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언어의 거리

네가 빼앗은 건 카드지갑뿐이야 #5

by 최동민


dana-marin-IThpmszqH7Y-unsplash.jpg


지금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 학생을 찾기 어렵습니다. 정규 교과 과목을 제외하고도 무수히 많은 학원이 있더군요. 길을 가다 그런 학원의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학원이라고는 다녀본 적 없는 저의 부족한 경험치 때문이겠죠.

그런 이유일까요? 저는 타인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 아닌 거부감이 있습니다. 낯간지럽다고 할까요? 그런 기분과 동시에 “이건 지금 내가 배우고 싶은 내용이 아니잖아!”라며 강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강사는 아무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저 어색함이 가져온 자기 방어가 마땅찮은 시선을 가져온 것이겠죠.

그런 이유로 저는 무언가를 배울 때, 책을 찾는 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독학이라 부를 수도 있겠네요.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의 하나인 팟캐스트 제작을 처음 배울 때는 특히 가관이었습니다. 아직 팟캐스트가 국내에 자리잡기 전이었고 실제 제작되는 방송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걸 만드는 책이 나왔을 리도 없었죠. 물론 영어로 된 매뉴얼이 있긴 했고 영어를 가르쳐주는 책은 많이 있었습니다. 단지, 팟캐스트를 만드는 데 영어까지 배우고 싶진 않았습니다. (괜히 또 낯간지러워지기 싫었거든요)

결국 번역기와 한 줌 정도 있는 제작 설명 블로그 등을 보면서 겨우겨우 첫 팟캐스트를 만들어 등록했던 기억이 납니다.


책으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그것은 책의 두께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물론 그렇게 들인 시간은 거짓을 말하지 않기에 뒤로 가면 갈수록 체화되는 능력은 더욱 큰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러기 위해서는 긴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을 살다 보면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일들이 있죠. 아이를 돌보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아이의 성장은 예상보다 훨씬 빠릅니다. 처음 태어난 아기의 뇌는 성인의 25%에 불과하지만 1년 정도면 순식간에 75%까지 커버립니다. 아이는 그 정도의 성장 속도를 가지고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뇌의 성장보다 더딘 것들도 많습니다만…) 이 속도가 의미하는 것은 바꿔 말하면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필요한 것을 준비할 시간도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기 울음소리를 구분하는 법, 젖을 주는 방법, 트림을 시키는 방법,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는 방법, 재우는 방법 등을 재빨리 익혀야 하며 그것에 필요한 물건을 늦지 않게 사야 합니다.(안타깝게도 상품평을 일일이 찾아볼 시간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책으로 육아를 배울 수는 없었습니다. 병원이라는 울타리도 사라졌습니다. 물론 조리원의 능숙한 직원이 우리를 돕겠지만 그것도 2주의 시간이 고작입니다. 그 사이 한 명의 아이를 돌보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워두지 않는다면 팟캐스트를 처음 배울 때만큼이나 가관인 일들이 잔뜩일 것입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실수하거나 망쳐버리면 안 된다는 조건이 붙는다는 것이겠죠.

이 과목이 어려운 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시험지가 모두 다르다는 점입니다. “보통은 이러이러하다.”라는 명제가 통하지 않는 과목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생후 일주일 분유를 이 정도 먹습니다.” “보통 이 시기 신생아들은 이 정도 간격으로 이만큼 잠을 잡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어느 정도 맞는 부분도 있지만(그것도 거의 실력 없는 점쟁이의 두루뭉술한 점괘 정도죠) 대부분의 경우 아이는 “보통”과 다른 행동을 하곤 합니다. 보통 하는 트림의 시간, 보통 하는 수유 방법, 보통 우는 울음소리, 보통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순간… 이런 것들이 보통은 맞지 않기에 그때마다 당황하며 머리를 굴려야 하죠.


이때 아이에게 필요한 정답은 어디에 있을까요? 경험 많은 조리원 직원들이나 조리원 동기들도 가끔은 좋은 답을 알려 줍니다. 무수히 많은 육아책에도 어느 정도 쓸만한 조언이 있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은 모두 아이를 위한 완벽한 답의 퍼즐 조각일 뿐이죠. 그런 조각들을 모아 정답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에는 대화가 필요했습니다. 당신과 나눈 무수한 대화.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여러 퍼즐을 이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 하면서 갖아 좋은 그림을 맞춰 나갔습니다. 그리고 겨우 퍼즐을 완성해 아이에게 전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채점을 하죠. 우리의 답안이 흡족하다면 아이는 아직 다 발달하지 못한 얼굴 근육으로 미소를 짓거나 사르르 잠이 들것입니다. 그리고 답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곧장 울음을 터뜨리죠.


그 울음이 짜증이나 분노, 투정을 동반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아이도 우리의 대화에 참여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그래야만 더 완벽한 퍼즐을 맞출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너무 오래되어 아이의 언어를 까먹었다는 것이겠죠. 사실 대부분의 비극과 안타까움은 여기서 옵니다. 한때는 아이였던 그때의 기억을 모조리 잊어버린 것에서 말이죠.


어쩌겠어요.

다시 기역과 니은을 배우는 수밖에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