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구에 불이 붙습니다. 그 말은 곧 열기구가 오를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 단순한 인과관계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겠죠. 열기구는 그렇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예상대로입니다. 열기구는 하늘로 오릅니다. 어찌나 높이 올라서인지 그 아래로 전경이 펼쳐집니다. 전경에 속한 것은 튈르리 정원, 센 강, 루브르, 그랑 팔레, 콩코르드, 그리고 에펠탑. 324m 높이의 에펠탑을 눈 앞데 두었다는 것은 열기구가 그만큼 높이 올랐음을 말해줍니다. 풍선과 바구니. 별것 아닌 것 같은 두 개체가 만났을 뿐인데, 만들어진 후, 지금껏 찬사를 받는 에펠탑과 같은 눈높이에 선다는 것. 그것은 꽤나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그건 제가 에펠탑 같은 인간이 아닌, 좋게 봐야 풍선 혹은 바구니 정도의 인간이어서 그런 것이겠죠.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열기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제껏 함께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을 함께하게 해보라. 때로는 세상이 변할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은 추락해 불에 타오를지도 모른다. 혹은 타올라서 추락하거나. 그러나 때로, 새로운 일이 벌어지면서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 나란히 함께 그 최초의 환희에 잠겨 몸이 떠오르는 그 최초의 가공할 감각을 만끽할 때, 그들은 각각의 개체였을 때보다 더 위대하다. 함께 할 때 그들은 더 멀리,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본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열기구는 두 개체가 만난 덕에 더 멀리,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그 선명함에 파리와 에펠탑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서 있습니다. 하얀 드레스의 여성입니다. 여성은 찬란한 표정으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이 무너질 수 있어요.
땅도 무너질지 몰라요.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상관없어요.
세상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아요."
노래의 주인은 셀린 디옹입니다. 희귀 신경질환을 앓고 있다고 알려진 그녀가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녀가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 오를 것을 예상한 이는 없었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노래를 부르면 성대가 칼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런 그녀가 노래를? 그것도 올림픽 개막식에서? 이는 예상키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더 놀라운 일이기도 하죠. 마치 열기구가 처음 튈르리 정원에서 떠올랐을 때처럼 말입니다.
셀린 디옹의 무대는 열기구를 형상화한 성화대에 불이 붙고, 그것이 하늘로 떠오른 뒤 펼쳐졌습니다. 올림픽 개막식의 피날레 공연이라면, 결의를 다지거나 승리를 찬양하거나, 도전을 추앙하는. 그런 이미지의 노래를 부르는 게 일반적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것들이 대략 그런 것들이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셀린 디옹과 파리의 선택은 그들의 오랜 사랑의 존재.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사랑의 찬가>였습니다. 노래 가사는 제목과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찬가. 사랑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좇는 이들에 대한 찬사가 담긴 노래입니다. 이 노래에 대결이라든지, 우열이라든지, 승자와 패자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속성이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이 노래는 올림픽과 어울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틀리거나 무리한 결론이 아닙니다. 어쩌면 당연한 그런 결과겠죠.
"그래서 이 노래는 올림픽과 어울린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틀리거나 무리한 결론이 아닙니다. 다만, 당연한 결과도 아니겠죠.
올림픽의 정신. 화합이니 평화니 하는 것은 일단 미뤄두고 개인으로서 올림픽의 정신을 생각해 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상승'일 것입니다. 지난날, 내가 서 있던 계단보다 한 걸음 더 위로 오르는 것. 그리하여 조금 더 멀리, 더 선명히 바라보는 것. 그 가치를 이루기 위해 올림픽에 참가하거나 그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랑의 찬가>는 올림픽과 완벽히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겠죠.
사랑은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허공을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경험해 본 바 없기에 지금은 이렇게 단언할 수밖에 없겠죠. 사랑은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상대의 몸을 부둥켜안고, 공을 주고받듯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상처를 또 때로는 위로를 나누는 일. 그리하여 함께 포디움에 오르는 일. 그것이 사랑입니다. 말하자면 사랑은 '상승'을 위한 가장 완벽한 방법입니다. 이 말이 거짓처럼 느껴진다면 다시 한번 파리 올림픽의 성화대를 보죠. 풍선과 바구니. 이제껏 하나인 적 없었던 두 개채가 만나 저토록 높이 '상승'한 모습을 말이에요. 거짓이 아니지 않나요? 사랑은 상승입니다.
그 언젠가 지인이 이런 말을 해준 기억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사랑을 썼으면 합니다."
왜 그런가 되물은 기억이 있습니다.
"난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요."
그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지. 그것만 한 게 또 뭐가 있겠어."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어쩐지 사랑을 적기에 민망하달까요. 불안하달까요. 괜히 꺼리게 되더군요. 그래서 쓰지 못하던 차에 파리 올림픽 개막식과 피날레 무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어쩐지 그 무대를 보는 내내 망설이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저렇게 하면 되는 것인데. 저렇게 노래하면 그만인 것인데. 나는 뭘 그리 망설였나 싶었습니다. 누가 생업을 접고 말리러 다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어쩐지 그 무대를 보는 내내 비어버린 용기가 찰박찰박. 채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주문한 쿨튀김이 한가득 담겨 테이블에 놓인 것 같달까요.
아무튼, 꽤나 즐거운 기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