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빼앗은 건 카드지갑뿐이야 #6
내일 당신과 아이는 집으로 옵니다. 이를 위해서 2주간 분주히 준비를 했지만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빼먹은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지만 하릴없이 시간만 흐를 뿐이었습니다. 이럴 때는 철저히 적었다 생각한 체크리스트도 불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죠. 그러다 보니 홀로 선 거실 가운데서 저는 퍽 불안해졌습니다. 대부분 일에 낙천적인 편이지만 아이의 일에서는 그런 일관성을 지키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오랜만이네.”
저의 집에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그날 새벽. 서서히 진통이 시작된 당신의 목소리에 우리는 미리 준비한 출산용품을 챙겨 들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집을 떠났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야.” 이런 식의 극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긴 여행의 시작”정도의 낭만적인 타이틀을 붙이지도 않았죠.
굳이 비유하자면 등산. 조금 길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리고 그 너머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을 만나는 등산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3주의 등산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저희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고양이 가족 에밀과 로맹, 그리고 작은 새 한 마리였습니다. 그 새는 몹시도 장난기 넘치는 모습입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고 싶지 않다는 듯 날개를 펄럭이며 호기심 넘치는 눈과 입으로 세상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벚꽃 나무 가지에 발을 디딜 때면 어찌나 세차게 발을 굴렀는지 분홍 벚꽃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나비와 개구리도 놀라 달아날 정도였죠.
그 새는 지금 우리의 침대 옆에 앉아있습니다. 아이를 마중 나가기 전, 당신에게 선물한 이중섭의 그림에 말입니다. 그때 저는 그림과 함께 편지 한 통을 당신께 주었습니다.
<자리>
벚꽃의 자리
그 위에 새가 있어
우리,
또한 아이의 모습을 한 새가 있어
낯섦을 좇는 날개와
호기심 담은 깃털
장난을 노래할 입과
찰나의 아름다움에 발 디딘
우리,
또한 아이의 모습을 한 새가 있어
그 새가 머문 아름다움,
그곳이 우리의 모든 자리이길
그 새가 품은 찰나,
그것이 우리의 모든 순간이길
온갖 호기심을 동력으로 산의 정상을 넘어 우리 사이에서 날개를 쉬는 아이. 우리는 내일 그 아이가 조금 오래 머물 집의 문을 열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작게 울음을 터뜨릴 테고 그 순간 분홍 벚꽃 잎이 우수수 떨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십일월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상상이 조금 과한 것일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보지 않았나요.
지난 삼 주의 시간. 이보다 믿기지 않는 마술적 장면과 장면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