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왜 젊음을 젊은이에게 주어
그것을 낭비하게 하시나요.❞
⟪Lost Stars⟫
미문 | 애덤 리바인
1.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은 태어나 7살까지 살아가기 충분할 만큼 성장한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사람은 7살 이후로 죽어간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까. J와 D는 인터넷에 나도는 공신력 없는 헛소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진실이었다. 물론 과장이 조금 섞였지만 말이다. 인간의 신체는 7살까지 제 기능을 할 만큼 충분히 성장한다. 이후에 성장하고 발달하고 단련되는 것은 컴퓨터로 치면 최소사양에서 권장 사양으로 가는 길이다. 재밌는 것은 7살 이후 우리의 신체는 반환점을 돈 마라토너처럼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다. 7살은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세상은 언제나 그런 사소한 부조리로 가득 차 있는 법이니까.
2.
J는 여행을 좋아했다. D는 여행하는 척을 좋아했다. J덕에 진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D는 여행은 하는 척 보다 직접 하는 게 더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요일까지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었던 J는 토요일 오후 비행기로 제주도에 내려가 일요일 저녁 비행기로 올라오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어머, 짐승."
여행을 즐기지 않는 이들이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거친 스케줄임이 분명하다. D도 그게 될까? 싶었다. 문제는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직접 해봐야 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런 짐승 같은 스케줄로 여행을 다녀왔다. 어...?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보다 할 만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음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토요일 오후 비행기로 제주도에 내려가, 월요일 첫 비행기로 올라와 출근하는 스케줄.
"어머, 짐승."
여행을 즐기지 않는 이들이 보기에는 지나치다는 말도 과분할 정도의 거친 스케줄이었다. D는 이번엔 의심하지 않는다.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J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J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니 가서 뭘 할지 더 생각해 보는 쪽이었다. (물론 그것도 오래 하지 않았다. 즉흥과 감각은 J의 무기였다) 그렇게 해서 D와 J는 말도 안 되는 스케줄로 제주도를 몇 번, 일본을 몇 번, 유럽을 몇 번, 동남아를 몇 번. 다녀왔다. 예상외로 집과 가까운 곳은 자주 다니지 않았다. 사람 많다는 양평을 비롯해 용인 에버랜드, 가평이나 춘천 같은 곳도 갈 일이 많지 않았다. 서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두 사람은 파주에 여행을 가면 어떨지 생각했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책'의 도시. 그곳에 가지 않고서 책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말할 수는 있지만 어쩐지 죄스러운 마음이 들 것만 같았다. 게다가 파주에는 근사한 장어집도 있고, 숙소도 저렴했다. 이쯤 되니 안 갈 이유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두 사람은 떠났다. 1시간 30분 거리의 파주로.
막상 파주에 오니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주말의 출판도시는 D의 주변 출판인들 말처럼 유령도시에 가까웠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세트장처럼 출판도시는 텅텅 비어있었다. 그래서 근처의 유명한 카페도 가보고 출판도시 내의 책 관련 박물관이나 상점도 몇 군데 들렸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넘쳤다. 젊은 시절의 시간이 늘 그렇듯이 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파주까지 와서 영화관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이곳의 명소인 <명필름 아트센터> 같은 곳이 아닌 프랜차이즈 극장을 찾았다. 극장에서는 <비긴 어게인>이 상영 중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감독의 영화 <원스>를 지나칠 정도로 사랑했다. (함께 본 첫 영화는 <파라노멀 액티비티 4>였지만...) 유령도시라는 명성답게 상영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다섯 명 정도가 전부일 것 같았다. J와 D는 그곳에서 영화를 봤다.
3.
영화는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끝났다.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J와 D는 조금 더 있기로 했다. <원스>를 봤을 때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조금 흘러 모든 사람이 나간 뒤, 두 사람도 짐을 챙겨 나왔다. 그리고 숙소로 향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왔을 때쯤. J가 말했다.
"그냥은 못 들어가겠는데?"
D는 동의했다. 그리고 정차를 할 수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플레이.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도로, 그 길에 놓인 자동차. 그 안의 두 사람. 그들에게 영화 <원스>의 O.S.T가 흘렀다. 를 시작으로 몇 곡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앨범의 재생이 끝날 때쯤, 두 사람은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거지."
J가 말했다.
"이거네."
D가 얹었다.
<원스>를 기대한 두 사람에게 <비긴 어게인>은 어쩐지 너무 세련된 영화였다. 기승전결도 잘 짜여 있고, 흐름도 무난했다. 도를 치면 도가 들리고, 솔을 치면 솔이 들리는, 그런 영화였다.
"너무 깔끔했지?"
J의 의견에 D가 동의한다.
"<원스>는 안 그랬는데."
D의 말에 J가 공감한다.
두 사람에게 <원스>는 삐걱대는 영화였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모호할 때도 많았고, 이 대사가 저 대사의 답이 맞나? 싶은 경우도 많았다.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박자와, 가끔은 물 흐르듯 진행되는 멜로디. 그래서 더 삐걱대는 것 같은 영화가 <원스>였다. 두 사람은 그 삐걱댐을 좋아했다. 단지 그 이유였다. 기껏 여행을 와놓고 한적한 곳에 차를 대고, 좋지도 않은 카 오디오로 영화 O.S.T 앨범을 듣는 이유는 겨우 그것이었다. <원스>의 삐걱댐을 기억하고, 그것을 다시 즐길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그 기대를 채우지 못하자 여행이고 뭐고, 한 번 더 <원스>의 음악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적한 도로에서 1시간을 기꺼이 낭비했다.
