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산으로 출장 간 이야기

by 초록노동자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20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환경, 자연, 식물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급하게 출장이 잡혔다. 오늘의 출장 장소는 인천 부평에 있다. 연구소가 교통이 불편한 지방에 있어 어디로 이동하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웬만하면 오후에 약속을 잡는다. 오늘처럼 부득이한 경우만 빼고는. 집에서 차 타고 30분, KTX 타고 1시간 40분, 전철 타고 1시간, 걸어서 15분. 7시 반에 출발했는데, 11시가 조금 넘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은 왕복 7시간이 걸리는 출장이다. 이 정도면 보통이다. 강원도로 당일치기하면 기본 8~9시간이다. 이동거리가 길어질수록 나의 탄소발자국을 떠올리면서 내가 과연 자연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게 맞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서울이 가까워질 때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비가 많이 오고 온도가 낮아 몸도 으슬으슬하니까 기차에서 내리기 싫었다. 우산도 안 가져와서 전철에서 내려 사야 하고, 우산을 쓰고 질척거리는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보통 비 오는 날은 물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흐르는 빗물을 피해 걸어야 하고, 때로는 그 빗물에 발이 빠져 신발도 양말도 젖는다. 물을 잔뜩 머금은 흙은 발을 디딜 때마다 푹푹 빠져들어가곤 한다. 다시 전철 타고 기차 타고 차 타고 세 시간 반을 이동해서 내려가야 하는데... 전철에서 내려 출장 장소로 걸어가면서 오늘은 등산화만 더러워지길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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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비 예보가 있으면 출장을 취소한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직한 후로 비를 맞아가면서까지 현장조사를 하지 않는다. 연구에 대한 열정이 줄어서일 수도 있고, 비 맞고 몸이 아프면 나만 손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매일 할 일이 쌓여있는데, 하루라도 아프면 안 된다는 마음이 크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와도 현장에 갔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 올 시간이 없었다. 무리해서 길 없는 산길을 오가며 식물조사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조금 안심했다. 오늘 하는 일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해서.



비가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숲 안에서 식물 조사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비가 와도 조사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방수용지로 만든 조사야장(식물 기록지)과 전용 볼펜을 사용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의 양에 비해 숲 안으로 떨어지는 빗물의 양은 많지 않았다. 식물의 잎이 우산이 되어 주었다. 오히려 조사를 마치고 숲에서 나와 차로 이동할 때 짧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옷이 흠뻑 젖었었다. 그때 비를 맞으며 조사하던 기억은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안전'을 핑계로 그렇게 하지 않으니 말이다.



전철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에 기괴한 장면을 마주쳤다.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일 것이다. 공원에 심어놓은 플라타너스에서 나뭇잎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오래되어 크게 자란 나무니까 나뭇잎도 크고 양도 많았겠다. 자연생태계에서는 나뭇잎이 땅에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분해되어 흙이 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도시에는 흙이 없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 위로 떨어진 나뭇잎과 작은 가지들은 지저분한 쓰레기가 된다. 그러니까 사람을 써서 치우고 비닐봉지에 넣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소각장으로 가서 태워질까, 아니면 매립될까. 매립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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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 교과서에서는 생태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특정 지역에서 상호작용하는 생물(유기체)과 그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비생물 환경(무생물)이 기능적 단위를 이루는 복합체. 생물 요소에는 식물, 동물, 미생물 등이 있으며, 비생물 요소에는 흙, 물, 햇빛, 온도 등이 포함된다." 도시'생태계'라고들 얘기하는데, 생태계의 정의를 보면 도시 뒤에 과연 생태계를 붙여 말하는 것이 맞을까 싶다. 도시에는 모든 생명체들이 살 수 있는 기본이 되는 흙이 별로 없다. 흙이 있는 것을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 오는 날에는. 흙이 있어야 생물이 있고, 생물이 있어야 비생물과 상호작용을 할 텐데, 도시는 그런 구조가 아니므로...



토석채취사업으로 훼손된 후 55년 동안 방치되었던 곳에서 현장 회의를 했다. 토석채취사업은 특히 지형 훼손이 커서 훼손되기 이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스스로 이만큼 회복하였고, 그런 자연을 둘러보며 "애썼다."라고 마음속으로 얘기했다. 우리도 심각한 병에 걸리면 수술을 해야 하고, 수술을 하더라도 완전히 치유되지 못하거나, 치유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듯 자연도 마찬가지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회복이 조금 더 빨라질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열띤 회의를 하는 동안 무섭게 내리던 비도 어느새 그치고 햇살이 반짝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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