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다(2)

내가 식물연구원이 된 뜻밖의 우연

by 초록노동자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20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환경, 자연, 식물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지난주 연재글 <나는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다(1)>에 이어...



제가 가고 싶어 했던 환경학과는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과를 개설한 대학교가 많지 않았어요. 대학교 목록별로 설치 학과를 살펴보다가 눈에 익은 대학교 이름이 보였습니다. <0000 대학교>. '아니, 이 학교에 환경학과가 있었구나.' 그 학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육군사관학교 오픈하우스에 갔다가 우연히 교정을 통과하여 걸어갔던, 캠퍼스가 아름답다고 기억하는 학교였습니다. 3년 내내 꿈꿨던 육군사관학교 앞에 있는 학교라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그 학교의 다양한 전형 중에서, 농어촌전형이 있었어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2001년, 육군사관학교와 정문을 마주하고 있는 <0000 대학교>의 생명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환경학과는 복수전공으로만 선택할 수 있었어요. 2학년 때 복수전공으로 환경학과를 선택했습니다. 1학년 때 학부생들이 전공 필수로 들어야 하는 일반생물학 강의에서 지금의 지도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워낙 말씀을 잘하시고 강의도 잘하셔서, 일반생물학의 4개 과목 중에서 생태학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생태학은 수업을 4번 했는데, 그중에서 한 번은 학교 뒷산으로 실습을 나갔습니다. 제가 태어난 동네에서 어릴 적 저의 놀이터였던 뒷산과 아주 비슷한 학교의 뒷산에서, 처음으로 야외 식물 강의를 들었어요. 교수님은 학생들과 등산로를 함께 걸으면서 식물 이름을 알려주시고, 왜 여기서 자라는지, 이 숲은 왜 이렇게 발달하였는지 등등을 설명해 주셨어요. 마치 그림책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몰입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험은 그다음 주에 다시 현장에 와서 교수님께서 식물의 이름을 10가지 물어본다고 하셨습니다.


일주일 동안 다른 수업을 마치고 틈이 날 때마다 뒷산으로 갔어요. 식물의 잎을 채집해서 노트에 붙여놓고,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이름을 떠올려 적었어요. 기억이 안나는 식물의 이름은 도감을 보며 찾았어요. 하지만 초보자인 제가 그 두꺼운 도감 속에서 어떻게 식물의 이름을 찾겠어요. 한참 동안 도감을 뒤적거리다가 안 되겠어서 교수님이 운영하시는 실험실에 가서 조교 언니에게 이름을 물어보았어요. 노트에 붙여놓은 식물 잎의 아래에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나갔습니다.


이름을 알게 된 식물은 다시 뒷산으로 가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했어요. 사진을 찍고, 잎을 만져보고, 생김새를 관찰하고. 그렇게 교수님과 걸었던 길에 있는 식물들의 이름을 모두 외웠습니다. 그리고 시험 보는 날, 저는 교수님의 바로 뒤에 따라갔고, 시험도 제일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100점. 교수님께 제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 후로 지금까지, 제가 식물을 연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일반생물학 수업 이후로 3년 동안 식물과 생태학 관련 강의는 모두 들었습니다. 생태학 및 실험, 보존생태학, 환경생물학 및 실험, 담수생물학 및 실험, 경관생태학, 생물자원학 및 실험, 야외 및 임해실습... 식물을 이해할 수 있는 강의들을 들으며 지금의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토대가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식물연구원이 될 줄은 그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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