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문의 에세이】❝가지고 있다 믿는 것들의 목록❞

by 최동민


❝이곳에 없거나 잃은 것을 생각하기보다

그것을 담은 가방이 어딘가 있다 생각하면 살아가게 된다❞


⟪감자 있는 부엌⟫

미문 | 유수연




1.

과거 창을 들고 전쟁을 나서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국가도 소속도 심지어 혈육 하나 없는 나라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전쟁에 참여하면 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용병이란 이름의 그들은 때로는 조직으로 활동했고, 또 때로는 개인의 역량으로 승부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버는 사람들. 그들을 두고 사람들은 '프리랜서'라 불렀다.


이 이야기는 형편없는 소설가의 캐릭터 구상 페이지에 있을 것만 같다. 허나 프리랜서는 실제로 있었다. 아직 총과 대포가 등장하기 전, 병사들의 몸과 힘이 도구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던 그때. 프리랜서는 등장했다. 당시 가장 강한 무기였던 창을 들고 그것으로 일당백을 할 수 있다고 외치던 이들은 (그들 중 몇몇은 과장광고였음이 분명하다) 자유 창병이라는 뜻으로 프리랜서라 불렸다. 이제는 스포츠 용어로 더 익숙한 '용병'이란 표현도 여기서 나왔다. D는 이 이야기를 꽤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D가 프리랜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D가 몸이 우락부락하거나 창을 자유자재로 돌릴 만큼 근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삼국지 액션 게임 <진 삼국 무쌍>에서 가장 즐겨 쓰는 캐릭터는 언제나 창을 든 이들이었고, 그들은 한 게임에 천 명 이상을 쓰러뜨렸지만 지금 쓴 문장처럼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다.

D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첫 수입을 올렸고, 이후, 팟캐스트라는 세계에 조금 일찍 발을 들인 덕분에 몇몇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었다. 그런 활동은 모두 '비정규직' 혹은 '계약직'이라 불리는 일이었으며, 조금 멋있어 보이고 싶을 때 '프리랜서'라 말하는 일들이었다.

'프리랜서'의 일이라는 것은 정말 용병과 다를 바 없다. 상대는 돈을 흔들며 임무를 준다. 그러면 그 임무를 해결하고 짤랑 소리가 나는 주머니를 가방에 넣는다. 그렇기에 명절이라고 보너스를 받는다거나, 회사의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는 사원증을 받는 일도 없다. 어찌 보면 '쿨'하지만 그만큼 냉정하다 싶은 세계였다. 물론 D는 D의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인복은 타고났어."에 어울리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덕분에 긴 시간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시간이 불안으로 느껴진 것은 아마도 i와 함께할 상상을 했던 때였다. D에게는 몇 안 되는 친구가 있었고, 그중 한 명은 it 계열의 프리랜서였다. 일은 끊이지 않고 돈도 많이 벌었다. 선천적으로 속박이나 규율 따위를 싫어했던(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 그에게 프리랜서는 천직과 다르지 않았다. 정해진 장소와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할 필요가 없으며, 중요한 것은 데드라인에 목숨 대신 성과물을 내놓으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래서 D는 그 친구만은 영원히 프리랜서로 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취업을 했다. 그리고 9 to 5의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자유 용병의 상징과도 같던 그가 말이다.

친구가 프리랜서를 포기한 이유는 '안정'이었다. 친구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더는 자유를 좇아선 안 된다 생각했다. 수입이 줄어들고 잠자는 시간이 바뀐다 하더라도. 그 근사한 전리품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안정된 수익과 정년, 그리고 꼬박꼬박 나오는 보너스를 생각하면 그쪽이 나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화려하게 치장한 창을 내던지고 정규군의 천편일률적인 창을 손에 들었다.



2.

D는 i와 함께하는 삶을 임신 전부터 임신 기간 내내 상상했다. 아니, i가 태어난 뒤에도 상상은 이어졌다. 오늘의 기저귀를 갈면서 내일의 유모차 산책을 상상했고, 새벽의 꿈 수유를 하면서 한낮의 단잠을 상상했다. 그 상상의 과정 중, D는 스산히 자신의 몸을 훑는 바람을 느끼곤 했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그 바람은 같은 온도로 D를 스쳤다. 그때마다 D는 움츠렸다. 일과 월급이 많아진 D가 비싼 외투를 입고 있을 때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 바람의 정체는 '불안'이었다. 모두가 외치는 것만 같았다.

"아이를 키우는데 그런 직업으로 되겠어? 지금은 잘 나가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그때 돼서 대비하면 늦어. 너, 생각보다 아이들은 금방 큰다? 지금 돈 많이 드는 거 같지? 초등학생 돼보라. 학원비만 내도 통장이 텅텅 비어."

