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메타인지, 긍정성회복, 역지사지
"아니, 이렇게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려고
강사 섭외도 하지 않고 보고를 했어요?"
어제, 옆 팀 팀장이 전화를 했다. 회의실에서 잠깐 보자더니, 대뜸 이런 말을 던졌다.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아마 얼굴에도 다 드러났을 것이다.
구구절절 설명을 했다. 그런데 그가 말을 끊었다.
"알았어요. 아직 뭐 실체가 없네."
아... 폭발할 뻔했다.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지만, 결국 굳은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왔다.
그 순간,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25년 말, 회사의 인사이동 시즌이었다.
나는 팀장 교육 담당자로서 "신임리더 교육"을 준비하고 있었다. 팀장 인선이 발표되면, 그들을 환영하는 첫 번째 프로그램. 새로운 리더로서의 첫 걸음을 함께하는 자리. 그런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
인선 발표 일주일 전 목요일, 1차 서면보고를 마쳤다. 그리고 단 4일을 남겨둔 이번 주 월요일, 보고를 들어갔더니... 전면 개편이었다. 게다가 새로 오신 CHO도 참석하신단다.
정신없는 와중에 CHO 보고를 위해선 당장 바뀐 프로그램의 시간표를 짜야 했고, CHO의 강의 흐름까지 설계해야 했다. 강사 섭외는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화요일, 다행히 CHO 보고를 마쳤다.
이제 좀 정신 차리고 모듈 설계를 제대로 해보려는 찰나,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책임님, 신임 팀장 과정... 저한테 인수인계 하시래요."
나도 나름 잘하고 있었다. 잘하고 싶었다. 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한테는 일언반구 없이?
상황을 파악해 보니, 내가 다른 팀으로 이동하게 됐단다. 나한테는 말도 하지 않은 채.
250여 명의 신임 팀장 교육이 급했다.
내가 혼자 하던 일에 세 명이 투입됐다.
한 사람은 CHO의 강의안을, 한 사람은 모듈을, 한 사람은 외부 강사 섭외를.
'허... 뭐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몇 번을 불려 갔다. 히스토리를 알려달란다.
모듈을 이렇게 만든 과정과 이유를 설명했다. 내 생각도 이야기했다.
그 와중에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있었지만, 판판이 깨지기도 했다.
'이럴 거면 그냥 알아서 하지.'
그런 생각이 들어 내 마음을 좀 더 들여다봤다. 참 아쉽고 서운했다.
나도 나름 잘하고 있었고, 잘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었는데.
어제는 새로운 팀에서 큰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회사의 전 임원이 모이는 만찬 자리.
나는 그곳에 불려가 허드렛일을 도왔다. 리허설 중에 팀장이 자꾸 지적과 지시를 했다.
독불장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왜 저렇게 말을 하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네.'
쉬는 시간, 잠깐 팀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제야 이분의 고충이 느껴졌다. 얼마 남지 않은 큰 행사를 앞두고 조율하고 배려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팀장님도 잘하려고 하시는 건데, 큰 행사를 앞두고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 이런 자리에서는 기분 상해 하지 말자."
아침에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옆 팀 팀장의 그 말들.
여전히 기분이 별로였다.
나도 과정 개발 프로세스를 모르는 게 아니다.
1차 보고 때 세팅해둔 과정이 이번 주 화요일에 다 흐트러졌고,
CHO 보고를 하려면 모듈을 급하게 세팅해야 했다. ㅇ
(그 와중에 휴가 중이었던 건, 뭐 배려를 바란 것도 아니지만.)
억울함은 하늘을 찔렀다. 무시받았다는 기분이 계속 들었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자꾸만 올라왔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게, 자꾸 다 가르치려 들어.'
세상 꼰대 마인드라 하기 싫었는데... 쳇.
주변 동료들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가 다 죄송합니다."
"제가 보고를 잘 못해서, 중간에서 맘 상하게 했네요. 미안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 팀장도 잘하고 싶었던 거다.
게다가 그분은 육성 경험도 많으니, 과정 개발이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다.
잘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으니, 여유가 없어진 거지.
오늘 만난 두 팀장 모두,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조급함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어찌 보면,
내가 좀 더 나이가 많고 사회생활도 더 했고, 책도 읽고 사람 공부도 했으니...
내가 여유를 가지고 대했어야 하는 게 맞았다.
타인의 "좋은 의도"를 알아줘야 하고, "그럴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
잘하고 싶은 상대의 마음, 조급할 수밖에 없는 현장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결국 나에 대한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한 걸음 떨어져서, 그 사람들만 보지 말고, 나의 모습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여유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여유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