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비가 되어 내리는 기후변화 이야기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20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환경, 자연, 식물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파주에 살던 어릴 적, 눈이 펑펑 내려서 내 키보다 더 높이 쌓이길 바랐다. 두텁게 쌓인 눈 사이로 굴을 파고 다니며 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꽤 많은 눈이 내린 날은 쌓인 눈을 그러모았다. 이글루 같은 집을 만들어 의외로 포근한 그 안에서 동네 아이들과 쏙닥거렸던 기억이 난다. 적설량이 5 센티미터만 되어도 눈이 많이 내렸다고 야단법석이 났다. 시내에서 아랫마을까지 하루에 여섯 번 다니던 마을버스는 눈이 쌓여 미끄러운 고개를 넘지 못해 운행을 중단했다.
군산은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다. 10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첫 해에, 내 인생에서 본 눈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눈이 내렸었다. 몇 날 며칠 동안 끊임없이 펑펑 내리는 눈이 신기했다. 플라스틱 뽀로로 썰매를 샀고,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에서 아이와 썰매를 탔다. 아이가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타면 쌓인 눈 속으로 쏙 들어갔다. 제설을 한다고 하지만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을 당할 수 없었다. 금세 눈이 쌓였고, 눈이 두껍게 쌓인 도로를 살살 운전하며 출퇴근을 했다. 부산은 눈이 1 센티미터만 내려도 교통이 마비된다는데, 이곳은 그 이상이 와도 끄떡없었다.
이번 주말에 폭설 예보가 있었다. 따뜻했던 금요일 오후, 동료들과 주말에 눈 많이 내린다고 하니 조심하라는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하지만 날씨는 추워지지 않고 여전히 따뜻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내내 비가 내렸다. 날씨가 추웠다면 저 많은 비가 눈이 되어 내렸겠지. 카페에서 책 읽다가 비 내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찮은 걸까? 갑자기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겨울인데 왜 눈이 안 내리고 비가 내리는 걸까. 우리, 괜찮은 걸까? 식물들은 괜찮을까? 한참 추워야 할 12월 중순이다.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가 나는 불안하다.
지난겨울에는 역대 가장 많은 비가 왔다고 한다(연합뉴스, 2024.3.7.). 기상청의 겨울 온도 데이터를 보면, 겨울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 겨울철의 낮은 온도는 다음 해 봄에 씨앗이 휴면을 깨고 잎이 나올 수 있도록 작용한다. 많은 식물들의 씨앗은 그렇게 진화해 왔다. 가을에 씨앗이 땅에 떨어졌을 때, 바로 잎이 나오면 추운 겨울 동안 얼어 죽을까 봐 휴면에 들어간다. 농업 분야에서는 씨앗의 발아율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저온 처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겨울이 따뜻해지면? 언젠가 휴면을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태계는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생물과 생물이, 생물과 비생물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 인간도 생물이어서, 그물망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생태계에서 한 가지의 변화는 그것만 변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 관련이 있는 다른 생물과 비생물에 영향을 주고 또 받는다. 결국 모든 관계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환경의 변화는 기후변화의 영향이라는 것이 과학적 근거를 통해 거의 확실해지고 있다. 겨울에 비가 내리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기후변화의 영향이라면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덜 먹고 덜 사고 덜 쓰는 저소비 생활을 하는 것. 그것은 기후변화의 급속한 속도를 늦추기에 너무 미미하다. 식물연구원으로서 내가 식물들에게, 자연에게, 환경에게 해줄 수 있는 일도 거의 없다. 나의 힘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가느다란 실처럼 미약하다. 그저 내 위치에서 꾸준히 식물과 자연의 변화를 관찰해서 기록하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에서 의미를 끌어낸 후, 글(논문, 보고서, 기고, SNS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경고하는 일.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한겨울에 비가 내려 축축해진 땅을 밟는다.
걸으면서 겨울인데 죽지 않고 살아있는 토끼풀에게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