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100을 시작하며
태어나서 신앙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 물론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 위해 12월 25일만 교회를 가거나 군대에 있을 때, 라면을 끓여주는 천주교에 간 적은 있습니다. 불교 역시 빼놓을 수는 없는데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할머니를 따라 팔공산 갓바위에 찾아간 기억이 있습니다. 당신들의 새벽기도에 따라간 것이었죠. 저의 경우에는 기도를 하기 위함은 아니었고 팔공산 초입에서 파는 컵라면을 사준다는 말에 따라갔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제 신앙생활을 고백하자면 미천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당당히 “나는 나 자신을 믿어!”라며 호기를 부리거나, “신? 그런 게 어디 있어?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라는 불경한 말을 꺼내지는 않습니다. 아직 제가 본 존재보다 보지 못한 존재가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니까요.(미국도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요)
살면서 종교와 신앙이 없다고 불편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되려 편한 경우가 더 많았죠. 딱히 하는 일은 없지만 남들이 황금이라 하니 저 역시 그렇다 믿은 주말을 빼앗길 필요도 없었고, 연애를 시작함에 있어서 종교의 제약을 받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허전한 경우는 종종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런 경우가 있지 않겠어요? 현실에 존재하는 이들은 해결해주지 못하는 일을 경험하는 경우 말입니다. 예를 들면 너무나 피곤한데 출근길 지하철에 자리가 하나도 없어 휘청거릴 때나, 좋아하는 스포츠 팀의 결승전을 볼 때 같은 경우 말이죠. (너무 사소한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것 또한 신 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복잡다단한 일인 것을요.)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찾아보죠. 저 같은 경우에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신앙이 없어 허전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글감을 떠올리는 순간, 떠오른 글감을 시작하려 워드 프로그램을 여는 순간, 열고 난 뒤 몇 시간째 한 글자도 치지 못하는 순간, 겨우 다 친 원고를 보낼 곳이 없는 순간, 겨우 찾아 원고를 보냈는데 반송되는 순간… 이런 순간들에 저는 제게 신앙이 없다는 사실이 몹시 외롭고 허전하게 느껴졌습니다. (Oh, My God!! 의 오묘한 의미도 그제야 깨닫게 되었죠) 그렇다고 이제 와서 신을 찾을 정도로 양심이 없지도 않았지요.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저는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듣지 못했던 단어 하나를 알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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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
한국어로 바꿔 보자면 ‘의식’ 정도가 적당할 것입니다. 꽤나 종교적인 느낌이 나는 단어죠. 이 정도의 단어라면 신앙이 없어 허전하고 흔들리는 내 생활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나 신앙생활도 결국 이 ‘의식’의 겹으로 이루어지는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의식을 행하는 일. 그것도 오직 나를 위한 의식을 행하는 일. 이 결심은 꽤 성스러운 감정과 동시에 폭발력까지는 아니지만 따뜻한 수프 한 그릇 정도의 열기를 제게 주었습니다. 사실 저 하나만을 위한 ‘동력(動力)’으로는 그 정도 열기로 충분했죠. 그런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자 의식을 행할 기운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어떤 의식을 행할까였죠. 오직 나를 위한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었지만 명색이 ‘의식’이니 함부로 결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먼저 글을 쓴 이들의 의식을 찾아보았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였습니다. 그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글을 써 온 작가라는 점에서 그의 의식이 궁금했습니다. 하루키는 잘 알려졌다시피 달리기 광입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간 정도 글을 쓰고, 오후에는 10km의 달리기를 한다고 하죠. 이것이 하루키의 의식인 것입니다. (물론 달리기를 하기 위해 글을 쓰는 의식을 하는 것인지, 글을 쓰기 위해 달리기의 의식을 하는 것인지는… 불분명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후자로 믿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습관을 매일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고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반복 자체가 중요한 것이 된다.
반복은 일종의 최면으로, 반복 과정에서
나는 최면에 걸린 듯 더 심원한 정신 상태에 이른다.”
하루키의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의식은 정해진 반복이며, 더 쉽게 말하면 일종의 습관이겠죠.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이 말도 조금 웃기군요. 꾸준히 반복하니까 습관이고 의식인데 말이죠) 최면에 걸린 듯 심원한 정신 상태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략되었지만 그 심원한 정신 상태는 그가 글을 쓰는 동력이 되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의 말에 비추어 볼 때, 꾸준히 반복되는 의식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행하는 자에게 심원한 정신 상태를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인터넷 서점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검색하면 나오는 결괏값과 같죠. 그러니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의식을 말이죠.
