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밤에는 자야 하지 않을까?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20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환경, 자연, 식물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전에 이 주제의 글을 쓰자고 생각해 놓고, 벌써 삼 주가 지났다. 뒤늦게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 이제라도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시선이 조금 달라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와 아파트 단지의 나무에는 아직도 크리스마스 전에 감아놓은 전구가 매일 밤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12월 초부터(빠르면 11월 말부터) 다음 해 1월까지(어쩌면 2월까지) 나무는 밤낮이 따로 없는 삶을 산다.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야외의 나무에 전구를 설치하는 건 언제부터였을까. 1879년에 토머스 에디슨이 전기가 일상에서 쓰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하니 최대 약 147년이 되었겠다. 챗 GPT에게 물어보았더니, 도시 전력망이 확산되기 시작한 1900년대 초반이라고 추측한다. 나무는 어림잡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겨울밤에도 반짝이는 불빛 때문에 교란을 받으며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도시가 아닌 지역에 사는 나무는 삶의 질이 한결 나은 편이다. 시골은 겨울이 되면 유난히 해가 일찍 진다. 빛이 많지 않아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가로등도 많지 않아 거리는 어두컴컴하다. 사람들은 일찍 잠든다. 하지만 시골의 읍내에 사는 일부 나무에는 크리스마스 전구가 설치되어 있다. 그래도 도시보다는 덜하다. 생각해 보면 나무에 감아놓은 크리스마스 전구의 양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수와 비례하는 것 같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전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준다.
우리나라에는 ‘크리스마스 나무’라고 불리는 나무가 산다. 한라산과 지리산 등 고도가 1,000m가 넘는 높은 지대에 사는 구상나무(학명: Pinus koreana E.H.Wilson)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고유종이다. 실내에 설치하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체적인 모양과 잎 모양을 보면 구상나무와 아주 닮아있다. 아마도 구상나무나 그와 비슷한 나무를 모방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든 게 아닐까.
한라산에서 촬영한 구상나무. 2016년과 2017년에 구상나무를 연구했었다. 기후변화로 고사가 심각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한 종만 깊이 연구하는 것은 연구자에게는 큰 축복이었다.
겨울이 되면 길거리의 가로수나 아파트 단지에 심어놓은 어떤 식물이든 전구를 감아놓은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 학교 앞의 나무에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나무에서, 시내의 번화가에 사는 나무에서 크리스마스 전구가 밤새도록 반짝이고 있다. 우리는 밤에 잠을 잘 때 불을 모두 끈다. 밤은 식물에게도 깜깜해야 한다. 낮과 밤 동안의 빛의 세기에 수 천 년 동안 적응해 온 나무들은 괜찮을까.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다.
밤의 조명은 나무가 인지하는 빛의 길이와 세기를 인위적으로 연장해 계절 신호를 교란한다. 이로 인해 휴면이 지연되거나 새로운 잎의 성숙과 내한성이 저하될 수 있다. 또 밤에도 낮인 것으로 착각하여 호흡량을 늘인다고 한다. 낮 동안에 축적된 탄소를 더 많이 사용하게 만들어 나무의 건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이산화탄소를 계속 배출한다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가로등 옆에서 자라는 벼의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밤에는 가로등을 꺼달라는 민원도 있었다.
밤의 조명이 나무에게 미치는 영향은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살아있는 나무에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전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준다. 그만큼 나무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너무 우리만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나무에서 반짝이는 전구를 볼 때마다 불편하다.
* 참고: "겨우내 달았던 조명, 이제는 풀어주세요!"(국립산림과학 보도자료, 2023.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