누구도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직업을 말해야 할 때나, 아침과 낮에 아이를 돌보고 있을 때면 놀이터의 엄마들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 같아 D는 복지 좋은 대기업에 다니며 육아휴직을 받은 인텔리처럼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i의 그네를 밀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i는 그네를 정말 좋아했다. 하루 한두 시간은 기본이었고, 아침에 탔어도 저녁이면 처음 그네를 타 본 것처럼 놀랍게 재밌다는 표정으로 그네를 탔다. 같은 나이, 혹은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아이들도 무서워할 높이로 그네를 밀어줘도 i는 만족을 몰랐다. 말은 하지 못했지만, 더 높이, 더 높이! 를 외치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네는 관성의 놀이기구라는 점이다. 타는 이든 미는 이든 그 행동에만 집중하면 쉽게 질려버린다는 것이다. 타는 이는 타는 이대로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무수한 상상의 세계를 그려야 한다. 미는 이는 조금 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안전이라는 깃발을 머리에 꽂은 뒤, 남은 부분은 상상으로 채워야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다. 그럴 때마다 D는 '안전'과 비슷한 단어처럼 보이는 '안정'으로 시작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일반적인 출퇴근을 하면 어떨까? J의 업무 시간과 맞물려서 i를 돌보는 데 더 문제가 생기겠지? 좋아, 그 핑계로 좋아하는 프리랜서의 삶을 이어가자! 싶다가도. 넌 지금 안정을 찾지 않을 핑계만 줍고 있잖아? 라는 마음의 소리에 뜨끔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려봐도 프리랜서를 벗어난 삶은 잘 그려지질 않았다. 지금의 i에겐 D가 프리랜서여서 줄 수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놀랍게도 i는 크게 웃었다. 응원일까? 아니면 아빠는 어차피 안 돼요. 빨리 그네나 힘껏 밀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런 상상을 접고 그네 미는 일에 집중한다. 지금 D가 맡은 자유 용병의 일은 그것이었다.


3.

D는 프리랜서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자신이 이토록 비관적인 성격이었는지 깨달았다. 혼자 만드는 영화라면 모험 활극이나 코미디가 될 수 있지만, 둘이나 셋이라면 장르가 달라진다. 대부분은 비극과 관련된 것이고 또 철저히 다큐멘터리 스러워진다. 그런 현실의 세계에서 언제까지 꿈이라든지 바라는 것만을 향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영화의 상영시간은 정해져 있고 D는 J와 i. 두 사람과 함께 엔딩을 만들어야 하니까.

J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J는 그런 틈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낙천적이라 생각해 본 적 없는 J는 D가 잃어버린 낙천성을 잘 찾곤 했다. 그리고 그것을 잘 담아 두곤 했는데, 필요할 때면 그것을 꺼내 쓰곤 했다. J가 D와 비슷한 '안정'에 대한 상상을 할 때면, J는 낙천의 조각 하나를 품에 꺼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이런 미문을 들었을 것이다.


❝이곳에 없거나 잃은 것을 생각하기보다

그것을 담은 가방이 어딘가 있다고 생각하면 살아가게 된다.❞


유수연 시인의 시 <감자 있는 부엌>. 이 시에는 제목과 달리 감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감자는 검은 봉투에 싸여 있거나, 부엌이 아닌 어딘가에 있거나, 노부부의 대화에만 등장한다. 그럼에도 제목이 감자 있는 부엌인 탓은 아마도 이 미문에 있을 것이다. 시 속에서 부부는 감자를 찾는다. 그 감자는 분명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현재 두 사람의 부엌에는 없다. 부부는 그 사실을 전혀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엌에 감자가 없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감자가 담긴 가방이 어딘가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J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 J와 D가 마주 앉은 식탁 위, J와 i가 나란히 누운 침대 사이, J와 i와 D가 손을 잡고 걷는 품과 품 사이. 그 어디에도 '안정'이 없다 한들.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 당장 곁에 없더라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그래서 감잣국을 끓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것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도 못한 채, 어디에도 없다 믿는 것이다. 살아가려면. 그런 형편없는 믿음은 버려야 한다. J는 그렇게 생각했다. D가 프리랜서여서, J가 학원의 강사여서, i가 그네를 너무 좋아해서. 가방에 담아 놓아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그것은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사라진 것도 아니고, 단지 지금은 필요 없어서 가방에 담아둔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 믿음은 두 사람을 살아가게 했다. 그리고 i가 탄 그네를 훨씬 더 높이 올려주었다. i는 높이에 비례해 깔깔 웃었다. 감자를 담은 가방. 그렇게 비워둔 자리 덕에 놓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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