누군가는 직접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를, 누군가는 10분의 요가를, 누군가는 명상을, 또 누군가는 시를 읽는 의식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아니고 선배 작가들이 남긴 인터뷰를 보는 것이죠. 그들의 인터뷰에 담긴 그들의 말을 읽고 나면 저는 왠지 모를 열정이 생기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열정은 되든 안되든 글을 쓰게 만들어 주죠.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스티븐 킹의 인터뷰 질문 하나를 보았습니다)
문제는 이 의식이 저 혼자만의 의식이며 어떤 확장이나 습관으로 굳어질 때까지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한 두 번 넘겨도 그만이죠. 문제는 그 한 두 번입니다. 습관의 왕관, 그리고 의식의 왕좌는 그 한 두 번을 견딘 자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전리품입니다. 그렇기에 습관으로 체화하고 싶은 의식이 있다면, 그리고 그 의식으로 나의 생활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옮겨놓고 싶다면 약간의 장치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왕좌를 놓고 결투를 하는 경우라고 한다면 ‘좋은 동료’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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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위한 장치 중 제가 최근에 만난 것은 <프로젝트 100> 프로그램입니다. 카카오 크루에서 시작된 일종의 넛지(옆구리 찌르기)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의식’이 될만한 미션을 정한 뒤, 100일 동안 매일 미션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약간의 강제성으로 의식을 습관으로 만드는 장치인 것이죠. 프로젝트 기한을 100일로 정한 것은 뇌에 습관회로가 생기는 시점이 100일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뇌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복잡하기에 유럽의 공무원들처럼 일처리가 빠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여기에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장치가 들어가는데 그것은 바로 ‘함께’ 의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처럼 같이 모여 기도라도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저 프로젝트에 정해진 의식을 하고 싶은 이들이 같이 참여해 같이 인증을 하는 느슨한 ‘의식 공동체’가 되는 것이죠. 그들은 서로를 감시하는 심판이 아닌, 함께 같은 경기를 뛰는 동료 선수이자 마라톤의 페이스 메이커처럼 100일 동안의 미션을 서로 돕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프로젝트 100>에서 시작한 의식은 ‘오늘 하루, 단어’라는 제목의 프로젝트입니다. 제목에서 모든 게 설명되어 있듯이 오늘 하루 나를 채워 준 단어를 100일 동안 남기는 프로젝트죠. 이 의식을 시작한 이유는 나라는 하나의 개인, 소설로 보자면 하나의 캐릭터를 이루는 요소를 관찰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작은 것을 보지 못해 큰 그림을 엉망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 인간이니까요. 그리고 쉽게 단어를 잊고, 쉽게 문장을 잊고, 쉽게 문단을 잊고, 쉽게 페이지를 잊고, 또 그렇게 쉽게… 하루를 잊다 보면 나라는 책이 너무나 얇고 보잘것 없어질 것 같아서였기도 합니다. 구닥다리 문구지만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사라질 뿐이니까요.
저는 앞으로 100일의 시간 동안 <프로젝트 100>에는 오늘 하루의 단어를, 브런치 매거진에는 의식을 잇는 시간을 겪으며 경험한 생각과 소회를 남겨보려 합니다.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면 이 매거진 역시 제게는 하나의 의식이 될 수 있겠죠.
PS.1
저의 이 의식이 하루키의 달리기처럼 습관이 될 수 있길 스스로 기원해봅니다.
(신을 찾거나 하지는 말죠)
PS.2
제 글을 보고 저와 같은 의식을 행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제 프로젝트(신청은 클릭!!)에서 함께 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하늘의 계시는 아니지만, 그런 기분으로 링크를 남깁니다)
PS.3
‘오늘 하루, 단어’ 말고도 수많은 프로젝트가 있으니 갖고 싶은 습관을 쇼핑하듯 구경해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PS.4
더불어 나 자신만의 의식을 프로젝트로 만들어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죠? 정확하지 않다면 죄송합니다. 종교활동 시간에 어깨너머로 들었을 뿐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