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속 군산 하제마을 600살 팽나무

황석영 작가의 신작 소설 <할매>에 나온 장소를 찾아서

by 초록노동자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20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환경, 자연, 식물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을공유합니다.





2주 전, 황석영 작가님의 신간 소설인 <할매>를 읽었다. 읽기 전 군산이 배경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표지에 나무 그림이 있어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 책을 읽은 후 표지의 그림이 군산 하제마을의 600살 팽나무임을 알았다. '군산에 하제마을이라는 곳이 있구나.' 이곳에 10년을 살면서 처음 듣는 마을 이름이다. 매일 직장과 집만을 오가고, 그 외에는 시내에만 주로 다니다 보니 아직도 군산을 잘 모른다. 군산에 숨겨져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 많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책은 순식간에 읽었다. 팽나무와 함께 600년을 산 느낌이었다. 팽나무의 600년 안에는 함께 살았던 식물과 동물과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들어있었다. 600년 동안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작가는 400권이 넘는 책을 샀고, 이중 144권을 뽑아 공부하며 읽었다고 한다. 소설가가 어떻게 이렇게 생태학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지, 읽으면서 신기했다. 내가 평소에 배워 알고 있던 생태학적 지식들, 경험들, 동료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책 속에 나온다. 소설가의 언어로 읽는 생태학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할매>를 읽으며 사람들에게 생태 가치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책을 읽은 후 하제마을에 빨리 다녀오고 싶었다. 다녀온 후에 생생한 후기를 쓰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던 것과 실제 하제마을 팽나무를 본 느낌을 섞어서 글을 쓰고 싶었다. 평일의 부서 행사가 일찍 끝난 날, 지도에 '하제마을 팽나무'를 찍었다. 2024년 10월 31일에 천연기념물로 등록되어서 지도에서 검색이 된다. 위성영상에 찍힌 하제마을 팽나무의 주변 경관이 이상하게 보인다. 카카오맵에서는 국가 중요 시설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다. 하제마을 팽나무 바로 옆은 미군부대이다. 이곳에 미군부대가 들어서게 된 사연이 책에 나온다. 팽나무는 미군부대의 철조망 안에 있었는데, 시민들이 오랫동안 항의를 해서 더 안쪽으로 철조망을 옮겼다고 한다.


더 옛날에는 하제마을이 섬이었다고 한다. 1990년대 초에 간척사업을 통해 육지로 만들었다고. 하제마을의 팽나무는 600년의 시간 동안 이곳이 변화하는 것을 모두 지켜본 유일한 나무다. 그런 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 설렐 수밖에. 하제마을로 가는 길의 넓은 들판에 갈대밭이 드넓었다. 간척사업으로 갯벌을 육지의 흙으로 메꾸긴 했지만, 이전 생태계 영향이 아직 유지되고 있음을 뜻한다. 아리랑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리랑에서는 옥구평야로 나오는 곳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간척지로 만들기 위해 죽어 나갔던가.




하제마을에 가까워지자, 군산공항에서 봤던 미군부대의 뒤편과 경계의 철조망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형광녹색의 펜스가 눈에 거슬렸다. 담벼락에 붙어 농사를 짓는 할머니의 등이 쓸쓸했다. 도로는 곳곳이 깨져있고,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군데군데 빈집이 있어 폐허 같았다. 바람이 갈대를 쓸며 스르륵 불어 나갔다. 그 길의 끝에 대나무를 병풍처럼 두른 600살 팽나무가 있었다. 보자마자 탄성이 나왔다. <할매>의 표지에 있던 그 나무였다. 폐허처럼 되어 쓸쓸한 그곳에 홀로 웅장히 서 있는 팽나무.





팽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갈색 펜스와 그 앞에 천연기념물임을 알리는 팻말이 반갑다. 2024년 10월 31일에 지정했다고 한다. 600살 팽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힘썼을까. 그 사람들의 노고 덕분에 이제 이곳을 함부로, 쉽게 개발하지 못할 것이다. 이 드넓은 땅을 개발하려고 기회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600살 팽나무가 꼿꼿이 지키고 있으니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지켜주기 위해 600년을 살아온 걸까. 마음 안쪽이 시리도록 따뜻해진다.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는 생장추(나무 나이테 측정기)로 수령을 측정한 팽나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537(±50)살(2020년 기준)이며, 나무높이가 건물 5층 높이인 20m, 가슴높이 둘레 7.5m로 규모도 크다. 나무 밑동 3m 높이에서 남북으로 넓고 균형 있게 가지가 퍼져 수형이 아름다우며 생육상태도 우수하다.


팽나무가 위치한 군산 하제마을은 원래 섬이었으나 1900년대 초 간척사업을 통해 육지화되며 급격히 변화한 곳이다. 마을에 항구가 생기고 기차가 들어서며 번성하던 모습부터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며 사라져 간 지금까지 지난 5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지켜보며 하제마을을 굳건히 지켜온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양손을 두 번 뻗어야 이 아름드리 팽나무를 안을 수 있다. 뿌리로는 땅을 움켜쥐고, 힘차게 뻗어 올린 줄기에 붙어 있던 나뭇잎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렸다. 앙상한 가지에 작은 열매들만 달려 있었다. 이 열매들은 겨울철 새들의 요긴한 먹이가 된다. 소설 속에서 개똥지빠귀가 팽나무 열매를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개똥지빠귀의 뱃속에 있던 팽나무 열매가 할매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그 맛이 궁금하다. 식물 조사를 다니거나 올레길을 걸으면서 팽나무와 그 가지에 달린 열매를 얼마나 많이 봤던가. 나는 왜 열매를 먹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내년 가을이 오면 팽나무가 익어가는 색을 관찰하고 꼭 먹어봐야겠다.



개똥지빠귀들은 열매를 따 따먹다가 주변이 안전하다고 느끼면 서슴지 않고 나무 무밑으로 내려가 낙엽 아래를 뒤지고 다녔다. 팽나무 숲은 개똥지빠귀에게 가장 요긴한 살림 터전이었다.(p.26.)

개똥지빠귀의 뱃속에 팽나무 열매 몇 개가 있었다.(p.30)





팽나무는 특히 나뭇잎이 떨어진 후의 가지 모양이 아름답다. 목을 뒤로 끝까지 젖히고 올려다봤을 때,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가지들의 모양이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팽나무 뒤편의 대나무 잎이 흔들리면서 스산한 소리를 냈고, 바닥에 떨어진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들렸다. 바람이 연주하는 음악이 들리는 야외 미술관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모습을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 혼자 서서.





팽나무를 만나고, 하제포구로 갔다. 옛날에는 이 포구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배 타고 이동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가 보다. 버려진 배 두 척만 쓸쓸히 포구에 남겨져있다. 잔잔한 수로는 새들의 낙원이 되었다. 간척지를 만들고 그 안에 수로를 만들어 육지의 물이 바다로 빠져나가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그곳에서 새들은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살지 않고 이용하지 않으니 새들에게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나 보다. 갯벌이었을 때는 더 많은 새들이 왔을 텐데, 안타깝지만 지금은 새로운 생태계가 되었다.


<할매>를 다시 읽어야겠다. 몇 년 전, 황석영 작가님께서 군산으로 이사를 오셨다. 이곳에 살면서 군산을 자세히 관찰하셨나 보다. 내가 평소에 보던 군산의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배경으로 나오는 소설이 한 권 더 생겨서 좋다. 한 권은 <아리랑>, 다른 한 권은 <할매>. 내가 사는 이 도시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이제 군산으로 여행 오는 지인들에게 <할매>를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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