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해진 공기, 낙차 큰 온도계. 가을이면 제법 쌀쌀해지는 바람과 그럼에도
이 계절을 즐기고픈 마음이 겹쳐 쉬이 코를 훌쩍이곤 합니다. 그럴 때면 아무리 얼죽아로 살아왔다 하더라도 따뜻한 차 한 잔이 떠오르는데요. 괜스레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쌍화차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한때는 다방이라 불리는 곳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쌍화차. 지금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나 전통차를 파는 찻집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쌍화차를
한 잔 시켜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말로만 듣던 계란 노른자는 올라가 있지 않습니다. 차에 노른자를 띄워 마신다는 생각. 그건 어떤 이의 무슨 마음이 동해서 시작된 것일까요?
“몸보신하라고 띄우는 거예요. 옛날에는 풍족하지 않아서 제대로 끼니를 못 챙길 때가 많으니까. 단백질 보충하라고 그런 거죠.”
그 말에 설마... 싶다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입니다. 쌍화차의 시작은 차라기보다는 약에 가까웠습니다. 백작약, 숙지황, 당귀, 천궁, 계피, 감초 같은 약재를 탕기에서 뭉근히 달인 약탕을 차처럼 마시는 것이었죠. 여기에 취향에 맞게, 곳간 형편에 맞게 고명을 올려 먹었는데요. 주로 건강에 좋은 호두나 잣, 그리고 달걀을 얹어 마셨습니다.
그때의 사람들은 가을의 초입, 찬바람과 긴 밤. 그 시간을 이 차 한 잔으로 달랬습니다. 그리고 여름내 허리 한 번 못 펴고, 고된 노동을 잇다 상한 몸을 이 한 잔의 차로 채웠습니다. 노동의 대가로는 몹시도 부족한 이 차 한잔으로 말입니다.
오늘, 다시 그때처럼 가을이 왔습니다. 일교차는 아이들의 변덕만큼이나 높이가 오락가락, 찬바람은 지난 계절의 고군분투로 허해진 몸 곳곳을 공격합니다. 그때 쌍화차 한 잔을 마십니다. 몸속부터 열이 오릅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의 끝부터 기분 좋은 열감이 오름을 느낍니다. 그 열기는 온몸을 부드럽게 풀어줍니다. 그래서 펼 수 있습니다. 허리도, 어깨도, 마음도.
이제 조금 식어버린 찻잔을 양손으로 쥐어봅니다. 그리고 “쌍화” 이 두 글자에 담긴 마음을 돌아봅니다. ‘둘이 화목하다.’라는 어여쁜 마음을 담은 그 단어를 보며, 이 가을 곁에 있던 누군가에 기대 봅니다.
이천이십삼 년. 시 월. 이십칠 일.
《윤고은의 EBS 북카페》일간 카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