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작가가 브런치에 필요한 이유
한창 글 때문에 힘들었고, 글이 나를 서럽게 했던 시절 동료 기자가 건넨 말이었다. 이 말이 나를 관통한 이유는 내게 글은 하나의 생존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글은 돈벌이에서 나아가 내게 숨구멍이다. 힘든 일을 마주하거나 출구 조차 없는 고민에 갇힐 땐 글쓰기를 해결책으로 삼는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내게 주어진 선택지를 재고하며 내 자신을 돌아본다. 그렇게 일상의 마디 사이에 탈출 수단을 만들어 놓는다.
내게 그렇듯, 아마 글은 모두에게도 다양한 수단이다. 기자인 나를 비롯해, 작가, 에디터 등 글로 사람들에게 뜻을 전하는 직업을 떠올려봐도 마찬가지다. 모두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대중에게 전한다. 그 과정에서 글은 기호에 따라, 대중에 따라, 전달하는 플랫폼에 따라, 문체와 편집 스타일이 바뀐다. 때론 무엇보다도 날카롭게 빚어 드러나지 않는 사실을 지적해내기도, 때론 말랑말랑한 단어들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인다. 글이 직업인 사람들에게 글은 목적에 따라 바뀌는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글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든 브런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수단의 전문성 또한 엄격하거나 철저하지 않다. 글은 창의적이기에, 주관적인 존재다. 서로의 창작물을 가늠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브런치는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지 않아도 되는 편한 장이다. 브런치에게 작가란 더이상 직업의 한 종류가 아닌, 하나의 활동이자 일종의 트렌드나 현상과도 같다.
브런치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듯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장이다. 서로가 일상에서 가져온 무형의 감정들을 교환하고 내보이고 연결하게 만든다. 아이를 학교를 보낸 주부가 20대 여대생이 보낸 대학 시절 이야기를 읽으며 옛 시절의 감정을 떠올린다. 브런치는 이렇게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감정을 잇고, 시간을 잇는다. 현대 사회에서 일어날 법한 일 중에 이보다 더 낭만적인 일은 없다.
이러한 이유들 덕분에 브런치는 지난 몇 년간 인기를 끌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매년 유입되는 새로운 작가들의 출현에 대해 누군가가 물었다. 브런치를 통해 작가가 되는 사람이 밉지 않냐고. ‘진짜’ 작가로서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냐고. 내 대답은 언제나 "환영" 일 것이다. 브런치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벌려 환영하고 싶다. 함께 좋은 파티를 열고 싶고 생각을 공유하고 손을 잡고 싶다.
애초에 “'가짜' 작가가 못미덥지 않냐”는 질문이 이상하다. 글로 밥을 벌어 먹는 사람으로서, 글에 둘러 쌓여 살수록 우리는 좋은 글이 사람을 살리는 경우를 목격한다. 좋은 마음을 가진 작가는 좋은 글을 쓴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된 활자들은 좋은 마음에 닿는다. 그렇게 작가와 독자는 영감을 나누고, 누군가를 나쁜 하루에서 구제하기도 한다.
애초에 작가가 가진 자부심은 쓰잘데기 없다.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생각하는 사실이지만 작가가 가진 자부심이란 한낱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다. 다시 강조하지만, 글은 무엇보다도 주관적인 존재다. 누구도 자신이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사실을 단언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좋은 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가 지녀야 할 것은 자부심이 아닌, 소신이다. ‘진짜’ 작가와 ‘가짜’ 작가를 규정하는 행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어떤 상황 속에서 글을 쓰던 글에 담긴 자신의 소신이 들어가 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누군가의 입맛에 맞춰 작성한 글이 아닌 단단한 토대가 있는 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 글. 그런 면을 감안한다면 브런치는 엄연한 작가들의 광장이다. 그리고 오히려, 나보다 더 나은 작가들은 브런치에서 넘쳐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 그들이 나를 포함한 독자들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나갈지 기대될 뿐이다.