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끝에서 그녀가 다시 한번 내게 다가왔는데,
그때 카메라의 베터리가 방전되었습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내리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가 내 눈으로 직접 그녀의 시선을 마주한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무경계 No Boundaries⟫ 전시
미문 | 브라이언 오스틴
경기광주에 위치한 '닻미술관'은 자연으로 둘러싸인 길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전시관이 크지 않아 많은 작품을 기대하는 이에게는 아쉬운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에 오롯이 눈길 주기에는 더없이 완벽한 공간이기도 하죠. 게다가 카페를 비롯해 자연과 어우러지는 풍경 속 의자와 작가의 집, 그리고 공방은 짧은 산책을 즐기기에도 그만입니다.
그런 '닻미술관'에서 7월 15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전시가 있습니다. <무경계>라는 제목의 전시로 웨인 레빈과 브라이언 오스틴이 함께합니다. 두 아티스트는 해저나 산, 구름을 비롯한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담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작가입니다. 두 사람의 작품은 우리와 세상을 가르는 수많은 경계선, 그것이 사라진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지구가 낡으면 낡을 수록, 인간이 닳고 닳수록 더 가치있다 말할 수 있겠죠.
이 전시에서 인상깊게 본 미문이 있습니다. 미문의 주인은 브라이언 오스틴인데요. 그가 담은 거대한 고래 사진 옆에 남겨진 글이었습니다.
❝하루의 끝에서 그녀가 다시 한번 내게 다가왔는데, 그때 카메라의 베터리가 방전되었습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내리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가 내 눈으로 직접 그녀의 시선을 마주한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브라이언 오스틴은 바다라는 경계선, 그 아래로 내려가 고래와 인간. 서로 다른 두 생명체의 경계를 지우며 고래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벽면 전체를 채우고 있는 그 거대한 고래를 찍을 때 작가는 이런 경험을 했다고하죠.
호주에서의 마지막 촬영날. 그때 작가는 며칠간 매일 마주했던 암컷 고래의 마지막 촬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카메라 배터리가 방전되어 버렸고, 작가는 정말이지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때, 작가는 처음으로 그 고래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마주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어떤 작업의 에피소드도 아닌, 눈과 눈을 마주했을 때의 경험. 그 경험을 작가는 미문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이 미문은 디지털이라는 이제는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익숙해진. 그 단어 속을 헤메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만큼 디지털의 화면에 시선을 둘까. 그렇게 빼앗긴 시선이 원래 있던 자리는 어디일까? 이 질문의 답은 아마도 책, 풍경, 혹은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 같은 것일텐데요.
의식적으로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 실제하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존재에 시선을 두는 시간을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미문 앞에 그런 다짐을 이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