉬움없이 그리고 단호하게

2023년 2월 13일.


9시부터 시작되는 업무 전,

다들 커피타임을 가지느라 혹은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었을 월요일 아침.

나는 누구보다도 뚜렷하고 맑은 정신으로

메신저 상에 인사팀을 찾아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차장님.

0000팀 000입니다.


아침부터 이런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

저 퇴사를 하려고 합니다.

퇴사 절차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말부터 내내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퇴사 통보 할 거야'라고 다짐하며

'퇴사 잘하는 방법'을 네이버에서 검색했고

퇴사도 그냥 해서는 안된다는 무수한 글들에

조금이나마 예의를 갖춰 조심스럽게 연락을 드렸다.


한참이 지난 후,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 쪽지가 왔다는 알람이 떴다.




"안녕하세요. 대리님.

인사팀 000입니다.


퇴사를 이미 결정하여 전해주신 것 같긴 한데

혹시 시간 되시면 잠깐 회의실에서 이야기 나누실 수 있을까요?"


한 번도 업무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이야기를 해본 적 없었던 차장님이셨지만

퇴사 통보를 받고 놀라셨는지 나에게 이야기를 하자고 먼저 말을 건네주셨다.


그리고 회의실에서 만난 차장님께서는

'왜 퇴사를 하려고 하는지', '혹시 누가 괴롭힌 건 아닌지', '퇴사는 이미 확실하게 결정한 건지' 등

이것저것 물으셨고 나의 대답은 확고했다.


저 이제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찾아 해보고 싶어요


단호하고도 확실한 나의 대답에

더 이상 차장님께서도 퇴사에 관해서는 묻지 않으셨고

다만 '이렇게 퇴사하게 되어 너무 아쉽다'라고만 되풀이하셨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회사에서의 괴롭힘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상사들의 강압적인 태도, 신경질적인 말투, 매사 조급한 일처리, 사람들 앞에서의 면박 등

  업무를 하면서 당하고 느꼈던 '직장 내 괴롭힘'은 있었다.

물론 괴롭힘을 통해 퇴사를 좀 더 빠르게 결정한 부분도 있지만 이건 시간이 지나가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나의 궁극적인 퇴사 이유는 '행복 찾기'이므로

퇴사하는 마당에 저런 이야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기들을 위해서, 후배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언질을 하고 나올 걸'이라고

문득문득 생각이 들긴 한다.)


인사팀에 퇴사 통보한 후, 그다음으론 팀장님이었다.


그날 오후,

다시 한번 팀장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팀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간 되실 때 말씀해 주시면 이야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주사위는 모두 던져졌다.

팀장님과의 면담이 이루어졌고 바로 말씀드렸다.


팀장님, 저 퇴사하려고 합니다.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왜 퇴사를 하려는지' 등 오전에 인사팀 차장님께 들었던 질문을 또다시 들으며 두 번째로 똑같은 설명을 했다.


"좋아하는 거 하고 싶어요."


내 입에서 좋아하는 거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언제였을까.

이렇게나 좋아하는 거 하고 싶다고

많이 이야기해 본 적이 있었나.


나 스스로에게 놀랍기도 하면서

그동안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버텨왔던 자신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이제 퇴사는 결정되었으니,

정말로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그리고 나를 위한 삶을 꾸준하게 찾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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