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걱정 말아요.
약속은 없지만, 내가 정해놓은 스케줄은 웬만하면 지키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날이다.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옷매무새를 만지고 들고 나온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삐빅, 삐비비빅'
'삐비빅, 삐비비빅'
'삐삐빅, 삐비삐빅'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의 비밀번호가 오늘따라 잘 안 눌려서,
몇 번이나 비밀번호를 누르고 나서야, 겨우겨우 쓰레기를 버리고 손을 턴다.
요즘 퐁실퐁실한 우유거품에 취미를 두고 있는 나는,
합정의 어느 카페에 목적을 하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겨울의 시작에서 봄이 느껴지기도 했던 꽤나 따뜻하던 날들이었는데,
오늘은 파란 하늘이 시릴 정도로 무척이나 춥다.
오늘따라 플랫폼에 내가 도착하니 바로 들어오는 성수행 지하철.
저 멀리 선유도공원이 한강에서 유유히 나에게 인사하는 듯했다.
기분 좋게, 합정역 9번 출구에 내려 캡처해 둔 카페로 걸어가려는데-
불현듯, 내가 몇 번이나 삑삑 누르던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 비밀번호가 생각난다.
분명 내가 들고 온 건 일반쓰레기라서 비밀번호를 누를 필요 없는데..!
정말 많은 고민 끝에,
일주일간 고대했던 카페를 뒤로 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가는 동안 지하철에서 많은 걱정을 했다.
'그 사이에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을 비워갔으면 어떻게 하지.'
'경비실 아저씨가 화를 내면 어쩌지.'
'경비실 아저씨가 없으면 어쩌지.'
'음식물 쓰레기는 새벽에 수거하니 그때 오라고 하면 어쩌지.'
'연락처를 달라고 하면 어쩌지.'
...
그 많은 걱정과 온갖 시나리오에는 늘 그렇듯 해피엔딩은 없다.
이게 내 많은 생각들이 걱정을 낳고 불안을 양상 시키는 과정이다.
그 와중에 한강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선유도공원이 왜 이렇게 애처로워 보이나.
역에 내려서부터는 기억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집에 걸어가는 길은 온갖 불안을 낳고 불안의 불안이 집까지 나를 인도한 듯하다.
똑똑-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에 일반쓰레기를 버렸어요. 어쩌죠..."
"많이 큰가요?"
"종량제봉투채로 버렸어요. 10리터요."
똑똑 똑똑 노크소리가 반복되어 들리는 것처럼, 심장이 미칠 듯 뛰기 시작했다.
"한번 가보죠."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의 뒤편을 여니, 아직 내가 버린 쓰레기봉투가 빼꼼 손잡이를 내밀고 있다.
마치 '여기 손잡이를 잡고 나 좀 빼줘'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냉큼 쓰레기봉투의 손잡이를 들어 올리려는데,
"이미 더러워진 손인데, 내가 할게. 가세요."
이라며 내 손을 슬쩍 밀어주셨다.
"정말 죄송합니다."
"실수할 수도 있지 괜찮아요. 오히려 이렇게 말해주니 얼마나 좋은데요.
이런 거 경고받으면 우리들이 힘들어지거든. 걱정 말아요."
"네. 감사합니다."
똑똑 똑똑 반복되어 들리던 노크소리는
점점 템포가 늦어지더니, 이내 잦아들었다.
뒤돌아서는 걸음에 시린 파란 하늘 탓인지 눈이 매워져 왔다.
"실수할 수도 있지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이 말, 왜 이렇게 내 마음에서 계속 반복되는 걸까.
온갖 걱정과 불안으로 내 목을 조여오던 답답함은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실밥이 툭툭 터져버렸다.
그동안 참 듣고 싶었던 말인데...
나에게도 제대로 해주지 못한 말인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을 듣고 난 뒤,
마음에 응어리진 누렇고 냄새나는 케케묵은 불안이 발밑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