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식물연구원이 된 뜻밖의 우연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20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환경, 자연, 식물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눈을 잠깐 감았다 뜬 것 같은데 3주가 휙 지나갔어요. 3주 만에 다시 브런치를 열었습니다. 2026년 새해 계획을 잔뜩 세우고, 1월 1일 시작부터 의지가 뿜뿜 하여 앞서 달려가다가, 지쳐버렸습니다. 고르게 분배하지 않은 에너지가 소진되었어요. 1월 중반부터는 누워서 주야장천 책만 읽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지만 하고 싶지 않을 때, 저는 책으로 도피합니다. 새해에는 편독하지 않기로 했지만, 도피는 편독으로 했습니다. 마음 가는 소설을 읽었고,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에세이를 읽었어요.
다시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들쭉날쭉 쓰면 안 되는 것인 줄 아는데... 그동안 의지를 잃어버린 몸은 뜨끈한 전기장판을 침대만을 찾았습니다. 이제 포근한 이불속에서 빠져나와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이 연재하는 날인데,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서랍 안에 넣어두었던 글을 꺼냈습니다. 제가 식물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 26년 전 우연히 지나갔던 곳에서 시작한 필연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중학생 때, 아빠가 친구의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우리 집은 주저앉았어요. 집안에서 돈이 될 만한 모든 물건에 붉은 딱지가 붙었어요. 아빠의 얼굴색은 잿빛이었고, 엄마는 울었습니다. 아직 어린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길거리로 내쫓기기 일주일 전, 기적적으로 땅이 팔렸고 그 돈으로 급한 불을 껐어요. (알고 보니 기적이 기적이 아니었고, 큰아버지가 몰래 땅을 사주셨더라고요) 논농사를 짓던 논을 팔았고, 밭농사를 짓던 밭을 팔았으며, 여러 마리의 소와 소를 기르던 땅도 팔았습니다. 그래도 빚진 돈이 한참 남아서 그 후로도 아빠는 15년 동안 버는 돈을 모두 빚 갚는데 쓰셨어요. 저와 동생은 엄마가 공장에 다니면서 번 돈과 친척들이 간간히 도와주는 돈으로 겨우 학교를 다녔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꿈은 살포시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환경 관련 일을 하고 싶었어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시골의 온갖 자연이 가득한 환경에서 자란 영향일까요. 유난히 자연을 아끼고 생각하는 마음이 컸고, 그래서 담임 선생님은 저에게 환경미화부장을 맡기셨어요. 그 당시 환경 관련된 직업이 어떤 것이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요. 그때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방송과 신문밖에 없었어요. 자연환경을 지키려고 싸우는 환경운동가가 뉴스와 신문에 자주 나왔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환경운동가를 꿈꿨습니다.
가난을 벗어나려면, 부모님 어깨를 활짝 펼 수 있게 해 드리려면 대학에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집이 너무 가난해 대학을 갈 형편이 아니었어요. 그러던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육군사관학교에서 처음 여생도를 뽑았던 첫 회에 합격했던 선배언니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육군사관학교는 학비가 모두 무료라고 했습니다. 환경학과가 있는지 물어보았고, 다행히 있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그날부터 저의 목표는 육군사관학교의 환경학과에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군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
고등학교 3년 동안, 같은 꿈을 가진 친구와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하고, 저녁 먹은 후 1시간 동안 체력 훈련을 했어요(육군사관학교는 체력 테스트도 봐야 합니다.). 수능 시험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환경에 대한 신문기사를 찾아 읽었어요. 육군사관학교의 오픈하우스 행사가 있었어요. 일 년 중에서 유일하게 일반인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날이라고 해요. 신청을 했었던가, 경기도 파주에서 버스 타고 전철 타고 걸어서 육군사관학교에 갔고, 학교의 시설물들을 둘러보았어요. 보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육군사관학교의 바로 앞에도 대학교가 있는 것을 보았고(처음 들어본 대학교였어요), 그곳을 통과해 지하철역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3년을 준비했는데... 2000년, 그 해의 수능시험은 평이했다고 했습니다. 너무 쉬워서 물수능이라고도 했어요. 그런데 제 점수는 모의고사 때보다 왜 20점이나 떨어졌을까요. 가채점 결과를 보고 펑펑 울었습니다. 육군사관학교는 물 건너갔어요. 대학교에 가고 싶은데, 학비는 어떻게 하지. 한 달 후 수능시험 결과가 나왔고, 점수에 맞춰 대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