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틈에서 견디며 사는 식물 이야기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20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환경, 자연, 식물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식물을 공부한 지 20년. 언젠가부터 도시의 틈새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전을 찾아보면 틈새란 ‘벌어져 난 틈의 사이’를 말하지만, 또 다른 뜻으로는 ‘어떤 행동을 할 만한 기회’라고 한다. 틈새에 한 줌의 흙만 있다면,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식물이 자란다. 식물에게는 좁지만 기회의 땅이다. 어쩌면 그 흙에 씨앗이 이미 들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동물이 식물의 열매를 먹은 후 이동하다가 배설했는데, 그 안에 씨앗이 들어 있었을 수도. 대체로는 가벼워 잘 날아가는 씨앗이 틈새를 잘 찾아내는 것 같다.
자연생태계는 대부분 흙으로 덮여있다. 그래서 틈새는 대체로 바위와 바위 사이나, 바위의 갈라지고 움푹 들어간 틈에 있다. 바위틈에 자리 잡은 식물은 멋진 풍경이 되어 일반인들, 특히 사진가들의 환영을 받는다. 우리가 보기에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식물도 그럴까. 여름의 이글거리는 햇빛에 달궈진 바위는 흙보다 훨씬 뜨겁다. 바위를 가리는 큰 나무가 없다면 표면 온도는 더 올라간다.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리려면 그 뜨거움을 견뎌야 한다. 환경이 열악하니까 경쟁종이 많지 않다.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는 다른 종들과 경쟁해야 한다.
도시에는 흙이 별로 없다. 사람들은 신발에 흙이 묻으면 싫어한다. 그래서 도시의 대부분은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덮여있다.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에서, 돌계단의 한구석에 먼지처럼 쌓여있는 조금의 흙에서, 공원에 두꺼운 코코넛 매트를 깔았는데 시간이 지나 삭아버린 작은 틈에서, 식물들은 기가 막히게 기회를 찾아 정착한다. 그 노력이 가상하여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나 보다. 여름에는 더 뜨겁고, 겨울에는 더 차가운 그 바닥의 틈에서 식물이 산다. 걷다가 틈새의 식물을 만나면, 문득 멈춰 서서 바라볼 때가 있다.
도시의 틈새에 사는 식물들은 더 바짝 엎드린다.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었다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 일쑤다. 그런 환경에 적응해서 살다 보니 납작해졌다. 걷다가 식물이 보이면 피해서 걷는다. 밟히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나까지 밟을 필요가 있나 싶다. 도시에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바닥에 붙어사는 식물들이 보일까. 가만히 지켜보면 모두들 휴대폰만 보며 걷거나, 귀에 이어폰을 끼고 앞만 보며 걷는다. 이런 작은 식물들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만 보이는 것 같다.
언젠가는 내가 일하고 있는 연구원의 전시 부서에 ‘아스팔트 틈새의 식물들’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제안하고 싶다. 이 생각은 틈새의 식물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해왔다. 다양한 틈새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현실에서 작은 틈새를 만들어 전시용 식물을 키워 전시하는 모습이나, 생태교육과 연결하여 걸으면서 틈새에서 사는 식물의 생태를 해설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 전시를 보고 난 후에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어디서든 갈라진 아스팔트 틈새에서 사는 식물이 보일 테니까. 알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