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을 나설 때면 꼭 챙기는 손목시계 시각이 이상했다. 5시 15분. 어림잡아도 6시는 넘긴 시각일 텐데 넌 왜 그러냐? 핸드폰 시각을 보니 7시를 향하고 있었다. 둘 중 하나였다. 아프거나 약이 모자라거나. 일단 시계 시침과 분침을 핸드폰 시각에 맞추고 지켜보기로 했다. 손목시계니까 손목에 그대로 두기만 하면 된다.
여러 일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시계 시각을 확인했다. 역시나, 녀석은 성실하게 일했으나 다른 시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성실함이 힘들어 보였다. 너처럼 시간이 흐른다면 나는 어떨까? 더 많이 느낄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더 많이 할 수 있을까? 아님 지루할까?
하루를 24시간이라는 틀로 생각할 때 어제의 24시간과 오늘의 24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내일의 24시간 역시 마찬가지겠지. 그러니 너처럼 내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 그저 오늘 주어진 삶을 오늘 살다 오늘 죽겠지. 네가 죽어버리기 전에 난 널 살릴 거야.
힘겹게 성실함을 이어가는 녀석을 손목에 차고 시계 매장으로 가던 날, 나는 평소보다 자주 시계를 보았다.
"시계가 이상해요. 고장일까요, 약이 모자란 걸까요?"
"흠……, 먼저 배터리 교체를 해볼게요."
시계를 맡기고 매장을 둘러보았다. 알록달록 시계, 번쩍번쩍 시계, 깔끔깔끔 시계, 새침새침 시계, 시계들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내 시계와 똑같이 생긴 시계를 만났다. 그런데 낯설었다.
시계는 뽐을 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어때? 예쁘지. 난 일도 잘 해, 1분을 보면 1분만큼 움직인 걸 볼 수 있어. 내 시계도 이랬겠군.
"손님, 다 되었었어요."
매장 직원이 내 시계를 건네주었다.
"아, 예. 만약 앞으로 시각이 맞지 않으면 고장이겠죠?"
"그렇죠."
"그럼 그때는 수리를 맡겨야겠네요."
"아니요, 보상 교환을 하셔야 해요."
"예? 그게 뭐예요?"
"아, 저희 시계는 고치지 못해요. 고장 나면 다른 시계랑 교환하셔야 하는데 일정 부분 금액을 지불하셔야 해요."
"아니, 뭐, 그런……! 그럼 똑같이 생긴 시계로 바꾸고 싶은데 생산 중단이면 어떻게 해요?"
직원은 매우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그건 할 수 없어요. 같은 모델이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어조만 안타까울 뿐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는 듯했다. 살짝 화가 났으나 누구에게 화를 내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직원은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응대해주었고, 수리가 되지 않는 부분은 직원 탓이 아니니까. 그래도 나는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야 했다.
"그럼 최대한 고장 나지 않게 조심해야겠네요.(이런 빌어먹을!)"
직원은 또 안타까운 어조로 동조했다. 거기에 살짝 안타까운 얼굴을 보태는 예의를 보여주었다.
"예……."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계실 분이었지만 나도 예의를 갖추어 인사했다.
나는 매장을 나오며 손목을 감싸고 있는 내 사랑스러운 시계를 쓰다듬었다. 거리에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무수히 오가고 있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명동성당이 있을 것 같은데, 맞나……?'
급한 일도, 딱히 해야 할 일도 없는 오후라서 나는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지나도 옷깃은 스치지 않았다. 새삼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