4.
영화 <원스>에서 두 사람이 좋아하는 장면은 가령 이런 것들이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청소기를 고친답시고 돌아다니는 장면, 앨범 녹음할 시간도 부족할 텐데 버스에서 장난치며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장면 같은. 이야기의 흐름상 없어도 지장이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장면을 항상 사랑했다. 영화에서도 삶에서도, 그런 장면이 훨씬 오래 기억 남는다는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함께 오른 제주도의 오름 이름은 까먹어도, 오름에 오르며 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숙련된 영화감독이나 제작자가 본다면 가차 없이 삭제했을 장면들. 그런 장면들은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여행이란 결국 기억을 남기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오름에 오르는 것이 수단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두 사람에겐 목적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뒤, 지인을 만나 여행 이야기를 할 때면 곤란할 때가 있었다. 지인들은 오름의 아름다움을 물었지만, 두 사람은 그것은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오름을 오르며 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 두 사람이 아니면 딱히 재미없을 이야기, 그 시간을 함께하지 않았으면 이해되지 않을 그런 이야기만 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몇 번 해 본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런 반응이었다.
"겨우 그걸 하려고 거기에 간 거야?"
두 사람에게는 익숙한 반응이었다. 마치 대중성 없는 감독의 GV 자리처럼, 두 사람은 시시콜콜한 장면들의 의미를 덧붙여야 했다. 파주까지 여행을 와서 프랜차이즈 영화관에 간 일이나, 영화를 보고 난 뒤, 레스토랑이나 숙소로 가는 것이 아닌 도로에 차를 세우고 좋지도 않은 카 오디오로 앨범을 듣는 장면 같은. 그런 장면의 의미를 설명해야 했다. 사실 두 사람 스스로도 여행의 마지막에서, 혹은 돌아온 일상의 처음에서 그런 질문을 하곤 했다. 이럴 거면 왜 여행을 간 거지? 이번에도 그 유명한 데는 못 가봤네? 같은.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은 그래도 이번 여행처럼 다니는 게 훨씬 재밌지. 라며 이유를 배제한 결론을 내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비긴 어게인>에서 그 이유까지 찾았으니까.
5.
<비긴 어게인>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그레타의 전 남친, 데이브의 콘서트다. 데이브는 바람을 피워 그레타와 헤어졌고, 두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데이브는 자신의 콘서트에 그레타를 초대하고,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그레타가 크리스마스에 선물한 곡 를 부른다.
이 곡의 후렴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신이시여, 왜 젊음을 젊은이에게 주어
그것을 낭비하게 하시나요.❞
두 사람은 그 가사를 본 순간 그것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삶에 대한 은유이자, 변명이며, 질문이고, 대답이었다.
낭비. 인생을 왜 낭비하는 걸까. 왜 패키지여행에 들어가야 할 법한 목록들은 제외한 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걸까. 두 사람은 그럴 때마다 그런 시간을 "좋아해서"라는 답만 남기곤 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뭐랄까. 멋이 없었다. 두 사람은 낭비의 즐거움. 그것을 잘 포장해 줄 수 있는 예쁜 포장지나 쇼핑백이 필요했다. 그것이 이 미문에 있었다.
미문에 나온 젊은이는 데이브이자 그레타이며 댄이자 J와 D였다. 젊음을 겪지 않고 어른이 되는 경우는 버튼을 제외하면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커다란 바구니에 담긴 젊음을 낭비하곤 한다. (왜 아니겠는가. 바구니는 이렇게 크고, 젊음은 넘치듯 담겨 있는데) 영화 속에서 데이브도 그랬다. 낭비해 버린 시간과 감정, 그리고 젊음의 시기를 후회하며 노래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D와 J는 그 노랫말 속에 후회만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후회보다는 받아들임. 그런 감정에 가까웠다. 만약 데이브에게 다시 한번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래서 젊음의 바구니를 또 한 번 받게 된다면 그는 젊음을 어떻게 사용할까? 어느 현자들. 혹은 애늙은이들처럼 그것을 아끼고 아껴 현명한 시간으로 바꾸어 먹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젊음이라는 화폐에는 이상한 환율이 적용한다. 그래서 현명한 경험, 잘 짜인 계획. 그런 것으로 바꾸려면 몹시도 많은 젊음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렇게 바꾼 것이 꼭 제값을 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것은 손해 보는 일이었다. 그런 것들은 젊음의 화폐가 아닌, 다른 화폐로 바꾸어야 제값을 치를 수 있다. 그렇다면 젊음의 화폐의 제값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낭비'에 있다. 쓸모없이 아름다운 것. 무용한 것. 오늘 하루만 죽을 듯이 빛나고 내일이면 진짜 죽어버리는 것, 의미 없는 것, 하지만 의미 있는 척하는 것,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존재들. 지나고 나면 낭비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만한 것들. 젊음은 사기에 아주 적합한 화폐다. 적어도 J와 D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제 들어갈까?"
"한 곡만 더 듣고 갈까?"
"좋아."
두 사람은 조금 더 젊음을 낭비하는 젊은이가 되기로 했다.
언젠가 i도 그렇게 되길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