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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성 에세이 #99. 태풍이 지나가고

by 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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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료타. 아니, 소설가 였던 료타는 사설탐정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5년 전쯤. 문학상을 수상하며 성공한 작가가 될 기회가 있었지만 성공이란 단어는 사람의 몸을 쉽게 덥히고 찐득한 땀을 내게 하는 힘이 있었는지 끈기 없는 료타는 훌렁, 옷을 벗고 그 기회를 던져버리죠. 그런 료타를 기다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내도 아들도 료타의 곁을 떠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죠.


그날은 어느 여름의 후반전 이었습니다. 그 시기가 되면 늘상 그렇듯이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들렸고, 오랜만에 아들과 본가에 간 료타는 아들을 데려다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죠. 그래서 이혼한 아내 쿄코는 정말 오랜만에 그 집을 찾습니다. 문제는 너무 빨리 다가온 태풍 때문에 떠나지 못한 채, 하룻밤을 오롯이 그곳에서 머물러야 했다는 것이죠.


그렇게 태풍이 만들어준 료타와 쿄코의 시간. 그 시간 내내 료타는 다가올 태풍을 이야기 하고

쿄코는 지나간 태풍은 그저 흘려보내야 한다 말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태풍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머리 위로는 늦여름의 쨍한 햇볕이 내려옵니다.


이제 두사람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의 끝자락을 애써 붙잡을지, 아니면 흘러간 태풍처럼 그저 흘려보내야 할지를 말이죠. 두 사람의 선택은 어땠을까요?


여름과 우리의 뒷모습,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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