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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에서 100% 감귤 주스가 나온 다고?

도시 괴담 같은 수도꼭지 감귤주스

by 이진우

마츠야마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감귤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예전 유학 때 사귀었던 마츠야마 출신 일본 친구에게서 감귤 쿠키를 받았는데 그때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감귤 주스가 나온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그 말은 무시무시한 도시 괴담 같이 들렸고 왠지 모르게 수도꼭지에서 귀신이 나오는 것 마냥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うそ’(거짓말)이라 말하며 말끝을 흐려 화제를 바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도시 괴담이 잊히는 듯했다.

이번 여행에서 도고 온천에서 몸을 풀기 위해 이른 아침에 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에히메의 식탁’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갔나 싶었는데 다 여기로 갔구나 할 정도로 식탁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오렌지 빛, 아니 귤 빛 내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웬 소주컵(?)을 쟁반에 받쳐 들고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 모습을 한편에 두고 벽면에 크게 붙은 감귤 족보가 흥미로워 찬찬히 훑어보았다. 가장 가운데에 있는 왠지 귀여운 모양의 감귤 일 것 같은 기요미(清見)를 시작으로 색깔도 맛도 다른 다양한 이름의 귤 품종이 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목욕탕의 벽면과 그 속의 싱크대를 묘사한 듯, 흰색과 하늘색 타일이 대신 흰색과 주황색의 규칙적인 타일 배치, 색감이 달라 진것만으로도 놀이동산 같이 즐거운 마음이 들았다. 그 사이에 자리 잡은 수도꼭지가 의아함을 자아냈다. 각 수도꼭지 위를 자세히 보니 각기 다른 이름이 적혀 있는데 아래에는 품종의 이름과 신 맛과 단 맛의 정도를 포함한 설명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나면 도시 괴담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계산 카운터로 발걸음이 미끄러지듯 옮겨졌다. 지갑에서 주섬주섬 금액을 지불하면 컵과 쟁반을 주는데 스르륵 수도꼭지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수도 꼭지 앞에서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이니까.

도시 괴담을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찾은 나는, 신맛을 좋아한다는 사실과 하고 극한의 단맛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밸런스가 좋은 귤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맛의 감귤 주스를 선택했다.

소주잔보다는 약간 크고 한 잔에 300ml 정도 담을 수 있을까? 아니 표면 장력을 최대한 이용하면 400ml까지, 3잔 마시면 1.2l를 마실 만한 용량을 뽑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의지고 노력이다.

’ 끼리릭‘ 수도꼭지를 조심스럽게 돌리니 감귤 주스가 조르륵 나온다. 주스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온 신경을 집중해서 주스의 표면의 극한까지 담아냈다. 어떤 이는 쏟을까 봐 반만 담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욕심이 과해 절반을 쏟아 끈적해진 손을 훔치고 있는 이도 있었다. 직접 주스를 따라먹는 행위와 함께 감귤 주스의 맛에 대한 기대와 익숙한 수도꼭지를 틀어 주스를 받아 가는 낯선 경험이 즐겁다.

감귤주스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주스가 있었을까? 오렌지 주스 못지않은 깊은 단 맛, 아니 오렌지 보다 더 나을지 모른다. 신 맛은 레몬만큼은 아니지만 쓴 맛이 살짝 바치면서 약간의 단 맛이 올라오는 복잡한 맛이다.

수도꼭지 감귤 주스는 마츠야마 시내에 이곳저곳에 있어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다만 다양한 품종의 주스로 여러 가지 맛을 즐기고 싶다면 ‘에히메의 식탁’을 권한다. 다만 이곳은 대단히 붐비는 편이고 그 외 점포에서는 운이 좋다면 조용한 곳에서 감귤 주스 한잔과 함께 가벼운 휴식을 할 수도 있다. 다만, 감귤 주스에 홀린 당신을 보고 다른 사람도 홀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또 일부 대중적이지 않은 맛은 이곳에서만 구매할 수 있으니 맛있었다면 한병 사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참고로 나는 3병을 더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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